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일방통행” 친명계 반발, 명청 갈등 재점화 우려도…무산 땐 정 대표 리더십 ‘흔들’

이어 “민주당과 혁신당이 이제 시대정신에 입각해 이재명 정부의 성공이라는 공동 목표를 위해 원팀으로 같이 뛰어야 한다”며 “합당을 위해 조속히 실무 테이블이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조국 대표도 즉각 답변을 내놨다. 전북 전주시 당사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어제 늦은 오후 정 대표를 만나 발표 내용을 전달받았다. 갑작스럽지만 제안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기에 최고위원들과 함께 숙고했다”며 “국민의 마음과 뜻이 가리키는 방향에 따라 논의하고 결정할 것”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국민과 당원의 목소리를 경청하기 위해 의원총회와 당무위원회의 조속한 개최를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정청래 대표 깜짝 발표에 당에서는 뜨거운 공방이 벌어졌다. 정 대표는 합당 제안 20분 전 비공개 최고위원회를 소집, 최고위원들에게 통보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민주당에서는 ‘당원의 뜻을 묻지 않은 소통 없는 일방적 결정’이라고 비판이 쏟아졌다.
‘친명’ 강득구 최고위원은 자신의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오늘 아침 한 대 얻어맞은 듯한 큰 충격을 받았다”며 “최고위를 거수기로 만들고, 대표의 결정에 동의만 요구하는 방식은 결코 민주적인 당 운영이 아니고 동의할 수 없다. 상식이 무너졌다. 당원주권주의가 심하게 훼손됐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서울시장 출마 기자회견을 예정했던 전현희 의원은 일정을 미루고 “진정한 당원주권정당이라면 합당은 당원들의 의견수렴과 숙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외에도 김병주 김상욱 김용민 모경종 박선원 박주민 박홍근 서영교 이언주 장청민 한준호 의원 등이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냈다. 이들은 정 대표가 당원주권주의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1인 1표제를 추진하고 있는 것을 거론하며 자기 모순에 빠졌다고 꼬집는다.
반면 박지원 의원은 “정 대표의 합당 제안을 적극 환영하고 지지한다”며 “목표가 같으면 함께 걸어야 한다. 뭉치면 더 커지고 이익이다. 우리 모두 친청(친청와대)이 되자”고 지지 의사를 밝혔다. 박수현 신정훈 이성윤 최민희 의원 등도 정 대표 결정에 힘을 실었다.
친명계 일각에서는 ‘정청래 대표가 당대표 연임을 위해 혁신당과 합당을 급하게 추진했다’는 목소리가 퍼지고 있다. 그동안 친명 의원들은 정 대표가 이재명 정부 노선과 다른 ‘자기 정치’를 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출해 왔다. 1월 11일 열린 최고위원 보궐선거 때도 ‘친명’과 ‘친청’ 대결 양상은 극대화됐다.
당대표 보궐선거로 선출돼 임기 1년을 맡은 정 대표는 오는 8월 예정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연임에 도전할 전망이다. 경쟁 후보군으로 김민석 국무총리가 유력하다. 정 대표가 당권을 잡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친명 지지층이 수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 총리가 유리하다는 관측이다. 이에 정 대표가 혁신당의 친문계, 친조국 인사들을 민주당으로 끌고 들어와 연대해 세를 넓히려 하는 것 아니냐는 게 친명계의 생각이다.

세간의 관심은 정청래 대표가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에 이 문제를 놓고 조율을 했느냐에 모였다. 처음에는 청와대가 두 당의 합당 논의와 관련해 모르고 있었다는 반응이 나왔다. 강유정 청와대 대변인은 오전 브리핑에서 “사전에 특별히 논의된 것이 없다”고 밝혔다.
‘당청 간 소통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더 나아가 이 사안이 ‘친명-친청’ 균열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그러자 홍익표 신임 청와대 정무수석이 진화에 나섰다. 공식발표 이전 정청래 대표로부터 관련 내용을 미리 연락 받았다고 전했다. 다만 연락받은 시점은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않고 ‘전날 오후 국회에서 정 대표와 만나고 청와대로 돌아온 이후’라고만 밝혔다.
