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회담 연기’ 해석 분분, 미일 협상이 가이드라인…방위비 인상 등으로 압박 나설 것으로 보여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7월 24일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하려 인천국제공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는 헛걸음이 됐다. 출국 1시간 전인 오전 9시경 미국 측으로부터 회담 일정 연기를 통보받았기 때문이다. 구 부총리는 굳은 표정으로 공항을 나왔다.
‘2+2 회담’은 한미 재무통상 장관급 협상으로 기대를 모았다. 구윤철 경제부총리와 여한구 산업통상교섭본부장이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만나 관세협상에 본격 시동을 걸 예정이었다.
신속하면서도 핵심을 빠르게 짚을 수 있는 고위급 회담 특성에 따라 관세협상 속도에도 추진력이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미국 측의 갑작스런 회담 연기 통보로 이재명 정부는 관세협상 암초를 맞닥뜨리게 됐다.

당분간 한미 관세협상은 ‘각개전투’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여한구 산업통상교섭본부장이 각각 협상 파트너와 접촉을 통해 물밑 협상을 이어갈 예정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협상 기한을 8월 1일로 못박아둔 가운데, 기한 내에 ‘2+2 회담’이 다시 추진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직 외교부 관계자는 “각개전투로 협상을 하게 되면 협상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실질적인 통상교섭부터 주한미군 방위비를 둘러싼 한미 시각차, 미국이 요구하고 있는 투자금 청구서까지 복합적인 사안이 얽혀있는 이번 협상서 각개전투는 미국의 협상 효율성만 극대화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바라봤다.
그는 “사정이 어찌됐든, 미국 재무장관이 갑작스럽게 일정 연기를 통보했다는 건 한미 관세협상이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 행보일 수 있다”면서 “고위급 협상 테이블을 빠르게 복원하는 것은 한국이 어떤 당근을 내미는지에 달려 있다는 메시지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웃나라 일본은 이미 관세협상을 마친 상태다. 7월 23일 일본은 기존 부과가 예정됐던 대미 상호관세 25%를 15%로 낮추는 협상을 극적으로 타결했다. 관세를 10%p 할인받는 데 필요한 대가는 엄청났다. 자동차와 농산물 시장을 추가 개방하고, 5500억 달러(약 760조 원)에 달하는 대미 투자를 집행하는 것이 관세율 인하 핵심 조건이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7월 23일 브리핑에서 “미국과 일본의 관세 협상 세부 내용을 파악하고 있다”면서 “우리 정부 협상에도 참고할 부분이 있으면 참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일 관세협상 타결 세부 내용은 한미 관세협상 기준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미 투자금 청구서에 적힐 금액도 일본 협상 결과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말이 뒤를 잇는다. 일본은 협상 초반 3000억 달러(약 413조 원) 규모 투자 펀드 조성을 제안했고, 협상 과정서 금액은 4000억 달러(약 548조 원) 규모로 늘어났다.
협상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투자 규모가 5500억 달러로 또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의중이 반영된 협상 흐름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은 일본이 처음 제안했던 투자금 대비 두 배가량 늘어난 투자금을 약속받았다. 여기다 쌀과 자동차 시장 등을 추가 개방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미국만 좋은 여러 조건들에 합의를 한 뒤에야 관세율 10%p 인하라는 대가를 어렵사리 얻어낸 셈이다.
일본의 대미 투자금 중 상당부분이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에 쓰일 것이란 관측이다. 향후 한미 관세협상에서 주요 의제로 떠오를 ‘대미 투자 펀드’ 역시 일본 투자금 용도와 궤를 같이 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미국은 한국에도 비슷한 협상 전략을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7월 23일 블룸버그 통신은 복수 소식통을 인용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통상 협상에서 4000억 달러(약 548조 원) 규모 대미 투자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이번 논의가 미일 무역합의와 유사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으며, 관세 인하를 대가로 대규모 투자 약속이 핵심 조건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 관세협상 기조는 뚜렷하다. 미국 농산물 수출을 확대하는 데에 큰 공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미 관세협상에서도 미국이 쌀과 소고기 등 ‘농축산물 수출장벽’을 공략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이유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한국에서 쌀과 소고기 등 농축산업 장벽을 허물긴 쉽지 않다. 이미 농축산업이 위축돼 있는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가 지지층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힐 리스크가 존재하는 까닭”이라면서 “이런 배경 상황에 따라 우리 정부가 ‘쌀 대신 조선’이라는 히든 카드를 준비하고 있지만, 트럼프와 협상에서 유효타를 날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바라봤다.
