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뒤 사실혼 관계 유지하며 경제적 지원도 받아…전문가 “경제·정서적 분리 안 돼 박탈감 느껴 범행”

경찰이 CC(폐쇠회로)TV 등을 토대로 확인한 결과, A 씨는 9시 41분쯤 현장에서 빠져 나와 렌터카로 도주를 시작했다. 경찰은 범행 3시간 만인 21일 0시 15분쯤 서울 서초구 한 도로에서 A 씨를 체포했다. A 씨는 음주나 마약을 한 상태가 아니었고, 정신병력도 없던 것으로 조사됐다.
인근 병원으로 옮겨진 B 씨는 끝내 숨졌다. B 씨의 사인과 관련, “총상으로 인한 장기 손상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견이 나왔다.
경찰은 A 씨의 “집에 (21일) 낮 12시 사제 폭탄이 터지도록 설치해 놨다”는 진술을 토대로 21일 오전 1시 34분쯤 서울 도봉구 쌍문동 아파트에서 폭발물 수색 작업에 나섰다. 아파트 주민과 상가에 있던 사람들 105명이 긴급 대피한 채 수색 작업이 진행됐고, 3시 54분쯤 시너가 담긴 페트병과 세제통, 우유통 등 인화성 물질과 타이머가 결합된 점화장치를 발견했다. 폭발물 해체를 완료한 경찰은 오전 5시 무렵부터 주민들을 복귀시켰다.
경찰 조사에서 A 씨의 계획 범행 정황이 드러났다. A 씨 자택 CCTV 영상에는 범행 당일인 20일 A 씨가 아들 B 씨의 집으로 가기 전 큰 여행용 캐리어와 짐가방을 질질 끌고 나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A 씨가 반복해서 내용물을 확인하는 모습도 담겼다. A 씨는 트렁크를 렌터카 트렁크에 싣고 B 씨의 주거지로 향했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사전에 준비한 사제 총기로 아들을 향해 산탄 3발을 쏴 2발을 명중시켰다.
A 씨가 친아들을 살해한 구체적 범행 동기는 아직 미궁 속이다. 7월 24일 인천경찰청 등에 따르면 구속된 A 씨는 최근 프로파일러 조사에서 “가족 회사에 직원으로 이름을 올려 월 300만 원가량의 급여를 받았으나 지난해 어느 시점부터 지급이 끊겼다”면서 “국민연금을 일시금으로 받아 생활했으며 (B 씨는) 유일한 가족인데 등을 돌려 배신감을 느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이미 경찰 조사에서 ‘가정불화’와 ‘생활고’ 등도 언급한 바 있다.

B 씨 유족 측은 지난 7월 22일과 23일 입장문을 내고 A 씨의 진술 내용에 반박했다. 유족은 “가정 불화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은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은 A 씨가 주도면밀하게 계획하고 아무런 잘못이 없는 피해자를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무참히 살해한 사건”이라면서 “A 씨에게는 참작될 만한 그 어떤 범행 동기도 있을 수 없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A 씨가 며느리와 손주, 아들 B 씨 부부의 지인까지 살해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에 따르면 범행 당일은 A 씨의 생일잔치날로 B 씨와 그의 아내, 자녀 2명 그리고 B 씨 부부의 지인 등이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은 A 씨의 총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추가 범행에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현재 유족 상대로 참고인 조사를 진행 중이며, 추가 범행 정황이 확인될 경우 A 씨에 대해 살인미수와 살인예비 혐의 적용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은 이전까지 추측만 난무하던 가정사에 대해서도 명확히 언급했다. 유족 측은 “A 씨는 C 씨와 25년여 전 ‘A 씨의 잘못’으로 이혼했으나 C 씨는 B 씨에게 이혼 사실을 알리지 않았으며, B 씨가 혼인할 때까지 A 씨와 사실혼 관계로 동거를 하며 헌신했다”고 밝혔다. A 씨는 앞서 1999년 서울고등법원에서 강간 등 상해·치상 혐의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이 선고된 뒤 상고하지 않아 형이 확정된 사실이 드러났다.
C 씨가 A 씨와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던 이유는 이혼 당시 9세에 불과한 아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C 씨는 과거 인터뷰에서 “내가 사는 이유는 아들이 잘살게 하기 위해서다. 아들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아들의 아버지를 향한 경제적 지원도 이어졌다. 유족 측은 “A 씨를 위해 몇 번이나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가게를 얻어주는 등 지원했다”면서 “번번이 실패했으나 이에 대해 어떤 책임을 추궁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이어 “A 씨가 대학원에 가고 싶다고 해 대학원 비용도 지원해 줬다”고 밝혔다.

주민들은 A 씨가 이웃과 교류 없이 지내왔다고 말한다. 해당 아파트에서 7년째 살고 있다고 밝힌 한 주민은 “A 씨는 주민들과 교류 없이 지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곳에 산 지는 오래된 것으로 아는데, (A 씨가) 다른 사람과 인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30대 아파트 주민은 “이곳에서 산 지 4년 반이 다 되어 간다. 오가며 A 씨를 마주친 적은 있지만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자세한 건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서적·경제적으로 전처와 아들에 의존했던 A 씨가 박탈감을 느껴 범행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7월 2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A 씨가 C 씨 명의 아파트에서 거주해왔다는 것은 C 씨로부터 정서적·경제적으로 완전한 분리가 되지 않았다는 의미”라며 “20년 넘게 경제적인 도움을 받았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A 씨는 굉장히 박탈감 등을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오윤성 교수는 ‘일요신문i’와 인터뷰에서 “A 씨는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나이”라면서 “아직도 가족회사 지원을 언급한 것 역시 경제적으로 분리되지 못한 맥락”이라고 짚었다. 이어 “A 씨 입장에서는 자신의 도움 없이 C 씨가 아들을 제대로 잘 키워낸 과정에서 열등감과 분노, 질투 등을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생일파티에서 C 씨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B 씨를 극적으로 살해했을 것”이라면서 “이는 배우자에 대한 복수의 감정으로 자녀를 살해한다는 의미의 ‘스파우즐 리벤지 필리사이드(Spousal Revenge Filicide)’로도 볼 수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아주 드문 케이스”라고 분석했다.
한편, 유족의 반대 입장에 따라 A 씨의 신상정보 공개는 이뤄지지 않을 전망이다. A 씨의 범죄는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사망)가 발생했으며, A 씨가 범행 사실을 부인하지 않고 있어 신상정보 공개 요건에 부합하는 편이다. 하지만 특정중대범죄 피의자 등 신상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따르면 피해자 유족의 의사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