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탄파 ‘배신자 프레임’ 벗고 확장성 강조, 반탄파 느긋…TK, 본선 경쟁력 갖춘 후보 전략적 선택 주목
반탄파인 홍준표 대구시장과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느긋한 표정이다. 이들은 영남이 고향이자 정치적 근거지인데다 윤 대통령 지지세력 지원 사격까지 받고 있기에 안심 모드에 들어가 있다. 보수 핵심 지지층인 영남이 반탄 터줏대감에게 마음을 고정할지, 아니면 중도 확장을 고려해 찬탄을 품어주는 전략적 선택을 할지, 정치권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3월 18일 보수 심장으로 불리는 대구를 찾아 몸을 바짝 낮췄다. 항상 당당하고 자신감에 찬 말투를 선보였던 한 전 대표는 이날만큼은 전략적 모호성 가득한 발언을 마다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에 대해 탄핵 찬성을 했던 과거가 있었는지조차 헷갈릴 정도였다.
그는 이날 대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반대한 보수 지지자들의 애국심을 존경하고 존중한다”고까지 밝혔다. 한 전 대표는 “보수 지지자 중에서 탄핵에 반대하는 분이나, 저나 큰 틀에서는 같다고 생각한다. 애국심은 공통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 전 대표는 계엄 해제와 국회의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과정에 대해 “여러 가지 어려운 결정을 많이 했지만 돌아보면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다만 ‘조금 더 생각하고 설득하고 경청할 걸’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있다”고 털어놨다. 그리고는 “후회하지는 않지만, 많은 분이 힘들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죄송하다”고도 했다.
한 전 대표는 대구 방문 때 경북대에서 강연도 했는데 강의장 주변에서는 한 전 대표 방문에 반대하는 시위대와 한 전 대표 지지자들이 고성을 주고받으며 한때 소란이 일었다. 이 때문에 학교에 도착한 한 전 대표는 정문이 아닌 다른 출입문을 거쳐 교내로 이동해야 했다. 한 전 대표는 이 장면을 의식한 듯 강연 말미에 “대구에서 저를 맞아주는 게 어렵다는 걸 안다. 정치가 참 어렵다”고 토로하며 마지막까지 겸손한 자세를 보여주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한 전 대표는 3월 1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는 법원 구속취소 결정으로 석방돼 관저로 돌아온 윤석열 대통령을 만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언젠가 때가 되면 대통령 뵐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보수 핵심 지지층을 의식, 윤 대통령에 대한 배신자 프레임에 걸려있는 상황을 타개해보려는 시도로 받아들여졌다.
한 전 대표가 대구를 찾은 같은 날 유승민 전 의원도 고향인 대구를 방문했다. 탄핵을 찬성해온 그는 국민의힘 대구시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영남대에서 ‘정치를 바꿔라 미래를 바꿔라’를 주제로 특강도 했다.
유 전 의원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윤 대통령 탄핵이 불가피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직도 생각이 변한 게 없다”고 했다. 하지만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우리 당이 크게 분열돼 정권을 내준 적 있다. 이번에는 탄핵 찬·반을 두고 국민의힘 내부가 더 이상 분열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고 했다. 경제학자로서 원칙주의자인 유 전 의원이 탄핵에 대해 강한 목소리를 줄이고 화합을 강조하는 유연함을 보여준 것이다.
유 전 의원은 대구 방문 바로 다음날인 3월 19일 YTN 라디오 뉴스파이팅에 나와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관계 개선 의지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이날 “인간적으로 오해를 풀고 화해를 하는 것이 제가 바라는 것”이라며 “정치적인 스케줄하고 관계없이 저는 그런 걸 바라왔고, 언젠가 그럴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배신자 굴레’의 부당성을 언급하면서 이 문제가 곧 해소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수 핵심 지지층에 대해 호소했다.
찬탄파였던 안철수 의원은 이들보다 앞선 3월 12일 대구를 방문했다. 국민의힘 대구시당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윤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했던 기존 입장을 고수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당시 (비상계엄이) 헌법 조항과 맞지 않다고 판단해 (탄핵소추에) 찬성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적극 찬성이 아니라 ‘어쩔 수 없었다’는 상황 논리를 든 것이다. “전문가 집단인 헌재에서 헌법 조문과 맞는지를 판단해 달라고 한 것으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한 안 의원 역시 보수 핵심 지지층을 의식해 전략적 모호성을 강하게 드러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영남을 찾아오지는 않았지만 그동안의 입장과 사실상 다른 경로를 타기 시작했다. 그는 3월 17일 TV조선 뉴스9에 출연해 탄핵 찬성파가 맞느냐는 물음에 “오해가 있다. 탄핵 소추를 하지 않고, 헌법재판소 판단을 받지 않고 어떻게 사태가 수습되겠나”라고 했다.
이어 오 시장은 “당이 쪼개질 가능성이 있어서 당론으로 (탄핵 소추를) 하라는 취지였고, 수습의 방식이었다”고 덧붙였다. 오 시장은 윤 대통령 탄핵 소추 2차 투표를 이틀 앞둔 2024년 12월 12일 페이스북에서 “탄핵 소추를 통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 결정은 당론으로 해야 한다”고 발언, ‘찬탄파’로 불려왔다. 그런데 최근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영남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한 의원은 “찬탄을 했던 잠룡들의 목소리가 달라지는 것은 결국 보수 텃밭 영남의 품을 떠나서는 정치적 미래가 없기 때문”이라며 “‘그때 제 생각이 짧았다’ 식의 메시지가 나오고 있으며 뉘우침 전략을 통해 보수 핵심 지지층의 인증을 받으려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줄곧 윤 대통령을 옹호해온 홍준표 대구시장은 최근 중도를 겨냥한 듯 영남보다는 전국을 누비는 행보를 보인다. 보수 핵심 지지층 마음을 이미 꽉 잡고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읽힌다.
