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 호황기 나홀로 역성장, 글로벌 리밸런싱 늦어진 여파…“빠르게 체질 개선중, 지켜봐달라”

LG생활건강이 올해 2분기 연결 기준 매출 1조 6049억 원, 영업이익 548억 원을 기록하며 ‘어닝 쇼크’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8.8%, 65.4% 줄어든 수치다. 화장품 부문의 부진이 실적 하락의 배경이다. 화장품 사업 2분기 매출이 6046억 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19.4% 감소했고 163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했다. 화장품 부문에서는 21년 만에 최초로 낸 분기 적자다.
LG생활건강의 실적은 경쟁사인 아모레퍼시픽과 대조적이다. 아모레퍼시픽의 2분기 연결기준 매출은 1조 50억 원, 영업이익은 737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1%, 1673% 증가했다. 중화권, 미국, EMEA(유럽·중동·아프리카) 시장에서 각각 23%, 10%, 18%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글로벌 포트폴리오 다각화의 성과를 보였다. 특히 해외사업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611% 급증하면서 2분기 실적 개선을 견인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리밸런싱(재조정) 시점이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의 실적 격차를 만든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양사는 과거 모두 중국 시장을 중심으로 프리미엄 브랜드를 성장시켰고, 2016~2017년경까지는 중국 내수 확장과 K-뷰티 붐을 바탕으로 고성장을 이어갔다. 하지만 사드 보복 사태로 인한 한한령과 코로나19 팬데믹, 중국의 자국 브랜드 육성 기조 등이 겹치며 중국 시장 내 한국 뷰티 브랜드가 빠르게 위축됐다.
이 시점에서 아모레퍼시픽은 미국 등 타 지역으로 빠르게 무게중심을 옮긴 반면, LG생활건강은 중국 의존 구조를 유지하며 전략 전환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아모레퍼시픽의 중화권 매출 비중이 전체 매출의 12% 수준에 그치는 반면, LG생활건강은 20% 안팎에 달해 중국의 내수 부진과 럭셔리 화장품 시장 둔화의 영향을 더 크게 받았다는 분석이다. LG생활건강은 현재 면세 물량 축소를 시작으로 강도 높은 사업 구조 재정비에 나선 상황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LG생활건강이 브랜드 가치 유지를 위해 중국 ‘따이궁’ 수요에 의존하던 면세 판매 물량을 조정하면서, 중국 시장 매출이 약 8% 감소했다. 해외법인 판매와 도매상 유통이 겹칠 경우 가격이 무너지는 부작용을 막기 위한 조치지만, 3분기에도 물량 축소가 예정돼 있어 당분간 수익성 악화는 불가피하다”며 “더페이스샵, 빌리프 등을 통해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으나, 이미 경쟁이 심화된 시장인 만큼 비용 투입 대비 뚜렷한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K-뷰티 열풍 속에서 인디 브랜드들의 약진이 두드러지며 글로벌 화장품 시장의 경쟁은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인디 브랜드 메디큐브 등을 운영하는 에이피알(APR)은 올해 2분기 연결 기준 매출 3277억 원, 영업이익 846억 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11%, 202% 증가했다. 비수기로 평가받는 2분기에 시장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는 역대 최대 실적을 내며, 시가총액 8조 1224억 원을 기록해 아모레퍼시픽(7조 5280억 원)을 제치고 화장품 업계 1위에 올랐다. 2분기 영업이익 규모는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을 합친 것보다도 크다.
조선미녀, 티르티르, 라카코스메틱 등 여러 중소 화장품 브랜드를 인수하며 빠르게 몸집을 키운 구다이글로벌의 경우 3년 내 기업공개(IPO·상장)를 조건으로 최근 8000억 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발행하며 대형 사모펀드들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최근 약진 중인 인디 브랜드들의 공통된 전략은 가볍고 유연한 사업 구조다. 오프라인 매장 등을 중심으로 유통망을 운영해오던 대형 브랜드들과 달리, 인디 브랜드들은 대부분 온라인 공식몰과 SNS를 통해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며 빠르게 브랜드 인지도를 확장하고 있다. 고정비 부담이 적고 마케팅 방향 전환이 빠르다는 점에서 최신 트렌드를 반영할 수 있어 경쟁력이 높다는 평가다. 한 인디 브랜드 운영사 관계자는 “대형 뷰티 브랜드들과 달리 차근차근 단계를 밟은 게 아니라 시작 단계부터 글로벌 진출을 염두에 두고 공격적인 온라인 마케팅을 펼친 점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LG생활건강은 여전히 해외법인 대부분이 오프라인 중심의 유통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내 자회사인 더크렘샵(The Creme Shop)은 백화점과 화장품 전문점 등 오프라인 유통 비중이 98%에 달했고, LG H&H USA 역시 일반 매장의 매출 비중이 69.7%, 온라인은 30.3%로 집계됐다. 에이본(The Avon Company)의 경우 방문 판매원을 통한 직접판매가 78.2%, 온라인은 21.8%를 차지했다.
