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 치솟고 인수희망자 사라져…보호주의 강화 속 정부 주도 관리 주장도

HMM이 SK해운 사업부 인수 작업을 전격 중단하기로 했다. HMM은 SK해운 인수를 위한 실사를 마치고 최종 가격과 고용 조건 등을 두고 막바지 협의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SK해운 인수는 초기에는 사업 다각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특히 벌크선 비중 확대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러나 LNG사업부를 인수하지 못하게 되면서 인수합병(M&A)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왔고 최근 HMM의 대주주인 산업은행의 BIS 자기자본 비율 하락 문제가 불거지며 인수가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BIS 비율은 자기자본을 투자금 등 위험가중자산으로 나눈 값으로 13%가 건전성 유지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산은이 보유하던 HMM 잔여 영구채가 지난 4월 전량 주식으로 전환되면서 HMM 주가가 오를 경우 산은의 BIS 비율이 급격히 하락하는 구조가 형성됐다. 이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산은이 HMM 지분을 매각해야 하지만 HMM의 시가총액이 최근 16조~17조 원에 육박하면서 경영권 매각이 쉽지 않은 상태다. 여기에 HMM이 SK해운까지 인수할 경우 덩치가 더 커지기 때문에 매각은 더 어려워진다.
산은은 HMM 지분 매각 의지를 밝히고 있지만 여전히 마땅한 인수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2023년 매각을 시도했으나 대기업들이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하림그룹-JKL파트너스 컨소시엄 역시 HMM의 높은 몸값에 부담을 느껴 인수에 발을 뺐다. 최근에는 잔여 영구채의 주식 전환으로 산은과 한국해양진흥공사(해진공)의 지분율이 71.69%까지 늘었다.
2023년 매각 추진 당시 정부 보유 지분의 가치는 약 6조 원 수준이었지만 현재는 12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불황이 예고돼 있어서 인수희망기업이 안 나타나는데도 몸값만 계속 높아지고 있다”면서 “트럼프발 무역 전쟁까지 감안하면 선사들이 언제 고꾸라질지 알 수 없다. 이 상황에서 막대한 비용을 들여 HMM을 인수할 만한 곳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HMM은 국내 유일 글로벌 컨테이너 선사다. 이 때문에 외국계 기업이나 글로벌 대형 선사들에 매각도 쉽지 않다. 2023년 글로벌 5위 선사인 하파크로이트가 인수전에 참여했지만 산은과 해진공의 반대로 적격심사에서 탈락했다. 전준수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는 “홈플러스 사태 때 봤듯이 사모펀드도 막아야 한다. 재벌 대기업의 경우도 해운산업이 어려워지면 손을 떼지 자신들의 다른 자원을 활용해 살리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인수 기업이 마땅치 않다”고 지적했다.
한종길 성결대 글로벌물류학과 교수는 “HMM은 불황을 앞두고 사업 다각화를 해야 하는데 산은은 BIS 기준 때문에 SK해운 인수하게 놔둘 수 없는 상황이다. 차라리 해운 경기가 안 좋았다면 산은이 적당한 선에서 팔 수 있겠지만 그것도 안 된다”라며 “타개책이 안 보인다. 획기적인 해결방안이 없으면 산은도 위험하고 HMM도 위험하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강석훈 산은 회장은 지난 4월 24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산은의 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HMM 지분을 팔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국제해사기구(IMO)에 따르면 해상운송은 전 세계 무역 물동량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HMM은 한국 수출입 물류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고 위기 시에 전략 물자 수송도 가능한 선사로 꼽힌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당시 전 세계가 선복량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HMM은 정부 요청으로 마스크, 반도체 장비 등 주요 품목 수송에 기여하기도 했다.
전세계 주요 국가들은 해운산업을 정부 차원에서 보호하는 추세다. 미국은 자국의 해운·조선사를 보호하는 법인 ‘존스 액트’를 고수하고 있고 중국은 국영 선사 COSCO를 앞세워 주요 항만을 장악하고 해상 패권을 강화하고 있다. 프랑스의 글로벌 컨테이너 선사 CMA CGM 역시 프랑스 정부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대만의 글로벌 컨테이너 선사 양밍도 정부가 최대주주다.
이와 관련해 국내에서도 HMM을 전면적으로 민영화하기보다는 정부가 대주주로 있으면서 장기적인 국가 전략에 따라 HMM을 운영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준우 성결대 글로벌물류학과 교수는 “민간에 완전히 매각하는 것보다 정부 주도하에 지분을 나눠 가지는 방식이 낫다고 생각한다. 다른 여러 주요 국가에서도 해운산업을 그렇게 관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종우 교수는 “해운이 필수산업이고 무역 비중이 큰 우리나라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정부의 관리하에 두는 방식에 동의한다. 인천공항공사도 잘 운영하고 있지 않냐”면서 “지금은 인수자도 없고 전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트렌드가 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공사가 전면적으로 운영하든지 정부 지분이 남아있는 상태로 민간과 함께 운영하든지 결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전준수 서강대 교수는 “해진공 출자한도를 완화해서라도 매각이 급한 산은 지분을 우선 해진공이 받아주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해진공 입장에서도 불리할 게 없다”라며 “HMM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유보금으로 산은 지분을 매수해서 자사주를 늘리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반면 여전히 민영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 회장은 “1대 주주는 무조건 민간기업이어야 한다. 완전히 국유화되면 방만경영과 도덕적 해이가 반드시 생긴다”라며 “민간기업이 40% 정도를 갖고 공공기관이 2대 주주, 나머지 30%는 해운·물류·화주 기업이 나눠 갖는 구조여야 한다. 그래야 공공성과 기업성이 같이 간다”고 제언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