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문화재 발굴 가능성 등 착공 변수…전문가들 “경쟁력 유지 위해 빠른 완공 필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일대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도로 건설하고 있는 산업단지다. 2019년 2월 정부와 SK하이닉스는 처인구 원삼면 일대 415만㎡(126만 평) 부지에 일반 산업단지를 조성해 팹(Fab, 반도체 제조 공장) 4곳을 만들고 50여 개 이상 협력사를 입주시키겠다는계획을 발표했다. 기존 투자 규모는 120조 원이었으나 건설비 증가, 첨단 장비(EUV 등) 도입 비용 상승 등으로 인해 600조 원 이상으로 늘어났다.
삼성전자는 2023년 3월 처인구 이동읍·남사읍 일원 777만 3656㎡(약 235만 평) 부지에 팹 6기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360조 원을 투자할 계획이지만, 향후 생산설비 건설 진행 상황에 따라 투자규모가 늘어날 수 있다. 발전소 3기, 60개 이상의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설계 기업, 연구기관 등도 입주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2025년 2월 첫 번째 팹 착공에 나섰다. 첫 번째 팹은 2027년 5월 완공될 예정이며, HBM(고대역폭 메모리) 등 AI(인공지능) 산업에 필요한 차세대 D램 메모리의 생산 거점으로 만들 계획이다. 나머지 팹 3곳은 2050년까지 순차적으로 건설될 예정이다.
삼성전자가 입주할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는 첫 삽을 뜨지 못한 상황이다. 올해 하반기 착공 예정이었으나, 최근 매장문화재 조사가 새 변수로 떠올랐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문화재 발굴 가능성이 확인돼 1월 초 삼성 국가산단 부지에서 매장 유산 시굴(표본) 조사에 착수했다. 기간은 약 12개월로 예상된다. 관련 법령에 따라 매장유산 조사가 완료되기 전까지는 반도체 산단 내 조사대상 부지 내 개발이 제한된다.
권영화 서울기독대학교 글로벌AI융합대학 교수는 “해외에서는 부지 선정부터 팹 완공까지 보통 5년 정도 걸리는데, 2년 안에 팹을 완공하는 경우가 있다”며 “SK하이닉스가 보상 문제로 인해 착공 시점이 지연됐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주민과의 원만한 합의가 어렵다는 점이 변수”라고 지적했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가 행정소송에도 휘말렸다. 환경단체 기후솔루션 소속 활동가들과 시민 16명은 국토교통부를 상대로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계획 승인 처분 무효 확인 등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들은 용인산단을 계획할 때 기후변화영향평가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산출하면서 간접배출량을 누락해 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재판장 이상덕)는 1월 15일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기후변화영향평가에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 미흡의 정도가 (평가를) 하지 않은 것과 다를 바 없는 정도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며 “이로 인해 이 사건 산업단지계획 승인처분이 곧바로 위법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고 판시했다. 원고 측은 항소 여부를 검토 중이다.

전력 수급·수도권 집중·지역균형발전 이슈 등으로 인해 일부 정치권에서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호남 이전론이 대두됐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26일 CBS 라디오 ‘경제연구실’에 출연해 “용인의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입주하면 그 두 기업이 쓸 전기의 총량이 원전 15개, 15GW(기가와트) 수준”이라며 “꼭 거기에 있어야 할지, 지금이라도 지역으로, 전기가 많은 쪽으로 옮겨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전론에 대해 선을 긋고 있다. 김남준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1월 8일 브리핑에서 “(정부는) 클러스터 대상 기업의 이전을 검토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기업 이전은 기업이 판단해야 할 몫”이라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도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의 서면질의를 통해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대상 기업의 이전은 검토한 바 없다”며 “안정적인 전력·용수 공급을 위한 효율적 방안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막대한 전력을 끌어올 송전망 구축이 주민 반발로 어렵고 인근에 새로운 발전원을 설치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소위 ‘깡통 팹’이 되지 않겠냐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지난해 12월 대통령실에서 열린 ‘인공지능(AI) 시대의 K-반도체 비전과 육성 전략 보고회’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필요 전력 15GW 중 60%인 9GW의 공급 방안만 확정됐다. 삼성전자는 9GW 중 3GW, SK하이닉스는 6GW 중 3GW를 확보했다. 추가로 양사는 한전과 3GW 규모의 MOU를 체결한 상황이다.
정동욱 중앙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필요 전력량인 15GW 공급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면서도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최근 시행되면서 인허가 기간이 짧아졌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발은 여전히 심한 상태이기 때문에 정치권에서 갈등 조율 역량을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전력 공급 계획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와 같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속도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계획에 차질이 생긴 여파로 SK하이닉스가 청주공장을 확장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며 “전 세계 각국이 반도체 자급화 기조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빠른 완공이 필요한데, 정책 혼란만 가중되면 안 된다”고 밝혔다.
이종환 상명대학교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향후 반도체 수요가 어떻게 변할지는 불투명하지만, 수요가 폭증할 때 생산 시설이 미리 준비돼 있어야 바로 생산할 수 있다”며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도 조성하려고 하는데, 자칫 잘못하면 미국에 투자 비중이 쏠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SK하이닉스 관계자는 “1단계로 필요한 전력 약 3GW 공급을 위한 인프라 공사를 하고 있고, 나머지 공급량에 대해서는 한국전력과 MOU(양해각서)를 체결한 바 있다”며 “용인 첫 번째 팹의 경우 클린룸(청정실) 오픈 일정이 앞당겨질 수 있는데, 현재는 착공 및 완공이 지연되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전력, 산업용수 등 인프라와 관련해서 지자체 등과 협의 중이지만, 상세한 내용을 알려드리기는 어렵다”며 “삼성 평택 P5(5공장) 착공 등 공급망 효율화 측면에서 즉각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영현 기자 nog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