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녀팀 궤멸 직전까지 몰리자 최정 비상 등판…이창호·서봉수 두 전설 연파 ‘희망 불씨’ 살려

올해 대회의 초반 흐름은 단연 이창호 9단의 독무대였다. 그동안 지지옥션배 통산 2승 7패로 부진했던 그는 이례적으로 선봉 출전을 자원했다.
신사팀 주장 조한승 9단은 “이창호 사범님께서 먼저 선봉으로 뛰고 싶다는 뜻을 밝히셨다”고 뒷이야기를 전했다. 이창호 9단 스스로도 “그동안 성적이 좋지 못해 기분전환 겸 자원했다”고 밝힌 만큼, 그의 등판은 모두의 예상을 깬 파격이었다.
‘낯선 선봉’ 이창호의 칼은 무섭도록 날카로웠다. 김상인 3단을 시작으로 백여정, 이정은, 박태희, 강다정, 정유진, 김주아 4단까지 숙녀팀의 젊은 기사 7명이 차례로 쓰러졌다. 대부분 이렇다 할 반격조차 해보지 못한 단명국 불계패였다.
파죽의 7연승. 이는 서봉수 9단의 9연승, 최정 9단과 조훈현 9단의 8연승에 이은 대회 역대 3위권의 대기록이다. 김주아 4단을 제압한 후 이창호 9단은 “7연승은 생각지 못했던 것이라 얼떨떨하다”면서도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기사와 공식 첫 대결을 치른 것은 처음이라 즐겁게 두었다”고 담담한 소감을 전했다.
그가 즐겁게 돌을 놓는 동안 숙녀팀은 궤멸 직전까지 몰렸다. 주축 선수들이 대거 예선 탈락하고 평균 연령 24세의 신예들로 팀이 꾸려진 숙녀팀은 살아있는 전설의 관록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스코어 0-7, 남은 선수는 5명 대 11명.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숙녀팀 비장의 카드 최정
결국 숙녀팀은 비장의 카드를 조기에 꺼내 들었다. 부동의 에이스, 최정 9단이 비상 등판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7일 열린 8국에서 이창호 9단의 8연승 도전을 저지하며 202수 만에 백 불계승을 거뒀다. 팽팽하던 중반, 끝내기를 앞둔 미세한 국면에서 승기를 잡은 최정 9단의 집중력이 빛을 발한 한 판이었다. 이로써 둘 간의 상대 전적도 4승 3패로 앞서나가게 됐다.
벼랑 끝에서 팀을 구한 최정 9단은 인터뷰에서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창호 9단이 선봉으로 나오리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창호 9단의 연승이 이어질 때 숙녀팀의 단톡방 분위기가 별로 좋지는 않았다”며 “다른 선수들의 대국 일정도 있고, 연승도 막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오가다 제가 나오게 됐다. 뒤에도 강한 선수들이 대기하고 있어 편안한 마음으로 나왔다”고 등판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우리 팀이 신사팀에 비해 전략이 좀 부족했던 것 같다”는 냉철한 자기반성도 덧붙였다.

하지만 그의 말은 겸손이었을까. 최정의 반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창호 9단을 꺾은 다음 날인 8일, 그는 곧바로 지지옥션배 9연승 신화의 주인공인 서봉수 9단과 마주했다. 그리고 이 대국마저 153수 만에 흑 불계승으로 장식하며 2연승을 달렸다. 이로써 스코어는 2-7, 남은 선수 5명 대 10명. 꺼져가던 숙녀팀의 희망의 불씨를 되살리는 귀중한 연승이었다.
승리 후 최정은 “될 수 있으면 많이 이겨서 뒤에 있는 선수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지만…, 1승도 쉽지가 않다. 5연승 정도 하면 재미있는 승부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이창호, 서봉수라는 두 전설을 연파한 최정 9단이 조한승, 유창혁, 목진석 등 10명의 강자가 버티고 있는 신사팀의 두터운 물량 공세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지지옥션이 후원하는 제19기 지지옥션배 신사 대 숙녀 연승대항전은 만 40세(1985년생) 이상 남자기사(랭킹 30위 이내 출전 제한)와 전 연령 여자기사가 팀을 이뤄 12대12로 벌이는 연승대항전이다. 대회 총 규모는 2억 4500만 원이며, 우승 상금은 1억 2000만 원. 3연승 시 200만 원의 연승상금이 지급되며, 이후 1승당 100만 원의 연승상금이 추가로 지급된다. 생각시간은 시간누적방식(피셔)으로, 각자 20분에 매수 추가시간 30초가 주어진다.
각 팀 선수명단 및 결과
[신사팀] 조한승, 목진석, 최명훈, 유창혁, 한종진, 이정우, 안조영, 서중휘, 최원용, 이상훈/ (탈락) 이창호, 서봉수
[숙녀팀] 최정, 김은지, 오유진, 이나경, 김채영/ (탈락) 김상인, 백여정, 이정은, 박태희, 강다정, 정유진, 김주아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