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사 수뇌부 중 파트너 물색, 공작통 박민우 아닌 문상호 픽!…계엄 수사2단에 생뚱맞은 HID 포함 ‘아리송’
일요신문 취재에 따르면,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접촉했던 정보사 수뇌부는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과 박민우 전 정보사 여단장 등이 거론된다. 정보사령관은 정보사를 지휘하는 총책임자 격이고, 정보사 여단장은 육군첩보부대(HID)와 공작파트 등을 총괄하는 ‘공작 총책’이다.
1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내란 국조특위에 출석한 박 전 여단장은 2024년 5월경 노상원 전 사령관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받았다”고 답했다. 연락 의도가 무엇이었던 것 같냐는 질문에 박 전 여단장은 “계엄과 관련해 역으로 생각을 해보니, 저에 대한 간보기 차원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한 전직 요원은 “누가 통제와 명령에 더 잘 따를지에 대한 간을 보는 격으로 연락을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다”고 했다. 비상계엄 프로젝트를 함께할 ‘장성급 현직 파트너’를 간택하기 위해 수뇌부 인사들의 의중을 살펴보려 했다는 취지다.
이 전직 요원은 “노 전 사령관은 박 전 여단장에 대해 ‘고집 세고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뒤 HID 실무 지휘관 포섭을 포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이 사령관 재직 당시 박민우 전 여단장은 속초 HID 부대장 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노 전 사령관이 박 전 여단장의 직속상관 관계였던 셈이다.
2월 4일 국회 내란국조특위에서 박 전 여단장은 “2016년 중요한 대북 임무 준비를 6개월 정도 했는데, 노 전 사령관이 당시 임무가 끝나고 요원들을 제거하라고 지시했다”면서 “그 얘기를 듣고 앞에서는 말을 안했지만 속으로는 쌍욕이 나왔다”고 말했다. 박 전 여단장은 “노 전 사령관은 특수전 비전문가”라면서 “(요원 제거 지시 이행을) 안 하고 안전하게 복귀시키면 되는 일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 사람(노 전 사령관)의 잔인한 면, 반인륜적인 면을 봤기 때문에 계엄 수첩에 적힌 용어들이 낯설지 않았다”면서 “그런 기억 때문에 만약 여단장 재직 중이었으면 노 전 사령관하고 뭘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박 전 여단장의 성향은 정보사 안팎은 물론 노 전 사령관도 이미 인지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박 전 여단장을 통해 HID 지휘체계를 장악하기 힘들다는 판단에 따라 노 전 사령관은 문 전 사령관을 ‘계엄 파트너’로 최종 선택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의 경우 노 전 사령관과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했던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관련기사 ‘버거 보살’의 남다른 인맥…민간인 노상원은 어떻게 ‘계엄 설계자’가 됐나).
노 전 사령관이 정보사 수뇌부를 접촉한 뒤 정보사는 초토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블랙요원 신상유출 사건과 정보사 수뇌부 갈등이 비화하면서 정보사는 유례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블랙요원 신상 유출 사건 수사 과정에선 방첩사가 대대적인 압수수색과 거짓말 탐지기 수사 등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지며 ‘과잉 수사’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관련기사 [단독] “벼룩 잡으려 초가삼간 태운 꼴” 방첩사 ‘블랙요원 신상유출’ 수사에 정보사 초토화).
정보사 수뇌부 갈등 당시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과 박민우 전 정보사 여단장은 민간 단체의 정보사 영외 사무실 사용 여부를 두고 감정 싸움에 돌입했다. ‘하극상’과 ‘폭행’이라는 주제를 두고 서로가 맞고소전에 돌입했다(관련기사 [단독] ‘광개토 사업’ 적임 민간단체 비토 탓? 정보사 수뇌부 갈등 시발점 추적).
