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법무장교로 근무할 때였다. 내란목적살인이라는 죄명으로 재판을 받는 김재규의 모습을 봤다. 그는 대통령을 총으로 쏴서 죽였다. 사형이라는 결론은 이미 정해진 재판이었다. 그는 법정이 아니라 세상과 역사를 향해 자신의 생각을 남겨두고 싶었던 것 같다.
그는 변호사들을 모두 물리쳤다. 그리고 최후진술에서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가 어떻게 꽃피워야 할지를 말했다. 그러면서 함께 잡혀 온 부하들은 용서해 줬으면 좋겠다고 간청했다. 나는 직접 체험해 보지 못한 그의 자유민주주의가 가슴에 스며드는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천황을 모시는 일제강점기와 왕 같은 박정희 대통령의 신하로 살아왔다. 그가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는 관념이나 추상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엄상익 변호사](https://storage3.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5/0207/1738889865602661.jpg)
“그의 죽음 직전 모습을 봤어. 손에 든 염주가 흔들리는데 사람이 그렇게 떠는 걸 처음 봤어.”
그 말을 듣고 인간 존재에 대한 여러 생각이 들었었다. 그 무렵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고 야권의 지도자인 김대중이 내란예비음모죄로 군사법원에서 사형이 선고됐다. 하루는 군검사인 선배 장교가 내게 김대중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의 최후진술 부분을 보여주었다. 일반적으로 조사를 할 때 마지막에 더 할 말이 없느냐고 형식적으로 묻는다. 대부분의 피의자들은 지치고 정신적으로 굴복한 상태에서 할 말이 없다고 해버린다.
그러나 김대중은 달랐다. 조서의 마지막 부분에 정성을 들여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자신의 정치철학을 적었다. 그는 세월이 20~30년 흘러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가 꽃피는 시절이 오면 자신의 재판에 대한 의미와 역사적 해석이 달라질 거라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나는 속으로 깊이 감동했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가 뭔지를 배운 것 같았다.
나는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내란죄로 재판을 받는 법정에 있었다. 하루에 8시간씩 꼬박 30일 동안 재판을 했었다. 나는 방청석에 앉아 1분도 놓치지 않고 메모하면서 끝까지 봤다. 검사의 신문에 전두환이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다.
“처벌받으면 될 거 아닙니까? 다만 내란죄의 공범으로 같이 잡혀 온 장군들은 살려줬으면 합니다. 그분들은 나쁘게 말하면 저에게 속았던 것이고 좋게 말하면 저를 신뢰해서 나왔던 겁니다. 전 책임이 나에게 있습니다.”
당당한 모습이 내 기억에 남아있다. 검사가 옆에 있는 노태우에게 물었다.
“12월 12일 국가의 위기 상황이라고 판단해서 군부대를 출동하셨다면 그게 일단 끝나면 군으로 복귀하셔야 하는 게 바른 입장 아닙니까? 왜 복귀하지 않으시고 현실정치에 관여하기 시작했습니까?”
“대답하고 싶지 않습니다. 역사가 얘기하겠죠.”
그들은 당당했다. 죄수복을 입은 두 전직 대통령의 기가 법복을 입고 높은 의자에 앉아 있는 재판장을 압도하고 있었다. 전두환에게 사형이 선고 됐다. 그는 김영삼 대통령의 냉정한 성격상 사형집행을 지시할 사람으로 보는 것 같았다. 전두환의 측근 인물을 통해 직접 들었던 얘기다.
이제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죄 법정이 예정되어 있다. 젊은 시절부터 내가 보아왔던 몇 번의 내란죄 심판 법정은 사법적 정의가 실현되는 곳은 아닌 것 같았다. 정치적 패배자를 처단하는 제사 같은 하나의 의식 절차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 일종의 혁명재판소 역할일 수도 있다. 나는 그렇게 본다. 법이라는 검은색 선글라스를 쓴 판사가 정치의 다양한 색조를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져 왔다고 했다. 이제 그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화려한 연설장이 아닌 법정에서 죄수옷을 입고 자유민주주의를 말해야 할 것 같다. 세상과 역사를 향해 나는 그가 당당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잔을 비우기를 바란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