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가 10년 만에 선택한 스크린 복귀작…“김독자 그 자체였던 안효섭, 보자마자 안심”

“제가 아직 원작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나 유중혁 연기하게 됐어’라고 하니까 주변에서 다들 ‘걔 엄청 멋있는 캐릭터인데?’ 그러는 거예요. 진짜 부담되더라고요(웃음). 그런데 대본을 보니 멋있는 지점이 딱히 없었어요. 캐릭터가 성장을 이루고, 결핍을 극복할 때 멋있어 보이기 마련인데 대본 안의 유중혁에겐 그런 지점들이 많이 없었거든요. 단순히 멋지다고만 표현해선 설득력을 가질 수 없겠단 결론을 내렸고, 그래서 그가 이 세계에서 살아 내고 있는 모습과 정서가 연기에 어느 정도 묻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은 10년 이상 연재된 소설이 완결된 날 소설 속 세계가 현실이 돼 버리고, 유일한 독자였던 김독자(안효섭 분)가 소설의 주인공 유중혁(이민호 분)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정을 그린 판타지 액션 영화다. 글로벌 메가 히트를 기록하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동명의 웹소설(작가 싱숑)을 원작으로 한다.
이민호가 연기한 유중혁은 극 중 김독자의 애독 소설인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의 주인공으로, 현실이 된 소설 세계에서 홀로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인물이다. 적은 대사와 분량 탓에 원작을 보지 않은 관객들은 김독자의 내레이션을 통해서만 그의 설정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민호에게 있어서는 관객들에게 유중혁이라는 인물을 설명하기에 앞서 설득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였다고 했다.

20년 가까이 배우로 지내온 이민호에게 있어서도 표현해 내기 어려운 캐릭터였지만, 부담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애정도 느꼈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관객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캐릭터에게 먼저 다가가는 과정에서 자신과의 닮은 지점을 찾아내면서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유중혁이 가진 ‘멋짐’을 100% 표현해냈느냐에 대해선 아직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어도, 공통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연기에 도움을 준 것만은 확실했다.
“유중혁은 제가 닮고 싶고, 추구하고 싶은 인생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캐릭터예요. 결과와 상관없이 주어진 환경 속에서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나가는 지점이 특히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모든 걸 내려놔도 다시 살아갈 수 있는데도 계속해서 많은 감정을 이겨내며 끝까지 해내는 처연함이 제게 좋은 영감을 줬어요. 저도 인생을 살아가며 제가 걷는 모든 길이 어떻게 비치는지를 신경 쓰기보다는 주어진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주의로 살아가고 있거든요. 유중혁과 저는 그런 공통분모가 있는 것 같아요.”
극 중 김독자에게 있어 유중혁이 오랜 동경의 대상이었던 것처럼, 김독자를 연기한 안효섭에게도 이민호는 그야말로 ‘연예인의 연예인’이었다. 2015년 데뷔 당시 같은 소속사였던 이민호와 10년 만에 재회하면서 변함없는 ‘우상’에 애정과 신뢰를 쏟아냈던 안효섭을 두고 이민호 역시 “저도 (안효섭이 목소리 연기를 맡은) ‘케이팝(K-팝) 데몬 헌터스’ 재미있게 봤다”고 받아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도 ‘김독자’로서의 안효섭을 말할 땐 진지함을 잃지 않았다.

‘주인공의 주인공’이라는 평이 있어도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 속 유중혁의 분량은 일반적인 조연보다도 적은 편이다. 그 동안 출연해 온 작품 대다수에서 원톱 주인공이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주역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해 왔던 만큼 이민호의 유중혁은 영화와는 또 다른 파격을 대중들에게 안겼다.
특히 로맨스 장르 특화 배우로서 ‘왕자님’ 같은 이미지가 강했던 이민호가 결이 다른 얼굴을 성공적으로 보여줬다는 점에서도 주목 받는다. 2022년 애플TV+(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 ‘파친코’에서도 전에 없던 선택으로 처음엔 의심을, 끝에는 큰 호평을 받았던 그가 이번 ‘전지적 독자 시점’을 발판 삼아 더욱 새로운 도전을 펼쳐나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0대 때는 이런 제안(적은 출연 분량)이 거의 없었어요. 30대 중반 쯤 되니까 이렇게 다양한 인물들이 나오는, ‘구조’가 중요한 작품들의 제안들이 조금씩 오게 되더라고요. 제가 ‘상속자들’이나 ‘더 킹’ 같은 작품들을 선택할 땐 정말 심플하게 결정했거든요. 사랑 이야기거나, 교복을 입는 것처럼 내가 앞으로 더 못해 볼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면 선택하는 식이었죠. 그래서 의도치 않게 저한테 ‘판타지 왕자’ 같은 느낌이 선입견처럼 씌워졌던 것 같아요(웃음). 사람들은 ‘파친코’ 속 저의 출연이 의외라고 하시지만, 저는 사실 언제든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 경험이 제게 좋은 작용을 해서 앞으로도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많은 작품들을 할 수 있게 될 것 같고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