우리 정부가 준비하는 ‘카드’는 미국 조선 사업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데에 한국 조선업계가 힘을 보태는 방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미국 선박 산업 재건 의지를 다져 왔다. 트럼프 대통령 취향 맞춤 전략 일환으로, 대미 조선업 협력을 확대해 농축산물 시장 개방을 최소화하는 것이 우리 정부 측 주요한 협상 전략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 밖에도 미국산 원유수입 확대, 국내 기업 대미투자 확대 등 방안이 관세협상에서 우리 정부가 내밀 수 있는 ‘당근’이란 분석이 나온다.
통상교섭 분야에서 활동했던 한 관료 출신 인사는 “우리가 히든카드를 내밀어도 미국이 꿈쩍도 하지 않을 가능성이 존재할 수 있다”면서 “회심의 히든카드에 더해 농축산물 시장, 자동차 시장 개방 등까지 얹어 ‘일본 플러스알파’ 조건이 제시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이 인사는 “트럼프는 예측 불가능하며 즉흥적인 인물이고, 관세협상 컨트롤 타워이기도 하다”면서 “일본이 내놓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존재하는 데다, 시간까지 촉박한 것이 우리 정부 입장에서 곤혹스러울 수 있는 대목”이라고 했다.
그는 “트럼프가 대미 투자에 시장 개방을 요구한 뒤 ‘주한미군 방위비’ 카드까지 공론화할 경우 관세협상은 더욱 미궁 속으로 빠질 것”이라고 했다.
정치평론가 신율 명지대 교수는 “관세 협상이 마무리됐을 때 우리나라 상호관세가 15%보다 높게 책정되거나, 자동차 관세가 일본보다 높게 책정된다면 이재명 정부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이라면서 “일본이 미국에 투자를 약속한 금액이 우리 정부 1년 예산을 상회하는 수준인데,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정부 앞에 상당히 큰 과제가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인상 필요성을 지속 거론해 왔다. 한국을 ‘머니 머신’이라고 표현하면서, 미국이 한국을 지켜주는 대가를 너무 적게 받고 있다는 불만을 토로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전직 군 정보기관 관계자는 “많은 국민이 트럼프 대통령 ‘주한미군 방위비 인상’ 주장이 즉흥적이면서 불규칙한 행보 일환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사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는 치밀한 계산 속에서 이뤄진 정치적 행보일 수 있다는 측면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의 국내 정치적 실질적 영향력을 고려해 내놓은 ‘최종적 실익 계산서’ 속 핵심 키워드가 주한미군 방위비 인상 카드라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 내 군사안보 전문가그룹에서도 주한미군 감축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미국이 핵 억지력만 제공한다면, 북한 관련 안보리스크를 한국이 홀로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이 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미국 국방안보 분야 싱크탱크 ‘디펜스 프라이어리티즈(Defense Priorities)’는 7월 9일 ‘미국 이익에 맞춘 세계 군사 태세 조정’이란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엔 현 2만 8500명 규모인 주한미군을 약 1만 명 규모로 축소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상 및 항공에서 전투부대 인력을 다른 곳으로 재배치해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취지 내용이다.
