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인지 청와대 인근 암석에는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고 전해진다. 세상에서 가장 복된 터라는 뜻으로, 청와대가 길지라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이 글귀는 조선시대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인식은 필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던 듯하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과 취임 직후 청와대를 광화문으로 이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그 이유 역시 위와 같은 '공간적 한계' 때문이었다.
그런데 윤석열 전 대통령은 본의 아니게 중요한 사실을 입증했다. 바로 공간만으로는 소통과 개방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가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옮긴 구체적 이유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용산이 청와대보다 ‘트인 공간’이라는 점은 객관적 사실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공간이 그 업무와 일을 좌우한다”든지,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실제로 용산이 공간적으로 소통과 민심 파악이라는 측면에서 청와대보다 유리할 수 있다는 기대도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이 주장의 한계가 명백히 드러났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면, 최소한 비상계엄 사태와 같은 비상식적인 사태는 벌어지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다. 열린 공간에 위치했다면 권력자의 의식도 그에 따라 개방적인 방향으로 작동했어야 하는데 현실은 정반대였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윤석열 정권이 남긴 많은 부정적 유산 가운데 오히려 교훈으로 삼을 만한 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즉, 공간보다 중요한 것은 권력자의 ‘마음가짐’이라는 점이 역설적으로 증명됐다.
윤 전 대통령은 용산 이전 초기에는 매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는, 이른바 도어 스테핑을 시도했다. 필자는 이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었다. 미국 대통령은 물론 일본 총리도 도어 스테핑을 하고 있었고 우리나라도 이를 실시함으로써 용산 이전의 정당성, 즉 소통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도는 몇 달을 넘기지 못하고 중단됐다. 대신 대통령 출근 모습을 가리는 가림막이 설치되면서 ‘출퇴근하는 대통령’이라는 상징성은 무의미해졌다. 과거 청와대에 머무르던 대통령은 출퇴근할 필요가 없어 기자 접촉이 적다는 비판에서 출발한 용산 이전의 논리는 결국 이렇게 허물어지게 됐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 보면,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하며 진정으로 민심을 읽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정치적 ‘열린 마음’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용산에서 청와대로 대통령실을 옮기려는 것에는 또 다른 현실적 고려도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군 관련 기관들과의 ‘거리’ 문제다.
필자는 용산 이전으로 인해 국방부 등 군 기관들과의 물리적 근접성이 비상계엄, 즉 친위 쿠데타 가능성을 직접적으로 높였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의 비상계엄 사태를 겪으면서 그러한 우려가 국민들 사이에 실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국민 불안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청와대 이전은 의미 있다고 본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국정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업무보고를 생중계하기도 했다. 물론 그로 인해 일부 부작용이 노출되었지만, 국정 방향을 국민에게 공개하겠다는 의지는 평가받을 만하다.
이러한 대통령의 철학과 방향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대통령실이 청와대로 이전하더라도 기자들과의 접촉은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기자는 단순한 언론의 구성원이 아니라, 국민을 대신해 권력을 감시하고 질문할 권리가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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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