미리 연락은 받았지만 ‘협의’는 없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홍 수석은 “양당의 통합은 이재명 대통령의 평소 지론”이라며 “양당 간 논의가 잘 진행되는지 지켜보겠다”고 원론적 답변을 내놨다. 당청이 상의해 합당을 추진하는 모양새가 될 경우 청와대의 부적절한 당무개입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점을 의식, 청와대가 거리를 두려 했던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정 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합당 추진은 당청이 조율해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일부 의원들과 식사 자리에서는 “(합당) 다 오픈해서 하기는 어렵다. 내가 판단해서 결단한 것”이라면서도 “이런 걸 어떻게 혼자 결정하냐”고 말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 의중이 반영됐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최근까지 청와대 정무비서관으로 근무하며 이 대통령을 보좌했던 ‘최측근’ 중 한 명인 김병욱 전 비서관은 합당 논의에 대해 “환영한다. 지금은 작은 차이보다 민주주의의 완전한 회복에 힘을 합칠 때”라고 찬성 의견을 보였다.
여권 일각에선 민주당과 혁신당의 합당 논의 문제에 청와대를 끌어들이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있다. 여권 한 관계자는 “이 대통령도 민주당 당대표 시절부터 혁신당과의 합당을 원해왔다. 당시 이 대통령이 정 대표와 ‘언젠가는 합당해야 한다’며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겠느냐”며 “이제 이 대통령은 당대표가 아니다. 합당은 민주당과 혁신당의 문제다. 대통령은 멀리 떨어져 있고 당끼리 알아서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과거 민주당과 열린민주당 간 합당을 떠올리며 “민주당이 정국을 끌고 갈 때 열린민주당은 반대 목소리를 거의 내지 않았다. 전폭적 지지를 보냈다”며 “지금 혁신당은 지지층에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서인지 민주당의 정책에 자꾸 태클을 걸고 있다. 최근 검찰개혁 정부입법안의 보완수사권 관련해 혁신당에서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에 민주당 당원들의 감정에 화가 쌓이고 있는 상황에 정 대표가 합당 제안을 던졌다. 그러니 정 대표를 향한 음모론과 비토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정 대표 불통 리더십이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도 쏟아진다. 앞서 여권 관계자는 “‘전 당원 1인 1표제 강행 때도 그렇고 당 내부에서 정 대표가 소통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수차례 나왔다. 일부 참모와 지지층의 의견만 듣고 정치를 한다는 것이다. 그 문제가 이번에 합당 전격 제안으로 터져버렸다”고 전했다.
이번 일로 정 대표의 입지가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 대표의 합당 제안에 공개 반발한 이언주 황명선 강득구 최고위원은 1월 23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린 당 현장 최고위에 불참했다.
대신 이날 오후 세 최고위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정청래식의 독단은 이제 끝나야 한다”며 정 대표의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이어 이들은 “합당 제안을 언제, 누구랑, 어디까지, 어떻게 논의했는지 당원들에게 즉각 진상을 공개하라”며 “이런 식의 독선적 당 운영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아라”라고 촉구했다.
후폭풍이 거세지자 혁신당도 한발 빼는 모양새다. 혁신당은 1월 24일 의총을, 26일 당무위원회를 열고 합당 논의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조 대표는 23일 언론 질의응답에서 “혁신당이 갖고 있는 정치적 DNA를 버리면서까지 합당을 추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과 혁신당이 합당에 이르기 위해서는 전 당원 토론과 전당대회 투표 의결 등 당헌·당규에 정해진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논란이 크게 불거진 만큼 오는 6월 지방선거 전까지 합당을 성사시킬 수 있을지 회의적 시선이 높다. 여기에 이번 합당 논의가 무산되면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은 크게 훼손될 것이란 관측이 주를 이룬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