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재협상 지시, 이 대통령 “내란 규명과 맞바꿀 수 없어” 질타…김병기 ‘당 지도부와 교감’ 항변 전해져

오찬에 앞서 이 대통령은 여야 대표가 악수를 하도록 적극 중재하는 등 ‘통합의 정치’ 의지를 보였다. 이 대통령은 정 대표에게 “여당이 더 많이 가졌으니까 더 많이 내어주시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장 대표를 향해서는 “장 대표 말에 공감 가는 게 꽤 많다”며 “많이 도와주실 것 같아서 안심된다”고 말했다.
여야는 이날 회동에서 가칭 ‘민생경제협의체’를 구성해 공통 공약 등 현안을 논의하기로 하는 한편, 야당의 요청이 있으면 대통령과 여야 대표 회담을 수시로 열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여야 극한 대치로 얼어붙었던 정국이 협치 모드로 전환될지 관심이 집중됐다.
실제 9월 10일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 회동 후 합의 내용이 나왔다. 하지만 이 합의를 두고 여권 안팎에서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가장 논란이 된 내용은 내란·김건희·채해병 등 이른바 3대 특검법 개정안 일부 완화였다. 앞서 민주당은 개정안을 통해 각 특검의 수사 기간을 추가로 30일 더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를 국민의힘과 합의를 통해 개정안에서 빼기로 했다. 또한 수사인력 증원도 필요한 인원에 한해서만 증원하기로 했다.
대신 국민의힘은 이재명 정부의 정부조직 개편 핵심 중 하나인 금융감독위원회 설치를 위한 법 처리에 협력하기로 했다.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원회 위원장은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이다.

내부 반발이 거세지자 당 지도부 등은 김 원내대표의 합의가 사전에 조율되지 않이 본인들의 의사와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선을 그었다. 정청래 대표는 9월 11일 3대 특검법 수정 합의에 대해 “김 원내대표도 고생을 많이 했지만, 우리 지도부 뜻과는 많이 다른 것이어서 어제 많이 당황했다”며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도 달라 바로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이날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내란 특검 연장을 안 하는 조건으로 정부조직법을 통과시켜주기로 했다고 시끄럽더라”며 “이재명이 뒤에서 슬쩍 시킨 것 같다는 여론이 있어 나에게 비난이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다. 나는 (내용을) 실제로 몰랐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이 대통령은 “약간 더 효율적으로 일하자는 거지 정부 조직 개편 안 한다고 일 못하는 것 아니다”라며 “그냥 내가 참으면 된다. 정부조직법 좀 천천히 하면 된다. 패스트트랙 하면 6개월이면 된다. 한 달 후에 하나, 6개월 후에 하나 뭔 차이가 있나”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내란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서 다시는 꿈도 못 꾸게 만드는 게 민주공화국의 본질적인 가치 아니냐. 그걸 어떻게 맞바꾸느냐. 그런 건 타협도 협치도 아니다. 나는 그런 걸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결국 민주당은 9월 11일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를 통해 국민의힘 요구 사항의 일부만 수용한 특검법 재수정안을 내놓고,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국민의힘은 여야 합의가 하루 만에 번복되자 강하게 반발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이재명 대통령이 협치를 말해서 김병기 원내대표가 드디어 협치를 실천하나보다 했는데 ‘혹시나가 역시나’였다”며 “향후 국회 일정과 관련해 벌어지는 모든 파행에 대해서는 민주당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정국이 여야 강 대강 대치 국면으로 다시 빠져들면서 김병기 원내대표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여권에선 원내대표 사퇴 목소리까지 고개를 들었다.
다만 일각에서는 과연 김 원내대표 독단적 결정이었겠느냐는 반론도 나온다. 여권 한 관계자는 “원내대표는 당대표와 논의 없이 독단적으로 상대 당과 합의안을 도출할 수 없다. 정청래 대표 등 지도부와 교감을 가진 후 결정하지 않았겠느냐”며 “하지만 합의 내용이 나오고 여당 지지층에서 분위기가 좋지 않자 김 원내대표 선에서 수습하려 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전했다.
민주당 소속 법조계 관계자는 “기존의 특검법으로도 기간 연장 등을 고려하면 아직 70일 이상 수사할 시간이 남았다. 특검의 수사기간을 마냥 늘리는 것도 능사가 아니다. 특검 내부에서도 피로를 호소하고 있다”며 “당초 합의 때는 수사 인력만 늘리면 기존 특검 기간 내에도 수사를 마무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그동안 당 지도부, 법사위, 특위 등과 긴밀하게 소통했다. 법안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수사 기간에 대한 여러 의견이 있었다”고 전했다. 의총을 앞두고는 “정청래 대표에게 공개 사과하라고 하라”며 불만을 표출했다. 의총에서도 김 원내대표는 여야 협상 과정에서 당 지도부 등과 충분한 교감이 있었다고 항변한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의총에서 일부는 김 원내대표의 설명을 듣고 수긍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것이 특검법 재수정안에 담겼다”며 “당초 김 원내대표가 당 전체에 대화와 설득의 과정이 좀 부족했던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이에 이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 질책성 발언을 두고, 향후 정국에서 이 대통령이 그립감을 가져가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또 다른 야권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민주당은 이재명 대통령을 중심으로 강력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전당대회를 거치며 친명계가 분화하는 모양새를 띠며 어수선한 분위기다. 그 과정에서 이번 합의 논란도 불거진 것”이라며 “당이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일 때까지 이 대통령 중심으로 정국을 이끌어가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