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최후진술을 듣고 놀란 것은 그의 현실인식이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반국가 세력’이라니, 북한이나 중국 등과 연관된 주권침탈 세력이 곳곳에서 암약하며 드디어 경찰, 검찰, 선관위, 헌재까지 침투해 있다니. 저 귀한 시간에 어떻게 저렇게 말도 안 되는 말만 할까. 아니, 자기 안에 갇혀 있음을 만천하에 드러낼까.
그리고 나니 긴긴 진술 중에 ‘승복’이 없었다는 점이 이해가 되었다. 탄핵이 기각되면 자리로 돌아가 개헌도 하고 정치개혁도 하겠다면서, 인용되면 헌재의 결정에 승복하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은 것이다.

갈등을 잠재우는 통합에의 의지가 진정으로 있었다면, 인용될 경우는 승복할 것이니 그동안 시위해준 지지자들도 승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가 주기를, 그 대신 기각되면 인용을 바랐던 시민들도 승복해주기를 바란다고 분명히 의지를 표명해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누가 봐도 중요한 최후진술의 날, 대통령은 시간 맞춰서 오지도 않았다. 자기 차례가 되어서야 모습을 나타내 자기 할 말만 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 마지막까지 경청할 줄 모른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밀어붙이는 데 익숙하고, 종종 불같이 화를 낸다고 해서 강한 성품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대통령은 생각보다 두려움이 많은 성격인 것 같다.
나라를 경영하는 태도와 스스로를 경영하는 태도는 다를 수 없다. 누구나 나라를 경영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나라를 경영하려는 자, 스스로부터 잘 경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대학(大學)’이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자기 속에 들끓고 있는 감정들을 돌보지 못하고 그 감정들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남탓만 하는 자가 천하에 나왔을 때는 세상은 늘 소란하다. 헤세가 말년에 쓴 ‘기도’라는 시에는 이런 표현이 있다.
“신이여, 내가 저지른 과오의 온갖 쓰라림을 맛보게 하시고, 그 고통의 불꽃이 나를 핥게 하소서. 모든 수모를 당하게 하소서. 나를 지켜나가도록 돕지 마시고, 내가 뻗어나가도록 돕지 마소서. 내 모든 자아가 산산이 부서질 때, 신이여, 그것이 당신의 손길이었음을 보여주소서. 그 불꽃들과 고통들을 당신이 낳으셨음을 보여주소서.”
“내가 저지른 과오의 온갖 쓰라림을 맛보게 하시고”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고 해서 헤세가 살면서, 우리가 모르는 많은 과오를 저질렀나보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기를. 그 과오는 도덕적이거나 법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사실 도덕적으로 잘못했으면 비난받거나 용서를 구하면 되고, 법적으로 잘못했으면 처벌 받으면 된다. 그것이 건강한 사람의 태도다. 그래서 우리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저지른 과오의 쓰라림’은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자신과의 관계인 것이다. 많이 가졌든, 적게 가졌든, 많이 잃었든, 적게 잃었든, 누구에게나 이 경험이 중심의 힘을 만들어주는 중요한 경험이다. 자기를 잘 경영하는 사람은 수모를 당할 줄 아는 사람이고, 고통의 불꽃이 자신을 핥는 쓰라림을 맛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자아가 부서지고 해체되는 시간 없이 아브락사스에게로 날아갈 수 없다. 그래야 바람에 실려와 내 마음에 닿은 것들을 햇살처럼 축복해주며 살 수 있고, 작은 일에 감사할 수가 있다. 작은 일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랑이 ‘나’를 감싸 ‘나’를 녹이면 세상엔 또 크고 작은 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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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