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습 합당 발표로 비당권파 반발 리더십 흔들…조국혁신당과 지방선거 지분 싸움 우려도

1월 22일 정청래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혁신당 합당 제안을 발표했다. 정 대표는 “이번 6·3 지선을 따로 치를 이유가 없다”며 “민주당과 혁신당이 이제 시대정신에 입각해 이재명 정부의 성공이라는 공동 목표를 위해 원팀으로 같이 뛰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명계는 ‘독선’과 ‘발표 타이밍’을 문제 삼았다. 한병도 원내대표와 민주당 최고위원들은 발표 20분 전에서야 관련 내용을 통보받았다고 한다. 전현희 의원은 예고했던 서울시장 출마 기자 회견을 취소했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코스피 5000 목표 달성이라는 이재명 정부 성과를 가렸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친명’ 강득구 최고위원은 발표 당일 페이스북에 “오늘 아침 한 대 얻어맞은 듯한 큰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세간의 관심은 정 대표와 이 대통령의 조율 여부로 쏠렸다. 당 지도부와 청와대 설명을 종합하면 양측은 합당 논의를 해왔지만, 발표 시기는 정 대표가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홍익표 정무수석은 1월 22일 오후 국회에서 정 대표와 만나고 청와대로 돌아온 이후에 관련 내용을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도 이 사실을 인지했다고 전했다. 다만, 합당은 당무 영역이라며 선을 그었다. 청와대의 부적절한 당무 개입 논란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합당 추진은 당·청이 조율해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일부 의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는 “다 오픈해서 하기는 어렵다. 내가 판단해서 결단한 것”이라면서도 “이런 것을 어떻게 혼자 결정하나”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 의중이 반영됐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정치권에선 정 대표가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승부수를 던졌다는 해석이 나왔다. 그동안 정 대표는 친명계로부터 끊임없는 견제를 받아 왔다. 자기 정치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받았다. 이에 정 대표는 1인 1표제 당헌 개정안 추진 카드를 꺼냈다. 1인 1표제 당헌 개정안에는 대의원 표와 권리당원 표를 20 대 1 수준에서 1 대 1로 조정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 대표 지지세가 강한 권리당원 권한 강화를 통해 연임을 노린다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
원내외에 포진한 친명계 등 비당권파는 ‘독선적인 리더십’ ‘발표 타이밍’ ‘이재명 이름 거론’ 등을 언급하며 정 대표를 겨눴다. 이들은 정 대표가 일방적으로 당헌 개정안을 추진했다고 반발했다. 당 체질을 바꾸는 중대사를 졸속 추진했다는 이유다. 영남 등 민주당 취약지역에 대한 보완책도 미비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발표 타이밍도 문제가 됐다.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시점에 1인 1표제 추진을 띄웠기 때문이다. 정청래 지도부는 같은 해 11월 2일에도 ‘재판중지법’ 추진으로 이 대통령 APEC 성과를 가렸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1인 1표제 반발이 커지는 상황에서 장경태 의원이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했다. 한 술집에서 장 의원이 여성 비서관을 추행했다는 의혹이다. 장 의원은 ‘1인 1표제’ 당헌 개정 실무를 담당했다. 정 대표는 최측근을 잃게 된 셈이다.
이른바 ‘장경태·김병기 형평성 논란’도 불거졌다. 지난해 12월 26일 정 대표는 보좌진 갑질 등 비리·특혜 의혹에 휩싸인 김병기 의원(무소속) 관련 논란에 대해 사과했다. 반면 장경태 의원 진상조사 관련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을 거부했다. 이를 두고 친명-친청 간 헤게모니 싸움을 상징하는 장면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1인 1표제는 2025년 12월 5일 민주당 중앙위원회의에서 부결됐다. 정 대표의 독선적인 리더십에 대해 중앙위원들이 반기를 든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일종의 ‘옐로카드’라는 것이다.
1월 11일 보궐선거 결과 민주당 최고위에서는 당권파가 주도권을 쥐게 됐다. 당권파 4명(서삼석 박지원 이성윤 문정복) 대 비당권파 3명(강득구 이언주 황명선) 구도로 재편됐다. 1월 12일 정 대표는 1인 1표제 재추진을 밝혔다. 기사회생한 정 대표가 다시 입지 넓히기에 나섰다는 해석이 주를 이뤘다.
#명분 싸움에선 우위
비당권파 측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언주 강득구 황명선 최고위원은 1월 23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 불참했다. 이들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 대표 사과를 요구했다. 합당 제안 시기부터 논의 방법까지 모든 과정을 당원들에게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이건태 의원은 1월 26일 YTN ‘김영수의 더인터뷰’에서 “1인 1표제도, 조국혁신당과 합당도 다 8월 전대에서 정청래 대표한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겠느냐 하는 의견이 있고 저도 그 의견에 동의한다”고 했다.

우상호 전 정무수석은 1월 27일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서 정무수석 재직 당시 정 대표와 조국 대표를 만나서 관련 논의를 한 적 있다고 했다. 정 대표·조 대표·청와대 사이에 공감대가 있다고 밝혔다. 우 전 수석은 “적어도 이런 큰일을 정당의 대표가 기본적인 조율 없이 움직이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자기 정치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조국혁신당 당원들이 통합되면 정청래 대표를 찍을 거라는 전제가 있는 거다. 왜 조국 대표를 안 찍고 정청래 대표를 찍나. 조국 대표가 정청래 대표 지지 선언을 할까”라고 반박했다.
아직 정 대표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적한 상태다. 합당 발표 이후 일부 의원들과 당원들 사이에서는 정 대표의 독선적 리더십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당내 민주주의가 훼손됐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조국 대표를 다시 민주당으로 불러들이는 것에 대해서도 의문부호가 달린다. 정권 재창출 실패의 원인인 조국 대표는 중도 확장에 불리하다는 목소리다.
지방선거 출마자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나온다. 혁신당이 호남과 수도권에서 ‘지분’ 요청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미 혁신당은 당명을 그대로 사용하겠다는 민주당 입장에 대해서도 ‘논의할 문제’라고 밝히는 등 샅바 싸움에 들어간 상태다. 윤준병 의원은 1월 22일 “결격자들의 억지성 합당지분권 요구로 인한 갈등이 벌써 눈에 보인다”며 “당원주권정당 답게 당원들의 의사를 먼저 듣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이 같은 민주당 당권 갈등은 과거 ‘친이-친박 대결’과 유사한 극한 갈등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친박근혜)계는 2008년 공천 학살을 계기로 등을 돌렸다. 친박계 수장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여당 내 야당을 자처하며 이명박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다.
야당이 힘을 잃은 여권의 친박계과 친이계는 총구를 겨눴다. 현 정치권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구도다.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친박·친이계 싸움을 시작으로 보수는 계속 분열해왔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