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연 확장 소극적 평가…자산 기준 상향으로 ‘중견기업’ 지위 놓일 수도
2023년 재계 순위는 44위, 지난해 재계 순위는 45위였다. 분할 초기 한국유리공업 지분 100%를 5904억 원에 인수해 LX글라스로 편입하고, 친환경 바이오매스 발전소업체 포승그린파워 지분 63.3% 인수, 북미 지역 물류 회사 트래픽스 지분 투자, 국내 차량용 반도체 설계업체 텔레칩스 지분 투자한 것 등이 주효했다.
하지만 대기업 집단 지위가 안정적인 것은 아니다. 한두 번 삐끗하면 언제든 다시 중견기업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는 무엇보다 외연 확장에 소극적인 탓이 크다. LX그룹은 HMM, 전주페이퍼, 2~3곳의 골프장 인수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LX그룹의 공격적인 M&A를 기대하고 협업을 추진하던 투자은행(IB) 분야 파트너사들도 실망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올해 대기업 집단 유지된다고 하지만…내년이 걱정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대기업 집단 자산 기준은 지난해 10조 4000억 원에서 11조 6000억 원 수준으로 상향 조정된다. 과거에는 자산 10조 원 이상 그룹은 무조건 대기업 집단이었지만, 2023년 우리나라 명목 국내총생산(GDP) 확정치가 2000조 원을 돌파한 이후 공정거래법에 따라 대기업 기준 자산이 ‘명목 GDP의 0.5%’로 바뀌었다. 대기업 기준 또한 우리나라 GDP와 연계해 움직이는 것이다.
통상 대기업 집단은 주요 계열사를 매각하지 않는 이상 자산이 자연스레 증가하곤 한다. 이익이 쌓일 수도 있고, 설령 기업 상황이 안 좋더라도 빚(부채)이 늘어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LX그룹은 업종 특성상 매출 규모에 비해 자산이 적은 상사(LX인터내셔널)와 물류(LX판토스)가 주력 계열사인 데다, 부동산 경기 악화로 LX하우시스가 고전하고 있어 자산 증가를 크게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LX인터내셔널은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6조 6376억 원, 4892억 원으로 전년 대비 14.6%, 12.9% 증가했다. 그러나 지난해 3분기 기준 자산총액은 8조 7691억 원에 불과하다. 시가총액 또한 9000억 원대에 그치는데, 증권가에서는 종합상사 또한 물류 비즈니스라 매출이나 이익 규모에 비해 자산은 조금 필요하고, 주가 또한 저평가받는 현상이 일어나곤 한다고 설명했다.
LX그룹은 지난해 상반기 말 기준 자산총액이 12조 2000억 원으로 이미 대기업 기준을 충족했다고 밝혔다. 하반기에도 자산이 늘었을 것이기 때문에 LX그룹은 아마도 대기업 집단에 남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공정위 집계는 기업 가결산보다 꼼꼼히 보기 때문에 LX 측 기대보다는 자산이 적게 나올 수는 있다.
LX그룹에 있어 문제는 앞으로다. 지난해는 미국 동부 항만 파업을 비롯해 물류난이 심각했고, 이로 인해 LX인터내셔널과 LX판토스와 같은 물류 기업들이 혜택을 볼 수 있었다. 올해도 지난해와 같은 긍정적인 물류 환경이 펼쳐질지는 알 수 없다. 반도체는 특히 우려된다. LX세미콘은 주력 매출처인 LG디스플레이가 LX세미콘이 아닌 중국산을 사용하면서 매출 감소 우려가 증권가에서 나오고 있다.
#LX그룹, LIG 말고 ‘제2의 LS’ 노린다
재계에서는 한번 대기업 집단에서 탈락하면 다시 회복한 사례가 적다는 점 때문에 LX그룹 또한 긴장하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LIG그룹이 대표적으로, LIG는 범 LG그룹의 첫 분할 사례다. 1999년 고 구인회 LG 창업 회장의 첫째 동생인 고 구철회 회장은 LG화재를 중심으로 한 일부 계열사를 갖고 나와 독립했다. 이후 2006년 LG화재 사명을 LIG손해보험으로 바꾸었고, 그룹명도 LIG그룹으로 변경했다.
LIG그룹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건설사인 LIG건영 등을 살리는 과정에서 사기성 기업어음(CP) 발행 논란으로 총수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비극을 겪었다. 법정관리(회생절차) 신청 열흘 전에 CP를 발행하면서, 고의로 투자자들에게 부실을 떠넘겼다는 지적이 일어난 것이다.
보험사는 다른 업종 대비 자산 규모가 큰 편이다. LIG손해보험만 해도 자산총액이 18조 원으로, LIG손보 때문에 LIG그룹은 한때 그룹 순위 8위에 자리하기도 했다. 그러나 LIG그룹은 건설사는 물론, 투자자들에게 배상하는 과정에서 LIG손보 또한 팔아야 했다. 자산은 5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고, 현재는 방산업체인 LIG넥스원 하나만 품고 있는 중견기업이 됐다. 대기업 지위 회복은 요원한 상황이다.
LIG그룹 외에도 LIG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LT그룹이나 LG에서 나온 아워홈, LB그룹, LF그룹 등은 오랜 기간 사세를 키우고 있음에도 아직 대기업 회복은 어려운 분위기다.
LX그룹이 참고할 만한 범LG가 그룹은 LS그룹이다. LS는 2006년 분할 당시 자산총액이 7조 원대였으나 연관 산업을 대상으로 꾸준히 덩치를 불리면서 지난해 기준 재계 순위 16위(29조 5000억 원)에 오른 상황이다. LS는 2030년까지 자산을 50조 원으로 늘리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다.
#LG유플러스 받았다면 어땠을까
LX그룹과 LG그룹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들에 따르면, 구본준 회장은 그룹 분할 당시 LG유플러스를 받는 방안도 검토했다. 2018년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연일 파격적인 쇄신 인사를 실시하는 와중에 구본준 당시 LG 부회장의 오른팔 격인 하현회 부회장을 LG유플러스 대표로 이동시킨 것에서 이 같은 관측이 힘을 얻었다. 실제로 하현회 부회장은 LX그룹 분할 직전인 2021년 3월까지 LG유플러스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일하다가 2022년 4월 LX인터내셔널 상근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구본준 회장은 LG유플러스는 통신 업계 3위에 그치는 데다 사업 확장이 쉽다며 거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LG유플러스는 현재 시가총액이 4조 원이 넘는다. 자산총액은 20조 원이 넘는다. 만약 LG유플러스를 받았다면 중견기업으로의 격하는 걱정하지 않았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만약 구 회장이 LG유플러스를 받기로 결정했다면, LG그룹이 다른 회사는 더 내주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구 회장은 사실상 계열사가 LG유플러스 하나인 그룹을 품게 되는 셈이다.
현재 LX그룹은 상사·물류를 주력으로 하면서 반도체, 석유화학, 건자재 등의 기업을 갖고 있다. 외양만 놓고 보면 LG유플러스를 받았을 때보다 포트폴리오가 다양하게 구축돼 있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경영진의 의지다. LX가 지난해까지 M&A에 보수적이었던 것은 구본준 회장 영향이 큰데, 그의 아들인 구형모 사장이 그룹 내 컨트롤타워 회사로 신규 설립된 LX MDI의 사장으로 낙점된 만큼 앞으로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HMM(옛 현대상선)을 비롯해 최근 2~3년 시장에 나온 매물은 대체로 비쌌기 때문에 LX그룹의 보수적인 움직임이 맞는 전략이었을 수 있다”면서도 “올해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LX그룹의 도약 여부에 상당히 중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