미국 샬럿의 사설 트레이닝 센터…최원준 “구속 끌어올릴 것” 정우영 “투구폼 정립”
현재 트레드 애슬레틱스에서 훈련 중인 KBO리그 선수들로는 KIA 타이거즈가 10여 명 정도로 가장 많고, 두산, LG, SSG 선수들도 있는데 특히 눈에 띄는 두 명의 선수가 있었다. 잠실 한 지붕 두 가족인 두산의 최원준과 LG 정우영이다. 그들은 왜 한국에서 19시간 이상 걸리는 장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트레드 애슬레틱스를 찾았을까. 1월 14일(한국시간) 트레드 애슬레틱스에서 진행된 최원준, 정우영과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31세의 최원준은 지난해 6승 7패 평균자책점 6.46에 그치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현재 두산의 5선발 후보로 꼽히는 최원준은 2025시즌을 마치면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는다. 2020년부터 두산의 선발 투수로 활약했던 최원준은 토미존 수술과 두 차례의 갑상선암 수술을 이겨낸 ‘인간 승리’의 표본을 보여줬다. 2021년에 치른 2020 도쿄올림픽 국가대표에 발탁돼 야구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했지만 2023시즌부터 서서히 침체기를 겪다 지난해 극심한 부진에 빠졌다.
절치부심의 심정으로 트레드 애슬레틱스를 찾은 최원준. 그에게 미국까지 향한 배경을 들어봤다.
“원래는 시애틀에 있는 드라이브라인을 가려고 했다가 트레드 애슬레틱스를 소개받았다. 여기를 찾은 가장 큰 목적은 구속 증가다. 두산에 계실 때 많은 도움을 주신 배영수 코치(SSG 랜더스)도 추천해주셨고, 나이가 있는 상태에서 구속을 끌어 올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는데 여기 와서 의구심을 지우고 확신을 안은 채 공을 던질 수 있게 됐다.”
최원준은 인터뷰에 앞서 진행된 불펜피칭에서 91마일(146km/h)을 찍었다. 지난 시즌 패스트볼 최고 구속이 143km/h였던 그로선 긍정적인 시그널이었다.
“그동안 예쁜 투구폼을 가졌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을 정도다. 투구폼을 교정하는 과정에서 구속이 왜 떨어졌는지, 왜 마운드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타자를 압도하지 못했는지 깨달았다. 스플리터를 던질 때도 한국에선 검지를 사용해 던지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중지로 스플리터를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걸 배우면서 ‘한국에만 정답이 있는 게 아니구나’라는 걸 느꼈다. 비용이 들어가는 훈련이라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는 선수들도 많을 텐데 여기서 해보니 이 정도는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
최원준은 이곳을 찾은 시기가 다소 늦었지만 올해도 안 왔으면 정말 후회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지난해 권명철 코치님이 내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네 구속이 145km/h만 나와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라고. 그래서 올 시즌 재기를 위해서라면 뭐라도 해봐야 할 것 같아 이곳을 찾았다. 올 시즌 어떤 결과를 얻을지 모르겠지만 정말 좋은 공부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최원준은 배영수 코치가 두산에 있을 때 자신에게 해준 조언을 들려줬다.
“내가 좌타자 상대로 초구와 2구째 피안타율이 가장 높은데 그 이유로 구종이 단순해서라는 지적이었다. 둘 중 하나는 포심(패스트볼)을 던질 거라 좌타자 입장에선 예측 가능한 승부라는 내용이었다. 초구와 2구째 공을 어떻게 던질지 생각하고 고민한다면 경쟁력 있는 투수가 될 거라는 말씀이었는데 그 말씀이 큰 위로가 됐다.”
