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회장 책임은 외면하고 법적 분쟁은 키워…“이익 사유화 손실 사회화, 본인이 비판하던 재벌보다 더 심각”
[일요신문] MBK파트너스가 대주주로 있는 홈플러스가 지난 4월 15일 피해를 입은 홈플러스 입점 점주들에게 내용증명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김병주 MBK 회장이 홈플러스 ‘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전단채·ABSTB)’에 투자한 피해자들을 형사 고소한 지 약 일주일 만이다. 피해자들과의 갈등이 법적 분쟁으로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김 회장을 비롯한 MBK 측의 ‘도덕적 해이’가 다시금 논란이 되고 있다.
홈플러스 입점 점주들이 받은 내용증명. 사진=피해 점주 제공#홈플러스 사태 해결 국회 간담회도 파행
홈플러스 법률상 관리인으로 있는 김광일 MBK 부회장이 일부 점주들에게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이는 기업회생 신청 직후 일부 점주들이 홈플러스 단말기 대신 개인 포스기를 사용한 데 따른 조치로, 홈플러스는 해당 점주들에게 매출 발생 금액을 즉시 현금으로 입금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열린 간담회에서 홈플러스 측은 해당 문제와 관련해 점주들에게 어떤 불이익이나 압박도 주지 않겠다고 밝힌 상태였으나 그 약속이 깨진 셈이다.
홈플러스 사태 해결을 위해 진행하던 국회 간담회도 사실상 파행을 맞았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홈플러스 대책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하면서 3월 9일부터 홈플러스 관계자와 입점업체, 노동조합 측 관계자가 모이는 간담회가 마련됐으나 홈플러스 측은 대여섯 차례에 걸친 간담회에서도 ‘논의해보겠다’며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와 관련해 민병덕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이 “MBK 측 인사나 실질적 결정권자는 오지 않고 하급자만 참석해서 무슨 협의를 하겠다는 것이냐. 지금 시간 끌기만 하고 있다”고 일갈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TF 측은 홈플러스 측의 불성실한 태도에 책임을 묻고 간담회를 잠정 중단했다.
앞서 전단채 피해자들은 김병주 MBK 회장으로부터 형사 고소를 당했다. 홈플러스 물품구매 전단채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비대위는 지난 4월 7일 김병주 회장의 자택에 항의성 전단지를 부착했다가 용산경찰서로부터 협박 관련 수사 협조 요청 공문을 받았다. 김 회장 측이 해당 행위를 협박으로 판단해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의환 홈플러스 비대위 상황실장은 “현재 피해자들의 전세 자금, 암 수술비, 부모님 노후 자금, 자녀 결혼 자금까지 다 물려 있다. 피해자들이 절박하고 어려운 상황이니까 제가 대책위 이름으로 조용히 전단지를 붙이고 왔는데 김병주 회장이 신고를 했다”며 “수천억 원 남짓한 피해를 안겨놓고 억울함을 호소하니까 자길 협박했다고 신고해버리는 게 너무한 것 아니냐”고 호소했다.
특히 부실채권인 점을 알면서 채권을 발행했다는 의혹이 일면서 MBK와 김병주 회장의 도덕적 해이 논란도 커지고 있다. 지난 4월 1일 금융감독원은 MBK와 홈플러스를 조사한 결과를 일부 발표하며 기업회생절차 신청을 준비하며 채권을 발행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을 포착했다고 설명했다. 김병주 회장은 이와 관련해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은 상태다.
이의환 비대위 상황실장은 “지난해 1000억 원대 전단채를 마구 찍더니 3월에 기습적으로 회생을 신청했다. 갚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 투자자들을 속인 것이다. 이건 사기죄에 해당한다”라며 “MBK에서 10년 장기 분할해서 100% 변제한다는데 자신들이 회생법원 판사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약속을 함부로 하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거짓이라고 규정했다.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 피해자들을 우롱하고 말장난을 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신용등급이 하락할 것을 알고도 채권을 발행한 점부터 이미 도덕적 해이가 발생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간담회도 면피용이고 여론이 식을 때까지 시간 끌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사진=MBK 파트너스#홈플러스 사태로 김병주 회장 명성에 흠집
김병주 MBK 회장은 1963년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 10대 때 혼자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해버퍼드칼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MBA)과정을 마친 김 회장은 칼라일그룹에 입사해 한미은행 인수를 주도하면서 사모펀드 시장에서 주목을 받았다. 2005년에는 사모펀드회사 MBK파트너스를 설립하며 독립했다.