박 전 여단장은 2024년 6월 중순경 직무배제됐고, 문 전 사령관을 둘러싼 인사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국방부조사본부가 이 사건을 조사할 땐 ‘편파 수사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정보사 쇄신’을 거론한 뒤 국방부 장관은 김용현 전 장관으로 교체됐다. 김 전 장관 취임 이후 문 전 사령관은 유임됐고, 박 전 여단장은 전출 조치됐다(관련기사 [단독] HID 지휘 체계 무력화…정보사 비상계엄 사전준비 정황들).
계엄사태가 불거진 뒤 정보사 수뇌부 인사조치 타임라인이 재조명됐다. 군 하극상에 가려졌던 새로운 쟁점들이 부각됐다. 박 전 여단장 숙청도 그중 하나다. 계엄 기획 세력이 정보사에 대한 그립감을 높이기 위한 빌드업 차원에서 박 전 여단장을 퇴출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전직 정보사 관계자는 “여단장 공백 상태에서 HID 지휘체계가 사령관이 진두지휘하는 방식으로 재편됐고, 이에 따라 HID 경력에 잔뼈가 굵은 영관급 인사들이 줄줄이 계엄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리게 됐다”면서 “노 전 사령관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친분을 강조하며 ‘진급’이라는 미끼를 던지며 HID 지휘체계를 완전히 장악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그는 “필드 커맨더(지휘관)들이 정치적인 대형 사고에 휩쓸리게 된 점은 개인적으로 보나 군 조직 차원에서 보나 큰 비극이자 손실”이라고 덧붙였다.
노 전 사령관은 계엄 과정서 HID를 활용하려는 의지를 강력히 피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HID는 방어보다 공격에 특화된 부대다. 그들의 공격 작전은 일반적인 공격과 거리가 멀다. 특수임무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비상계엄 국면에서 HID를 활용하는 것은 바깥에서 쓰는 칼을 식칼로 쓰려 했던 격이라는 평가다. 앞뒤를 따지지 않은 노상원식 HID 활용법에 대한 의구심은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의 전직 정보사 관계자는 “HID 전투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지 않느냐”면서 “계엄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면 ‘센 부대’를 데려온 쪽이 큰 공을 세웠다고 평가받을 것이란 일차원적 사고가 반영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바라봤다.
이 관계자는 “노 전 사령관은 보병 출신으로 정보 병과로 넘어온 뒤 주로 야전 정보를 취급하다가 정보사령관이 된 인물”이라면서 “HID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상황에서 전투력이 강하다는 인식만 있다 보니, 무작정 HID를 활용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비상계엄 과정서 ‘수사2단’이라는 별동대를 꾸리는 데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2단은 임무에 따라 1~3대로 세분화된 조직으로 파악되고 있다. 1대는 군사경찰, 2대는 정보사신문단, 3대는 HID로 구성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다른 전직 정보사 요원은 “HID 부대장, 소대장 출신이거나 HID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는 사람이라면 비상계엄에 HID를 활용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라고 손사래를 칠 것”이라면서 “HID를 주요 인사 신문 과정에 투입하려 했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 역시 비상식적인 일”이라고 했다.
이 전직 요원은 “신문단과 HID가 함께 움직이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라면서 “HID는 국정원이나 정보사 신문단처럼 누군가를 신문하거나 수사하는 임무와는 전혀 무관한 조직”이라고 말했다(관련기사 [단독] 강제북송 ‘특별한 포박’과 정보사 신문단의 정체). 그는 “노 전 사령관이 HID를 수사2단에 포함시킨 것은 그저 구색 맞추기였거나, 엉성한 계획이라고밖엔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어쨌든 노 전 사령관이 베일에 가려진 부대인 HID를 계엄에 적극 활용하려고 시도했던 것의 후폭풍은 국가적으로 큰 손실을 가져오고 있다”면서 “톱시크릿 격인 HID 관련 정보가 대외적으로 줄줄 새어나가고 있는 까닭”이라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