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입시와 진학의 불공정을 몸으로 체험한 세대다. 명문중학교 입시가 치열할 때였다. 부잣집 아이 중에는 시험 치는 흉내만 내고 합격한 경우가 있었다. 돈의 힘이었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불합격한 영리한 아이 하나의 눈물이 뒤에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담임 선생님이 재벌 집 아이의 개인 과외를 해주고 있었다. 중간고사 전날이었다. 시험공부를 하는 나를 보면서 부잣집 아이가 내게 이렇게 자랑했다.

그러면서 그는 품에서 시험지와 답안지를 꺼내 내게 주었다. 다음날 시험장에서 사실을 확인했다. 나는 선생에게 가서 따졌다. 공정하지 않다고. 그날 저녁 나는 숙직실 뒤편의 공터로 끌려가 그 선생에게 죽도록 얻어맞았다. 주먹이 날아오고 발길질이 계속됐다. 힘이 없으면 정의도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부유한 집 아이들이 족집게 과외를 하고 있었다. 거기서 주는 자료에 대학 시험과 똑같은 문제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우리 집은 비싼 과외비를 댈 형편이 아니었다. 내가 그런 과외를 하는 아이에게 자료들을 한번 보여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그 아이의 냉랭한 표정과 대답이 지금도 뇌리에 생생하다. 그 아이가 이렇게 말했었다.
“우리 엄마가 비싼 돈을 내고 시켜주는 과외다. 그 자료들을 내가 왜 너에게 줘야 할까? 이런 것도 능력의 차이가 아닐까.”
그 아이의 입을 통해 같은 교복을 입고 있어도 스타트라인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족집게 과외선생이 대학의 출제위원들을 매수해서 시험에 나올 분야를 사전에 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고등학교 3학년 초였다. 반에서 한 아이가 계속 일등을 했다. 항상 수학이 백점이었다.
한번은 그 아이가 수학 시험지를 제출하는 걸 얼핏 보았다. 거의 백지상태였다. 나중에 그 아이에게 돌아온 답안지를 어깨너머 보았다. 완벽한 식과 답이 적혀 있었다. 채점과정에서 조작이 이루어 진 것 같았다. 그 아이가 어느 날부터 성적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을 했다. 그 어리석음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대학입시도 부정이 있었던 것 같다. 서울대를 졸업한 의사인 친구가 나이가 50대 무렵 내게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다.
“우리 때 대학입시에서 내가 대리시험을 쳐 준 적이 있어.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몇몇 공부 선수들이 철 모르고 그 일을 저질렀지. 그 시절 사당동 쪽에 가면 은밀하게 합성사진을 만들어 주는 곳이 있었어. 두 사람의 사진을 1mm 간격으로 잘게 잘라서 엇갈려 붙인 후 그걸 사진 찍어서 수험표와 주민등록증에 붙이는 거야. 그러면 시험관이 구별을 할 수 없었지. 당시 가격으로 3만 원을 받았는데 비싼 가격이었어."
친구는 고백을 이어갔다.
“2차 시험장에 가서 대리시험을 쳐 줬어. 어떤 친구는 대리시험을 쳐 줬는데 단과대학 수석으로 발표가 된 거야. 양심에 가책이 됐는지 대리시험으로 합격한 친구가 바로 군대로 가서 현실을 피해버리더라고. 내가 대리시험을 쳐줬던 친구는 의대에 합격했어. 세월이 흐르고 그 친구가 어느새 의대에서 원로교수가 되어 있더라고. 그 친구는 나만 보면 의도적으로 피하더라고. 거의 만난 적이 없어.”
이기주의와 불공정이 더러운 개천물 같이 흐르던 내가 살던 세상이었다. 편법을 통해 과대 포장되어 살아온 그들의 마음은 어떨까. 당당할까. 과거를 망각하고 있을까. 그래도 그런 건 극히 일부였다고 스스로 위로한다. 세상은 점점 밝아져 왔다. 대통령 측근이나 장관 자식의 특혜입학이 발각되자 바로 자격이 상실됐다. 민주사회의 핵심은 공정한 경쟁이다. 그리고 능력에 따른 결과를 인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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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