홍 시장은 3월 18일에는 경제 유튜브 채널 ‘삼프로TV’에 출연했고 이튿날인 3월 19일에는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주최 토크 콘서트에서 강연했다. 홍 시장은 서울대 강연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 되기 어려울 것 같다. 헌법재판소에서 합의가 아마 안 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윤 대통령을 엄호했다.
홍 시장은 윤 대통령 계엄 목적에 대한 질문에 “내가 어느 인터뷰에서 ‘홧김에 서방질한 것 같다’고 했다. 그 정도로만 답변하겠다. 한동훈(전 대표)이 깐족거리니 대통령 입장에서 얼마나 속이 타겠나”라고 언급, 한 전 대표를 때리면서 윤 대통령을 곁을 지켰다. 한 전 대표를 대선판에서 완전히 밀어내려는 의도로도 받아들여졌다.
정치권에서는 검찰의 강제 수사가 3월 20일 전격적으로 시작된 오세훈 서울시장과 비교할 때 홍 시장은 ‘명태균 리스크’까지 확실하게 벗어날 경우, 입지와 파괴력이 더 커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홍 시장은 “명 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잇따라 그를 고발했으며 명 씨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대구·경북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한 의원은 “홍 시장은 윤석열 대통령과 맞붙었던 직전 대선 경선에서 대구경북 지지세를 얻지 못해 졌다는 생각을 했다”며 “그래서 대구시장에 도전해 당선됐으며 경남지사까지 지낸 이력을 무기로 영남권 맹주가 됐으니 지금 후보들 중에서는 가장 막강한 세를 지녔다”고 평가했다.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여권 잠룡들 가운데 가장 높은 지지세를 받고 있는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자리 특성상 뚜렷한 움직임을 나타내지는 않고 있다. 윤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이라는 점에서 조기대선을 얘기할 수도 없는 입장이라 보폭의 제한이 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 장관 역시 내심으로는 정치적 의지가 강하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여러 전문가들로부터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공부도 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턱걸이 동영상까지 나왔는데 이것만 봐도 꿈이 크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라고 당내 인사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중이다.
지난 2월 24일 김 장관 지지자가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페이스북 페이지 ‘김문수 이야기’엔 “김문수 장관 턱걸이. 영차영차. 운동의 시작과 끝은 턱걸이다. 건강이 최고다. 좋은 주말 되시라”는 글과 함께 김 전 장관이 턱걸이 운동을 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이를 두고 정가에선 1951년생인 김 장관이 고령 리스크를 불식시키려는 의도 아니냐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그동안 보수정당 대선 주자들은 영남의 선택, 특히 대구·경북에 따라 희비가 엇갈려왔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모두 대구·경북 출신이었고, 이곳에서의 전폭적 지지에 따라 대선 후보가 되고 청와대까지 갔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자신의 고향 부산·경남을 기반으로 대구·경북에 대해 “우리가 남이가” 신호를 던져 이를 승인받으면서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윤석열 대통령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이었던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다 2021년 3월 4일 검찰총장직 사의를 밝혔다. 그는 사의 발표 하루 전인 3월 3일 보수의 심장 대구를 전격 방문했다. 명분은 검찰총장으로서 대구고검 방문이었지만 현장에는 지지자들이 몰려 큰 혼란을 빚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정계 진출 의향을 묻는 말에 확답을 피했지만 대구고검 앞에는 10여 개의 응원 화환이 줄을 이었고 ‘윤석열 총장님 파이팅, 사랑해요’ 등 문구가 적힌 피켓과 태극기까지 등장했다.
당시를 기억하는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보수의 심장에서 대선 출마 승낙을 얻고자 검찰총장직을 던지기 전 대구를 찾은 것”이라며 “대구 방문 현장에서 TK(대구·경북)의 결재를 받았다는 확신을 가지자 검찰총장을 그만뒀고 이후 정치로 직행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보수의 핵심 지지층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아직 유동적이라고 한목소리를 낸다. 일단 정서적으로는 홍준표 시장이나 김문수 장관이 보수 핵심 지지층과 가장 가깝지만 서울 출신 윤 대통령을 TK가 받아줬듯이 확장성이 뛰어난 후보를 선택하는 전략적 결정이 나올 수 있다는 이유다. 특히 이재명 대표가 차기 대선에서도 계속 주자로 뛴다면 중도 확장성까지 고려하는 결정을 보수 핵심 지지층이 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찬탄파들이 영남의 문을 두드리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풀이된다. 이들은 고개를 숙이고, 후회하는 전략을 비치면서 배신자 프레임에서 빠져나온 뒤, 확장성에 기대를 걸어달라는 희망 메시지를 전달하는 전술을 펼 것으로 보인다. 보수 핵심 지지층이 윤 대통령에게 그러했듯이 이길 후보를 향해 마음의 문을 여는 역전극도 나올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전망이다.
사석에서 만난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흔히들 ‘호남의 전략적 선택’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이길 수 있는 후보에 표를 던진다는 뜻이다. 이는 그만큼 정권을 빼앗고 싶은 절박감에서 비롯됐다”면서 “한때 보수정당 후보들이 대선에서 계속 이겼지만 2000년대 들어선 더 이상 그렇지 않다. TK도 이젠 본선 경쟁력을 갖춘 후보에 대해 전략적 선택을 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