안보 소식통은 “보고서 핵심 내용은 북한은 한국이 전담 마크하고, 미국은 전략적 재배치를 통해 더 중요한 지점을 견제하는 데 힘을 더 쏟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면서 “북한을 억제하던 미군을 중국 견제용으로 써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는 내용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소식통은 “1950년의 한국과 2025년의 한국이 전혀 다른 국가라는 전제로 쓰인 보고서”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 입장에서 주한미군 감축은 예정된 시나리오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상황에서 주한미군 감축 등 움직임이 이어진다면 국민 불안감이 높아질 여지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부분을 놓치지 않고 ‘주한미군 방위비 인상’을 지속 강조해 왔다. 머지않은 미래 주한미군 감축이 필연적이라는 것을 인지한 상태에서, 한국 국민 불안감을 매개로 ‘방위비 인상’을 언급하며 기업가 기질을 발휘하고 있는 격이다. 주한미군 감축 이전 방위비 인상으로 실익을 챙기겠다는 포석이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이 먼저 방위비 인상과 관련해 긍정적인 시그널을 내비칠 경우에만 관세협상에 나서겠다’는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구상할 수도 있다”면서 “이미 복잡한 무역 통상 분야 협상과 별개로 주한미군 방위비와 관련한 내용이 핵심 의제로 다뤄질 여지도 있다”고 분석했다.

7월 20일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겸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롯해 트럼프 행정부 고위급 인사와 접촉이 미국행 핵심 목표였다. 7월 9일 1차 방미를 마친 뒤 귀국한 위 실장이 11일 만에 다시 방미한 것을 두고 기대감이 증폭됐다.
그러나 위 실장은 루비오 국무장관을 직접 만나지 못하고 귀국했다. 위 실장은 7월 24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경제 부처 각료들이 분야별로 세부 협상을 하고 있다”면서 “한미 간 현안이 막바지, 꽤 중요한 국면에 있다”고 밝혔다. 위 실장은 “(방미는) 경제 관료들의 세부 협상을 지원하는 취지”라고 했다.
서면 입장을 통해 위 실장은 “루비오 장관과 면담이 무산됐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면서 “약속한 시간에 현장에 도착했으나 면담 직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루비오 장관을 호출하면서 (만남이) 무산됐고, 이후 유선을 통해 충분히 협의했다”고 했다. 위 실장은 “미국 측이 거절해 루비오 장관과 면담이 불발됐다는 보도는 위 실장과 루비오 장관 명예뿐 아니라 민감한 협상 국면서 한미 간 신뢰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7월 24일 대통령실 관계자는 위 실장 귀국에 앞서 “한미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긴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위 실장 또한 이번 방미 기간 중 미 행정부 안팎 인사들을 만나 우리 정부 입장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미국 측 접촉 인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이 제한되기에 양해 부탁 드린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통상교섭본부장이 방미 중이며 경제부총리와 산업부장관도 곧 미국 주요 인사와 면담할 예정”이라면서 “국익을 최우선으로 가장 좋은 혜안을 찾는 데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7월 25일 산업통상자원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7월 24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을 만나 관세협상 타결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고 밝혔다.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그러니 한국이 미일 무역협상 타결을 봤을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 상상할 수 있다”면서 “한국은 아마 ‘아, 어쩌지’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일 무역협상 선제 타결을 전제로 한국의 조급함을 이끌어내겠다는 취지 발언으로 풀이됐다.
회담 이후 보도자료에서 김 장관은 “이번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8월 1일 전까지 국익 극대화 관점에서 최선의 결과가 도출되도록 모든 역량을 쏟을 것”이라고 했다.
정치평론가 최수영 디아이덴티티 메시지전략연구소장은 “지금 시점엔 이재명 정부의 발상의 전환과 전략적 결단이 필요하다”면서 “노무현 정부가 지지층 요구에 반하는 한미FTA를 체결해 우리 경제 발전 초석을 다진 과거 역사를 반추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최 소장은 한미 관세협상과 관련해 “모두 다 얻으려 하면 모두 다 잃을 수 있다”면서 “국민과 지지층을 설득해 전략적 허용에 대한 부분들도 과감하게 고려하면, 트럼프 행정부와 협상에서 나름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 과정서 우리의 실익을 챙겨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