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 앞두고 “자사주 소각 의무화 회피 꼼수” 비판론…EB 발행 무산되면 신사업 추진에 영향 미쳐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주주 충실 의무 확대’를 골자로 한 첫 번째 상법 개정안이 통과된 데 이어 최근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상법 일부 개정안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태광산업의 EB 발행 시도는 전형적인 ‘꼼수’라는 비판이 터져 나온다.

지난 6월 27일 태광산업은 이사회에서 자사주 전량(발행주식 총수의 24.4%)을 담보로 3186억 원 규모 EB를 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사전에 이사회 안에서 논의가 있었는지를 두고 논란이 있었고, EB 인수자가 누구인지에 관한 정보가 공시에 명확히 기재되지 않아 절차적 문제도 발생했다.
EB 발행 목적으로 태광산업은 화장품·에너지·부동산 개발 등 신사업 투자를 위한 자금 확보를 내세웠다. 내년까지 약 1조 5000억 원을 투자해 부진에 빠진 회사를 일으켜 세우겠다는 것이다. 이 중 약 2000억 원은 애경산업 인수에 사용하겠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태광산업의 이 같은 결정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가시화하면서 이를 회피하기 위한 전략이 아니냐는 비판을 낳았다. 이달 초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담은 상법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여당에서는 주식시장 활성화 방안으로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난 11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기주식 소각 의무화’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기업은 자사주를 취득한 날로부터 1년 이내에 소각해야하고 기존 보유분도 소급 적용된다.
이런 시점에 구체적인 청사진도 없는 신사업을 위해 EB 발행을 시도한 것이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금융정의연대 등 9개 시민사회단체는 논평을 내고 “태광산업이 자사주 전량에 대한 교환사채 처분을 결정한 것은 상법 개정과 자사주 소각 정책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로 해석된다”고 지적했다. 태광산업의 2대 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도 “경영상 합리적 판단이 아닌 정부가 추진 중인 상법 개정과 주주 보호 정책을 회피하려는 꼼수이자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더 나아가 태광산업의 최대주주인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복귀를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의심마저 사고 있다. 자사주는 회사가 보유 중일 경우 의결권이 제한돼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지만 교환사채를 통해 투자자에게 넘어가면 의결권이 다시 살아나 경영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즉, 태광산업이 교환사채를 우호 주주에게 넘기면 대주주의 지배력이 강화되고, 이는 곧 이 전 회장의 복귀로 이어질 것이란 추측이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지난 6월 30일 법원에 ‘이사회 위법행위 유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며 EB 발행에 제동을 걸었다. 트러스톤자산운용 측은 태광산업이 충분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필요한 EB 발행으로 주주가치를 훼손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더해 태광산업 소액주주 연대는 EB 발행 및 자사주 처분과 관련해 의결한 이사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업무상 배임죄로 형사 고발했다.

현재 태광산업은 1조 4000억 원에 달하는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SK브로드밴드 지분 매각 대금 7776억 원을 확보하고 있어 외부 자금 조달이 꼭 필요한 상황은 아니란 시각도 있다. 그러나 태광산업 측은 석유화학·섬유 부분 등 기존 사업 유지에 필요한 5000억 원의 비용과 업황 악화에 대비한 3.5개월 치 예비운영비 5600억 원도 의무적으로 보유해야 해, 이를 모두 신사업에 투입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1차적으로 기존 사업 구조를 재편하고 비효율 자산을 매각하는 등 방법으로 신규 투자 여력 확보 시도를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 6월 30일 태광은 계열사 티알엔 지분 3.3%(9만 9713주)를 전량 장외 매각하고 약 137억 원을 확보했다.
이달(7월) 14일에는 중국 법인 태광화섬상숙유한공사의 스판덱스 생산 라인 가동을 일부 중단했다. 태광화섬상숙은 2003년 설립 후 연간 2만 7000톤 규모 스판덱스를 생산하는 거점으로 활용돼 왔으나 2021년 이후 매출이 급감해 현재는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있다. 지난 1월에는 울산 석유 2공장 프로필렌 생산 공장 가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지난해부터 기존 투자에 대한 전면 재검토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현재로써는 법원의 가처분 결정이 태광산업의 신사업 추진과 애경산업 인수 전략에 결정적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EB 발행이 최종 무산된다면 이호진 회장의 경영 복귀 가능성도 불투명해질 전망이다.
김계수 세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EB 발행이 최종 무산된다면 애경산업 인수 경쟁력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며 “새 정부 출범 후 국내 자본시장의 변화가 기업 경영 전략을 재편할 것이며 태광산업도 이에 맞춰 시장 신뢰를 확대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서는 주주 및 사회와의 소통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태광산업 관계자는 “EB 발행은 지배구조 강화, 경영 세습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며 “화장품 등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투자 재원으로 사용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추가 자금 마련 계획에 대해서는 “법원의 가처분 신청 결정에 따라 이해 관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교환사채 발행 여부 등 향후 의사 결정에 이를 반영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