최원준은 투수로 강하게 성장할 수 있게끔 이끌어준 이강철, 김태형 감독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다 현재 팀을 이끄는 이승엽 감독한테 미안한 마음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감독님이 처음 부임하셨을 때부터 나를 많이 믿고 내보내 주셨는데 2년 동안 너무 안 좋은 모습만 보여드려 마음의 빚이 있다. 올해는 그 빚을 꼭 갚고 싶고, 올해 잘 마무리해서 감독님도 나도 더 오랫동안 두산에서 감독과 선수로 함께 갔으면 좋겠다.”
정우영은 샬럿에서 한국으로 가지 않고 곧장 LG 트윈스의 스프링캠프가 열리는 미국 애리조나로 향한다.
“한국에 갔다가 애리조나로 가고 싶지만 시차 적응과 이동 거리가 걱정되더라.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서 배운 것들을 잊어버릴까 봐 애리조나에 도착한 선발대랑 같이 운동하면서 캠프에 적응해나갈 예정이다.”
정우영은 트레드 애슬레틱스에 2년 전부터 오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당시 WBC 대표팀에 뽑혀 미국에서의 개인 훈련을 할 수 없었고, 이듬해에는 팔꿈치 수술로 인해 다음을 기약해야만 했다.
“그동안 트레드 애슬레틱스 SNS를 계속 팔로우하며 관심 있게 살펴봤다. 지난 2년 동안 부침이 많았던 터라 변화에 대한 갈증이 있었고, 에이전트랑 이야기하면서 (시애틀에 있는) 드라이브라인으로 갈지 여기로 올지에 대해 고민이 있었는데 결국 트레드 애슬레틱스를 선택하게 됐다.”
그래서 드라이브라인과 트레드 애슬레틱스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물었다.
“드라이브라인은 확실히 구속 증가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만큼 부상의 위험도 존재한다고 보는데 나로선 구속 증가보다 제2의 변화구, 확실한 변화구를 만들 수 있는 코칭과 피칭 디자인을 만드는 게 목표였고, 그 목표에 도움이 되는 센터가 트레드 애슬레틱스였다.”
정우영은 한국에서 트레드 애슬레틱스의 담당 코치에게 좋았을 때와 그렇지 못했을 때의 영상들을 다 챙겨서 보냈다고 한다.
“(담당 코치인) 라이언 코치가 첫날 미팅하면서 내 영상을 보고 정확히 짚어내더라. 내가 구속이 저하된 원인 중 하나가 투구폼의 변화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팔꿈치 수술을 받은 영향 때문일 것이다. 팔꿈치가 떨어지면서 공을 밀어서 던진다고 지적했다. 그 말이 맞았다. 지난 2년 동안 공을 밀어서 던졌던 것 같다. LG에서도 이런 문제점을 파악했지만 관건은 이걸 어떻게 바꾸느냐였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잘 안됐고, 그 답답함, 갈증이 커서 트레드 애슬레틱스를 찾은 것이다.”
처음 트레드 애슬레틱스에서 정우영이 했던 훈련은 2주가량 팔을 올리고 던지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캐치볼할 때부터 팔을 들고 던졌는데 정우영으로선 마치 야구를 처음 배울 때의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배우고자 하는 의욕이 앞서 다른 과정으로 넘어가고 싶어 라이언 코치한테 다른 걸 알려주면 안 되느냐고 물어도 팔 들고 공 던지는 게 몸에 배어야 한다며 계속 반복 훈련을 강요했다. 아마 이런 게 미국에서는 기본기인 듯했다.”
지난 6주가량 이곳에서 차근차근 투구폼을 만들어가던 정우영은 6주라는 시간이 너무 짧은 것 같다고 말한다. 아직까지 변화된 투구폼이 완벽하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처음보다 많이 좋아졌고, 라이언 코치도 좋다고 말씀해주시는데 아직은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그게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육안으로 봤을 때 큰 변화가 없어도 그 변화를 주기 위한 과정을 배웠고, 덕분에 구속도 증가하고 있다. 단기간의 변화를 추구하기 보다는 여기서 배운 걸 토대로 한 시즌을 끝까지 해보는 게 중요하다.”
