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부으면 발전한다는 ‘스케일링 법칙’ 재확인…전문가들 “국내 산업·정책 등 전반에 시사점 커”

구글이 지난 11월 18일(현지시각) 공개한 제미나이 3.0은 출시 직후 주요 벤치마크 1위를 모조리 석권했다. AI 챗봇 평가 플랫폼 LM아레나에서 최고 점수를 기록했고, 박사급 난도의 GPQA와 ‘인류 마지막 시험’ 등 핵심 테스트에서도 GPT-5.1과 클로드4.5를 모두 앞섰다. 난이도 높은 수학 평가인 매스아레나에서도 기존 모델 대비 월등한 성능을 보였다.
제미나이 3.0 도입 이후 구글의 이미지 생성·편집 모델인 나노 바나나의 성능도 크게 개선됐다. 과거에는 원하는 이미지를 얻기 위해 여러 차례 재생성을 반복해야 했고, 이미지 안에 특정 텍스트를 삽입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특히 한글은 높은 오류율을 보이며 ‘O’를 ‘S’로 표시하는 등 원하는 문구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는 사례가 잦았다. 하지만 최신 모델에서는 한글 텍스트 삽입 성공률이 눈에 띄게 높아졌고, 대부분 한두 번 시도로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실제로 나노 바나나 프로에 ‘제미나이 3.0에 대해 소개하는 일요신문 기사 이미지를 생성’해달라는 프롬프트를 한 줄 입력하자 약 1분 만에 상당한 수준의 결과물이 생성됐다. AI 업계 한 관계자는 “이전에는 ‘참신한 수준’에 그쳤다면 지금은 ‘상당하다’는 평가가 가능해졌다. 사람들이 느끼는 ‘체감’의 수준이 달라진거다”라며 “더 이상 단계별로 프롬프트를 세세하게 짜서 지휘할 필요 없이 AI가 알아서 방향을 잡아 과업을 수행한 후 검증까지 끝낸다. 이미지 생성은 물론 상급 엔지니어 팀 수준의 코딩 작업도 단독으로 처리하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설명했다.
최병호 고려대 AI연구소 교수는 제미나이 3.0이 보여준 핵심 변화로 AI가 이제 단순 답변 생성 단계를 넘어 멀티모달 기반 ‘에이전트’로 진화했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사용자가 제주도 여행을 말하면 제미나이가 일정·예산·동행 여부·숙박 선호 등 수많은 변수를 스스로 가설로 세우고, 캘린더·메모리 정보를 바탕으로 항공권과 호텔을 추론해 예약 초안까지 만드는 수준에 도달했다”면서 “추론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했기에 공항까지의 이동 시간, 주차비용, 현지 교통수단, 과거 숙박 기록까지 종합해 사용자의 패턴에 맞는 최적 경로를 제시하고, 필요 시 결제 단계까지 이어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쟁사들도 긴장감을 드러내고 있다. 생성형 AI 시장을 주도하던 오픈AI의 샘 알트먼 최고경영자(CEO)는 사내 메모에서 “이제 우리가 구글을 쫓아가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알트먼은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가 공개한 제미나이 관련 게시물에는 “훌륭한 모델로 보인다”는 댓글을 남겼고,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역시 X(옛 트위터) 계정에서 이례적으로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업계가 이번 발표에 큰 충격을 받은 이유는 한계에 부딪혔다는 평가를 받았던 ‘스케일링 법칙(Scaling Law·투입 자원이 늘수록 성능이 향상된다는 법칙)’의 극적인 부활에 있다. 최근 GPT-5.1이 기대 이하의 성능을 보이면서 ‘아무리 GPU와 데이터를 쏟아부어도 더 이상의 획기적인 발전은 없다’는 비관론이 팽배했으나, 구글이 제미나이 3.0을 통해 이를 뒤집은 것이다. 