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명 결정 직후 재심 청구하며 억울함 토로, 당 내부 원성 폭발…‘김병기 X파일’ 흉흉한 소문도

당 윤리심판원은 9시간 넘는 심의 끝에 김 의원을 제명하기로 결정했다. 가장 센 수위의 징계다. 윤리심판원은 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의혹만으로도 제명 처분에 해당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쿠팡 식사, 대한항공 숙박권이 징계의 주요 이유였다는 취지다. 윤리심판원은 김 의원 사태가 더 이상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한 정치적 계산도 고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병도 신임 원내대표를 비롯해 많은 의원들은 윤리심판원 결과를 계기로 김 의원 사태를 마무리 짓고 싶어 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1월 12일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서 “이 이상 끌고 가서는 한병도 원내대표가 산뜻하게 출범할 수 없다”며 “눈물을 머금고 ‘병기야, 자진 탈당해라’ 다시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1월 15일 의원총회에서 제명안을 상정할 계획이었다. 소속 의원 과반수가 찬성하면 제명은 확정된다. 하지만 김 의원은 제명 소식이 알려진 직후 페이스북에 “즉시 재심을 청구하겠다”면서 “의혹이 사실이 될 수는 없다. 한 달만 기다려달라는 요청이 그렇게 어려웠나. 이토록 잔인한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반발했다.
김 의원은 1월 13일 다시 “민주당이 없는 정치는 사형선고와도 같다. 제명을 당할지언정 스스로 친정을, 고향을, 전부를 떠나지는 못하겠다. 그것은 내게 패륜과도 같다”면서 “비록 내쳐지더라도 민주당 곁을 지키며 이재명 정부 성공을 기원하겠다. 모든 의혹이 규명되고 진실이 드러날 때 우산 한편을 내어 달라”면서 탈당 의사가 없음을 재확인했다.
윤리심판원은 재심 신청이 접수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해당 안건에 대해 심사·의결하도록 돼 있다. 김 의원 징계 심의가 길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당 일각에선 정청래 대표가 직권으로 비상징계를 할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흘러 나왔지만, 정 대표는 “윤리심판원(제명)이 이렇게 나왔고, 심판원이 이제 지금 심리 중이기 때문에 그 프로세스를 존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선을 그었다.
민주당 윤리위는 재심 절차를 최대한 빠르게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1월 13일 서면브리핑을 통해 “당은 정해진 규정에 따라 재심 절차가 진행되는 것 또한 존중한다”면서도 “이번 사안의 중대성과 국민적 관심을 고려할 때, 재심 절차는 신속하고 엄정하게 진행되어 조속히 결론이 도출될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에선 김 의원을 향한 원성이 쏟아졌다. 박용진 전 의원은 1월 13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김 의원이 ‘한 달만 기다려 달라’고 요청한 것을 두고 “한 달이면 당은 너덜너덜해질 것”이라며 “이 문제를 신속하게 정리하지 못하면 지방선거를 앞두고 최대 위기 요소 중에 하나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초선 의원은 “재심을 청구할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윤리위가 징계로 명분을 만들어주면 김 의원이 당을 나갈 것이라고 봤다”면서 “윤리위가 아무리 빠르게 심의한다고 해도 서류 접수 등을 감안하면 1월 안엔 힘들 것 같다. 설 연휴를 앞두고 최대 악재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당을 이렇게 사지로 몰아넣고 있으면서 이재명 정부 성공을 운운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고 직격했다.

강선우 의원의 공천 헌금 수수 내용이 담긴 대화 녹취록이 터지자 김 의원을 향한 시선은 더욱 묘해졌다. 강 의원은 김 의원과의 대화에서 “1억 원을 받았다”는 취지로 말하며 “살려주세요”라고 했다. 이 녹취록이 어떤 경로로 공개됐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민주당의 많은 의원들은 김 의원과 나눈 대화가 녹음이 됐다는 부분에 주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재선 의원은 “내가 동료 의원을 방문하거나 통화로 무언가 고민을 털어놨는데, 그 대화가 녹음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의원들 사이의 대화가 녹취돼 공개된 사례가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강선우 의원 녹취록이 알려진 후 나부터도 과거에 김 의원과 어떤 대화를 했는지 곱씹어봤다”고 털어놨다.
더군다나 김 의원은 2024년 총선을 앞두고 후보자 검증위원장과 공관위원회 간사를 맡으며 공천을 주도했다. 현역 의원들과 관련된 비공개 자료들을 김 의원이 접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강선우 의원 공천 헌금 사건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바라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앞서의 재선 의원은 “(김 의원이) 강 의원을 고른 걸 두고 고도로 계산된 것이란 얘기가 많다. 강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은 물론, 정청래 대표와도 가깝다. 일부러 그런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친명계는 김 의원 불똥이 이재명 대통령으로까지 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이다. 김 의원은 2024년 총선과 탄핵 정국, 2025년 대선을 거치며 친명 핵심으로 승승장구했고, 그 여세를 몰아 집권당 원내대표로까지 오를 수 있었다. 앞서 이수진 전 의원은 김 의원이 공천헌금을 받았다가 되돌려줬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2023년 12월경 당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 측에 전달했지만 묵살당했다는 취지로 폭로하기도 했다. 김 의원 사건이 번질수록 이 대통령 이름이 계속 거론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일각에선 김 의원이 사법 리스크를 염두에 두고 ‘SOS’를 보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적 재기는 사실상 어려운 상황에서 향후 이뤄질 경찰 수사 강도를 최소화하기 위한 행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의 민주당 재선 의원은 “어차피 김 의원 정치 인생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수사는 남았다. 김 의원으로선 본인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