투수가 1월에 전력 피칭을 하는 건 어렵다. 그런데 정우영은 최근 불펜피칭을 하면서 자신의 몸 상태가 이전보다 확실히 올라왔다는 걸 느꼈다.
“라이언 코치가 스프링캠프로 떠나기 전 93마일(149.7km/h)을 찍을 거라고 말했다. 나도 여기서 93마일을 목표로 했다. 아마 그 숫자가 나올 거라고 예상한다.”
정우영은 지난 2년동안 힘들었던 시간을 돌아보며 2024시즌을 앞두고 한국에서 열린 MLB ‘서울시리즈’가 자신한테는 독이 된 시간들이었다고 회상했다.
“감독님이 ‘서울시리즈(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스페셜게임)’에 던질 수 있느냐고 물어보셔서 가능하다고 말씀드렸는데 돌이켜보면 그 결정이 조금 성급했던 것 같다.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마음과 달리 몸은 안 올라왔고, 결국 그 서울시리즈 때부터 조금씩 꼬였던 것 같다.”
2023년 11월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은 정우영은 이듬해 ‘서울시리즈’ 샌디에이고와의 스페셜 경기에 등판했다가 김하성에게 홈런을 맞았다. 결국 시즌을 1군에서 시작하지 못했고, 이후 1, 2군을 오르내리며 제구와 구속 감소 등 총체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이전에 SSG에서 뛰었던 케빈 크론(2022년 SSG 활약)이라는 외국인 타자가 나한테 한 말이 있었다. 나한테 스위퍼 같은 변화구 하나 있으면 메이저리그에서 통할 것 같다고. 여기서 투심(패스트볼) 구위를 살리면서 그걸 받쳐줄 스위퍼를 잘 만들어가고 싶다. 체인지업도 배웠는데 너무 많은 걸 한꺼번에 담으면 탈이 날까 봐 지금은 스위퍼와 투심에만 집중하고 있다.”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용기를 내 도전한 트레드 애슬레틱스에서의 생활이 정우영의 야구 인생에 새로운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을까. 정우영은 이 질문에 “예스”라고 답한다.
“어렸을 때부터 메이저리그 진출이 꿈이었다. 그러다 최근 부진을 거듭하며 과연 그 꿈을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여기서 훈련하며 그 목표가, 그 꿈이 더 커졌다. 어쩌면 그 목표 하나 보고 지금까지 버티며 공을 던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우영은 지난 시즌 마치고 귀국해 잠실야구장을 찾았던 고우석과의 대화를 소개했다.
“(고)우석 형은 후배들한테 강하고 돌멩이처럼 단단한 이미지의 선배인데 미국 가서 힘들어했던 모습이 떠올라 우석 형한테 ‘형, 미국 간 거 후회 안 해요?’라고 물었더니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라고 답하더라. 마이너리그에 있는 것도 경험이라는 말에 크게 공감했다.”
정우영은 올 시즌을 잘 마치면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해외 진출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그런 의미에서 2025시즌은 정우영한테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다. 그런 그에게 스프링캠프를 맞이하는 소감을 물었다. 정우영은 “캠프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 수 있을지에 대한 설렘이 존재한다”라고 답한다.
“지난 2년 동안 혼란스러웠던 야구가 조금씩 정립이 되고 있다. 정체성이 흔들렸는데 그 또한 상당히 안정됐다. 원래의 내 모습이 나올 거란 기대가 크다. 그래서 애리조나로 향하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트레드 애슬레틱스에는 KBO리그 선수들 외에도 두산의 새 외국인 투수로 합류할 메이저리그 28승의 좌완 투수 콜 어빈과 텍사스 레인저스의 한국계 투수 데인 더닝도 훈련 중이다. 콜 어빈은 같은 팀 투수 최원준에게 KBO리그 타자들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수집했고, 데인 더닝은 KIA의 김현수, 박건우, 홍원빈, 이도현 등을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갖고 있는 데인 더닝의 식사 초대에 KIA의 젊은 4인방은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을 간직할 수 있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