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 다양한 프로그램 교육에 접목…학생에게 ‘자신의 시선으로 보고 사유하고 상상을 확장하는 힘’ 선사
잠시 멈추고 한 번 생각해 보시라. 당신에게 가장 불쌍해 보이는 물건은 무엇인가.
이 단순해 보이는 질문은 평상시에 무심코 지나쳐온 물건들을 짚어서 다시 보게 한다. 그리고 ‘불쌍하다’는 감정을 사유하며 해석해 물건과 연결 짓고, 선택한 사물에 스토리와 의미를 입히고 상징성을 부여한다. 타인에 의해 부여받은 과제지만 온전히 자신의 감정과 해석, 선택이 주도하는 길로 순식간에 들어서게 한다.
‘무엇이 불쌍하다는 감정을 일으키는 걸까? 소외된 것일까, 너무 많은 쓰임을 당하는 것일까, 버려진 것일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이제껏 스쳐 지나갔던 것, 알아채지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보게 된다. 이렇게 첫 발문으로 연 과제로 ‘불쌍해 보이는 물건’을 들고 온 참여자들은 자신의 일상적 삶에서 예술로 진입하는 첫발을 뗀 거다. 각자 혹은 공동의 예술 작업을 할 수 있도록 고안한 워크숍에서는 몇 단계의 발문 과정을 더 거친다. 오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관찰과 탐색을 심화하고, 사물(오브제)에 상상력을 동원해 사물의 가능성을 확장시켜볼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나면 자신을 투여해 상징을 만들게 되는데, 이 과정이 곧 창작으로 이어진다.
예술가의 창작 과정이 예술교육의 매개가 될 때 참여자는 자신을 새롭게 정의하고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익숙하게 혹은 무신경하게 바라봤던 세상의 크고 작은 것들을 낯설게 다시 보며 질문을 떠올리는 비판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다르게 상상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예술가박스-궁금함’은 바로 이러한 감각과 시선, 힘을 동시대 예술가를 통해 학생들에게 매개하기 위해 고안됐다. 이러한 힘을 찾아주고 형성해주는 일이 바로 예술과 예술가가 조력할 수 있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미래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가는 변혁적인 존재’로, ‘변화를 이끄는 인간’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조력하는 일이야 말로 예술의 중요한 사회적 책임이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학교 안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현장 예술가와 교사가 협력하는 방식으로 설계돼, 프로그램의 매개자로서의 교사 대상 연수가 함께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교사들에게도 깊이 필요하고 효과적인 프로그램임을 확인했고, 이후 일반 교사들을 위한 연수 프로그램으로도 확장해 운영되기도 했다. 미래교육을 준비하며 변화된 교육정책 속에서, ‘자기주도적 학습’을 지도하고 있다고 믿어왔던 한 교사는 “학습의 주체성이란 이런 것이었구나”를 비로소 온전히 감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흔들리는 교권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또 다른 교사는 이 프로그램이 “자신을 살펴보는 과정이 됐다”고 했다. 교사 역시 교육을 하는 사람일 뿐 아니라 스스로 배우고 성장하는 사회적 존재다. 그렇기에 예술이 매개하는 이러한 기회가 학생뿐 아니라 교사에게도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다.
최근에 공교육 제도권 안에서 현장의 예술가와 예술교육가, 교사가 협력해 예술을 통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실천하는 ‘예술로 탐구생활’을 접하였다. “학생들을 둘러싼 다양한 삶의 주제를 예술로 질문하고 사유하는 프로젝트”라고 소개하는 이 사업은 문화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지원으로, 학교 교사와 예술가들이 함께 정의한 문제를 주제로 예술교육 프로젝트를 함께 개발하고 학교 정규 수업 내에서 교육을 진행한다. 전국에서 이뤄지는 이 프로젝트가 다루는 문제는 기후위기, 인구소멸문제, AI, 동물권, 다양성과 공존, 자기정체성, 딥페이크와 윤리, 혐오와 차별 등 다양하다. 우리가 거대한 전환의 시대에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이다. 인상적인 것은 교사와 예술가들의 협력으로 교육을 위한 리서치와 기획이 이뤄지면서 아이들의 개인적 차원으로 연결 짓고, 지역사회의 문제로 구체화하며 준비된다는 점이었다.
‘2050년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기후 및 생태 위기를 마주한 인류와 2024년도의 내가 소통할 수 있다면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 할까?’ 이 질문에서 시작된 예술 프로젝트 ‘내가GREEN이치’에서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은 생태교육, 도덕 교과를 연계한 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세계시민으로서의 감각과 목소리를 찾아갔다.
연천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과 함께 실제로는 재건축이 계획돼 있지만 학생들과 ‘만약 재건축이 취소되고 폐교가 된다면?’이라는 극적인 상황을 제시하고 연극을 통해 ‘사라진다는 감각’을 사유하는 시간을 보냈다. 이러한 경험 속에서 학생들에게 예술은 더 이상 특별한 공간에서 거리감 있는 존재가 창작한 작품을 봐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특정 장르의 기술을 연마하거나 난해함을 극복하고 익혀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예술은 자신의 시선으로 보고, 사유하며, 상상을 확장하는 힘이다. 그들은 예술을 그렇게 체화하고 있을 것이다.
예술교육은 우리가 각자의 삶을 돌보고, 서로의 삶을 이해하며,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가는 변혁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데에 중요한 조력자가 되고 있다. 예술과 예술교육은 더 이상 화이트 큐브나 무대 위, 학교 수업과 학원 교육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예술과 예술교육에 대한 인식이 일상의 삶에서 예술가의 작업에 이르는 길목 사이사이에 스며든 다양한 실천과 사유, 태도를 포괄하는 방식으로 새롭게 갱신돼야 한다. 니체가 말한 각자의 안에 있는 ‘초인(Übermensch)’을 발견하려는 개인적 분투 속에서, 예술적 사유와 실천이 자연스럽게 우리 일상에 자리 잡는 날이 도래하기를 바란다. 예술이 삶과 분리된 특별한 순간으로만 치부되지 않고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만들어가는 방식이 되는 날을. 그리고 저마다의 삶 속에서, 말랄라 유사프자이나 그레타 툰베리처럼 크고 작은 목소리를 내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내는 ‘변화를 만들어가는 힘(Transformative Agency)’이 곳곳에 충만하기를 기대한다.
서지혜 인컬쳐컨설팅 대표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는 예술경영과 예술교육, 문화정책 분야에서 연구와 사업 기획, 컨설팅, 인재양성 활동을 통해 예술과 시민의 삶 사이 간극을 좁히고, 의미 있는 접점과 관련성을 형성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음악가들의 사회에서의 존재에 대한 인식과 실천적 활동을 넓히기 위해 ‘사회참여적음악가네트워크’를 발족했으며, 저서로는 ‘한국형 엘시테마: 아동청소년오케스트라 일궈가기’가 있다.
서지혜 인컬쳐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