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5500억 달러 투자로 관세 인하 ‘구매’…한국 정부 대응에 이목 집중

국내 협상 분위기가 급속히 경색된 배경에는 일본과 미국의 협상 결과가 있다는 해석이다. 일본은 지난 7월 22일 미국이 통보한 25% 상호관세를 15%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일본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도 절반 수준으로 대폭 인하됐다. 그러나 그 대가로 일본은 5500억 달러(약 760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에 합의했다. 투자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임의로 지정할 수 있으며, 투자 수익의 90%는 다시 미국에 재투자해야 한다는 다소 굴욕적인 조건까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일본은 미국산 농산물 80억 달러어치를 추가로 수입하고, 보잉 항공기 100대도 구매하기로 했다. 반면 철강과 알루미늄에 부과된 50%의 고율 관세는 그대로 유지됐다. 트럼프 집권 이전 관세율이 2.5%에 불과했던 점을 고려하면 일본이 과도한 양보를 했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무리수를 뒀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집권당인 일본 자민당은 중의원 선거에 이어 지난 20일 참의원 선거에서도 단독 과반 득표에 실패했다. 1955년 이후 사실상 일당 집권 체제를 유지해오던 자민당의 잇단 선거 패배로 이시바 총리의 퇴진론이 거세진 가운데 이번 협상 타결이 이뤄졌다. 이시바 총리가 정치적 위기를 관세협상 타결로 돌파하려 했다는 의심이 제기되는 이유다.
문제는 우리에게도 불똥이 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정부가 준비 중인 대미 투자 계획은 1000억 달러 수준으로, 일본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지난 25일에 예정돼 있던 한미 통상협의가 돌연 연기된 것도 미국이 일본과의 협상 이후 한국의 투자 규모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고자 압박했다는 분석이다.
25% 상호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국내 제조업 전반은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미국이 지난 4월부터 수입 자동차에 25% 품목관세를 부과하면서 현대차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5.8%, 기아차는 24.1% 급감했다. 특히 일본의 상호관세가 15%로 낮아진 반면, 한국이 여전히 25% 관세를 적용받을 경우 일본과의 경쟁에서 가격경쟁력 열세가 불가피하다. 미국 시장 내 점유율 하락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특히 피해는 중소·중견기업에서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이 현지 생산이나 우회 수출 등 비관세 전략을 구사할 여지가 있는 반면, 중소기업은 직접적인 관세 부담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최근 열린 한미 통상 공청회에서 “미국이 현재 방침을 유지할 경우, 한국의 실질 GDP는 0.3∼0.4% 하락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해당 전망에는 일본의 관세 인하가 반영되지 않은 수치로, 실제 피해는 이보다 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다만 일각에선 협상 타결을 서두를 필요 없다는 반론도 있다. 단기적으로는 관세 폭탄을 감수하더라도 농축산물 등 민감 산업의 양보 없이 실리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번 협상은 단순한 관세 문제를 넘어 이재명 대통령이 내건 외교 기조의 신뢰성을 가늠할 중대 분기점”이라며 “협상의 실익과 국익의 균형을 중심으로 차분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