MBK파트너스는 대우정밀을 시작으로 많은 인수입찰에 참여해 굵직한 인수전에서 성과를 거뒀다. 김병주 회장은 MBK의 최종투자결정을 좌우하는 투자심의위원회에서 유일하게 비토권(거부권)을 갖고 있는 등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MBK파트너스가 아시아 최대 규모 사모펀드로 발돋움하면서 김병주 회장은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발표한 한국 최고 자산가 1위(2023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홈플러스 사태로 김병주 회장의 명성에도 흠집이 가고 있다. 특히 수만 명의 이해관계가 얽힌 기업 회생 과정에서 실질적 책임자인 김 회장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 비판 여론을 부채질하고 있다. 홈플러스의 기업회생 신청 파장이 번지며 지난 3월 18일 국회 정무위가 김병주 회장을 전체회의 증인으로 채택했으나 김 회장은 전체회의 하루 전 불참을 통보하며 해외 출장을 갔다.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질타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3월 24일 투자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는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이 언론에 약간의 잡음(소음)을 일으켰다(The Homeplus rehabilitation generated some noise in the press)”고 언급해 비난을 자초했다.
김병주 회장이 앞서 역외탈세로 수백억 원을 추징당한 전력이 있다는 점도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기업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MBK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여론이 악화되자 김병주 회장은 지난 3월 16일 사재 출연 의사를 밝혔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김병주 회장은 소상공인 결제대금으로 사용하기 위해 최근 개인 자산 700억 원을 홈플러스에 증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조조정 전문 사모펀드(PEF) 큐리어스파트너스로부터도 DIP(Debtor in possession) 파이낸싱 방식으로 600억 원을 조달하면서 김 회장이 지급보증을 섰다. 연 10% 금리로 만기 3년짜리 대출로, 홈플러스가 갚지 못하면 김 회장이 대신 갚는다.
증권가 한 관계자는 “홈플러스가 정상화하기에는 사재 출연 규모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절반은 보증 성격이기 때문에 실제 돈을 지출한 것도 아니다. 채무 부담에 허덕이는 홈플러스에 고금리 대출만 얹어준 셈”이라며 “국민연금도 다시는 이런 성격의 투자는 안하겠다고 하고 MBK파트너스를 손절했다. 이미 해외투자자 비중이 몹시 높고 국내에서는 투자받기 힘들어진 만큼 더 이상 우리나라 자본이라고 보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MBK파트너스는 차입매수(LBO) 방식에 전환우선주까지 활용해 홈플러스를 거의 무자본으로 인수합병(M&A)했다. 그런데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못하게 되자 신용등급이 하락한 즉시 회생을 신청해 입점업체, 투자자, 직원 등 이해관계자들은 다 나락에 빠뜨렸다”라며 “전형적으로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사례에 해당한다. 김병주 회장 본인이 비판하던 우리나라 재벌들보다 도덕적 책임 문제가 심각하다”라고 지적했다.
상품 구색 무너지고 직원들 이탈…홈플러스는 지금
서울 강서구 화곡로 홈플러스 본사. 사진=최준필 기자회생신청 이후 홈플러스는 연일 뒤숭숭한 상태다. 최근에는 서울우유를 비롯한 주요 브랜드들이 납품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서울우유는 홈플러스 매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협력사다. 향후 고객 이탈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3월 진행한 ‘홈플런’이나 ‘몰빵데이’ 등 할인행사 기간에도 의류 브랜드 등의 행사 상품이 진열되지 않아 행사 효과가 반감됐다는 후문이다. 각 브랜드 점주들이 행사 상품을 받아 판매해도 정산을 제때 받지 못하기 때문에 브랜드 본사 측에서 상품 공급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강경모 홈플러스 입점협회 부회장은 “여름 상품이 한창 들어와야 할 시기에 납품이 뚝 끊겼다”며 “1월 매출 정산을 매달 30%씩 나눠 받는 상황에 정상 영업이 가능할 수가 없다. 홈플러스가 브랜드 본사에 대금을 정상 지급하지 못하면서 브랜드는 상품을 공급하지 않고 있고, 공급이 끊기자 판매 부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강한 우려를 표했다.
홈플러스 직원들 또한 위기감을 느끼고 퇴사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최근 불거진 퇴직금 미적립 문제도 내부 불안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홈플러스는 지난 4월 4일 입장문을 통해 2025년 적립 예정이었던 퇴직연금 사외적립금 1100억 원을 미납한 상태라고 밝혔다. 현재 적립률은 83% 수준이다.
최철한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 사무국장은 “회사 측이 온라인 매출이 늘고 있다는 보도자료를 내고 있지만 현장 분위기는 정반대다. 협력 업체들이 납품량을 줄이면서 매장 내 상품 구색이 무너지고 있으며 직원들은 이탈하고 있다”며 “회사가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책임감 있는 자세로 고통분담에 나서지 않으면 이탈만 심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