이와 관련해 LG생활건강은 지난 4월 1860억 원 규모의 북미법인 유상증자에 참여하며 아마존 등 온라인 채널 중심의 마케팅 강화 방침을 밝혔다. 증자를 통해 북미 시장 내에서 더페이스샵, CNP, 빌리프, 닥터그루트 등 주요 뷰티 및 퍼스널케어 브랜드의 아마존 내 마케팅을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특히 기존 B2B 중심이었던 사업 구조를 B2C로 전환하고, 올해 아마존 매출을 전년 대비 70% 성장시키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화장품업계 한 관계자는 “뷰티 사업의 경우 워낙 유행을 타고 변화가 빠르기 때문에 마케팅 전략이나 제품 개발에 있어 유연한 대응이 중요한데, 대기업은 조직이 크고 의사결정 구조가 복잡하다 보니 구조 전환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최근 성과를 내고 있는 기업들 중 상당수가 비교적 규모가 작은 브랜드들인 이유도 이런 점에서 찾을 수 있다”며 “LG생활건강도 현재 구조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시차가 발생할 수 있다. 다만 이미 인디 브랜드들이 고객의 충성심을 확보한 상황이기 때문에 후발주자로 들어오고 있는 대형 뷰티브랜드들이 자리 잡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적 부진의 돌파구를 찾고 있던 LG생활건강은 최근 뷰티 디바이스 시장에도 본격 진출하며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에 나섰다. 지난 6월 LG전자로부터 인수한 뷰티 디바이스 브랜드 ‘LG 프라엘(Pra.L)’의 브랜드 자산을 활용해 ‘LG프라엘 수퍼폼 갈바닉 부스터’를 론칭하고, 전용 화장품 ‘글래스라이크’도 함께 선보였다. 기존 화장품 중심의 사업 구조를 탈피해 고가의 디바이스와 화장품 간 시너지 창출을 노린 전략으로 해석된다.
인수합병(M&A)을 통한 실적 향상 역시 잠재적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LG생활건강이 2023년 인수한 비바웨이브는 화장품 브랜드 ‘힌스’가 성장하면서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63%, 800% 증가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해 M&A 효과를 입증했다. LG생활건강이 풍부한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적절한 매물이 나타날 경우 적극적으로 M&A를 검토할 여지가 있다는 평가다. 다만 K-뷰티의 호황으로 현재 화장품 산업 내 M&A 시장이 과열된 상황이라, 당장 매력적인 매물을 찾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증권가에서는 중장기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단기적으로 큰 성과를 내긴 어렵겠지만, 에이피알을 통해 볼 수 있듯이 뷰티 디바이스와 화장품의 결합은 이미 시장에서 시너지 가능성이 입증된 영역이다. LG생활건강이 이를 제대로 디벨롭한다면 향후 추가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M&A의 경우 아모레퍼시픽이 코스알엑스를 인수한 것처럼 생산성 높은 브랜드를 확보할 수 있다면 실적 반등 계기가 될 수 있겠지만 무분별한 인수는 오히려 리스크가 될 수 있다. LG생활건강이 아직도 미국 자회사들의 사업 구조를 재정비 중인 만큼, 보다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LG생활건강 관계자는 “화장품 사업부문은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원가 부담이 커졌다. 중국 시장 내 가격 안정과 브랜드 건전성 제고를 위해 면세 채널 물량을 줄이고 있고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방문판매 등 전통 채널을 중심으로 국내 사업 구조를 재정비하면서 매출과 영업이익이 감소한 측면도 있다”며 “현재 빠르게 체질 개선을 꾀하고 있으니 지켜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M&A 방향성 등과 관련해서는 “뷰티업계는 K-뷰티의 흥행으로 밸류에이션이 과도하게 올라간 측면이 있으나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로 인해 화장품 브랜드의 수명 자체는 짧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M&A는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으며 향후 내부적인 기준에 부합하는 건이 있다면 미래 성장을 위해 지역에 구애받지 않고 과감히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