등장 8년 차를 맞아 한계론이 제기되던 구글의 트랜스포머 아키텍처가 여전히 건재하며, 대규모 모델·연산 투입이 성능 향상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유효하다는 점을 다시 입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AI 업계 일각에서는 제미나이 3.0을 둘러싼 기대가 과도하게 부풀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경전 사용자중심인공지능(UCAI)포럼 연구원장은 “11월 19일에 메타의 얀 르쿤이 LLM은 더 이상 어렵다과 해서 메타를 떠나겠다고 밝혔고 9월에는 강화학습 대부인 리치 서튼도 LLM으로는 일반인공지능(AGI)을 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비록 제미나이 3.0이 나왔지만 스케일링 법칙이 언제 끝날지는 여전히 유효한 문제”라며 “현재의 열광은 비상장사인 경쟁사들과 달리 주가 부양을 원하는 구글 주주들의 심리가 반영된 측면이 크다고 본다. 특히 연간 수백조 원에 달하는 검색 광고 수익을 잠식할 수 있다는 딜레마 때문에 구글이 AI 서비스 시장의 완전한 패권을 쥐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시장에 던져주는 시사점
구글의 제미나이 3.0이 국내 시장에 던져주는 시사점은 적지 않다. 제미나이 3.0 성공으로 ‘스케일링 법칙’이 재확인되면서 수백만 장의 GPU 투입과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 냉각 시스템 등 모든 면에서 열세인 국내 AI 산업에 무거운 숙제를 던졌다는 진단이 나온다. 최병호 교수는 “미국이나 중국과 똑같은 방식으로 싸워서는 승산이 없다. 우리가 지금까지 선박, 방산 등에서 성공한 방식처럼 남의 기술을 우리 것으로 만들어 수출하는 ‘창의적인 노하우’가 절실한 시점”이라며 “추격할 수 있는 시간이 2~3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 AI 산업의 돌파구로 제조업 기반 ‘특화 AI(버티컬 AI)’ 전략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우리나라는 반도체 기술과 제조업 경쟁력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가전, 방산, 선박 등 우리가 세계 탑티어인 산업에 AI 기술을 결합한 특화 AI로 승부해야 한다”며 “미국이 제조업에 취약한 만큼 우리가 선두 기업들의 파트너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미중 패권경쟁의 틈새에서 우리의 강점을 활용해 활로를 찾아나갈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AI 모델 성능 경쟁의 한계를 넘어 기존 생태계와 그룹 채팅 기능 등을 활용하는 ‘서비스 락인(Lock-in)’ 경쟁으로 전장이 옮겨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술력 자체는 중요하지만 그것이 곧 서비스 우위로 직결되지는 않는 만큼, 이 지점에서 활로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홍대식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결국 플랫폼이라는 게 자기가 제공하는 기반을 가지고 많은 서비스들을 끌어들여 파생 부가 서비스를 확대하고 생태계를 형성하는 것”이라며, “AI 생태계 경쟁에서는 기술만으로 안 되는 지점이 있다. 누가 생태계를 잘 형성하고 그것을 통해 어떻게 사업 모델을 잘 만드느냐가 제2 라운드의 관전 포인트”라고 강조했다.
최병호 교수는 “오픈AI처럼 AI 모델만 가진 기업들은 이제야 메신저·포털·커머스 등과 접목하면서 서비스를 확장하는 단계지만 한국은 네이버·카카오 등 이미 탄탄한 플랫폼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며 “제조업에 접목을 해서 수출역량을 강화하는 특화 AI 쪽으로 가는 동시에 국내 플랫폼들이 이미 갖추고 있는 서비스·데이터 생태계도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주 연세대 컴퓨터과학과 교수는 “우리 정부도 미국과 중국 중심의 기술 질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소버린(Sovereign) AI’ 전략 추진에 나선 상태다. 비록 당장 우리가 글로벌 빅테크보다 뛰어난 모델을 만들지 못하더라도 이러한 시도 자체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정부 투자가 없는 상황에서는 국내에서 대규모 모델의 아키텍처 디자인부터 트레이닝까지의 전 과정을 경험하기 어려운데, 소버린 AI 과제 덕분에 국내 회사들이 이 과정을 수행하며 인력과 경험을 쌓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