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코킹’의 귀환에 글로벌 시선도 집중…“단단함 안에 숨은 흔들림 보여주는 연기 시도”
당시 논란이 길지 않게 잦아들면서 짧은 공백과 복귀 과정을 거치며 신중한 행보를 이어온 김선호의 연기는 이전보다 한층 더 절제되고, 말보다 태도에 무게가 실린 방향으로 옮겨졌다. '로코킹'의 귀환을 알린 '이 사랑 통역되나요?'는 그런 변화가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이 사랑 통역되나요?'는 서로 다른 감정의 결을 가진 인물들이 오해와 이해를 반복하며 가까워지는 과정을 그린다. 극 중 김선호가 맡은 주호진은 상대의 말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다중언어 통역사지만 자신의 감정은 쉽게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다.
언어를 통역하는 직업을 가진 인물이 정작 스스로의 감정을 쉽게 읽고 전하지 못한다는 설정은 단순한 로맨스 장치를 넘어 인간관계 전반에 대한 질문으로도 확장한다. 김선호는 그런 주호진을 표현하기 위해 단단함 안에 숨은 흔들림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호진이는 단단하면서도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데 좀 익숙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요. 다른 사람의 말을 통역해 주지만 정작 자기 뜻을 표현하는 데는 익숙하지 않아요. 이런 부분을 표현하기 위해 정돈된 자세를 유지하는 것과 동시에 무희와 대화할 때는 생동감이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했죠. 단단함 속에 리얼함을 넣으려고 했다고 할까요? 고윤정 배우님이 애드리브를 하면 저 역시 그걸 받아야 하는데, 호진이 단단하기만 하면 이런 리얼한 상황을 받아칠 수 없거든요. 그래서 '호진으로서 다 받아줘야지’라는 마음으로 항상 마음을 열어두고 있었죠(웃음)."
그의 말대로 김선호는 주호진을 '고정된 성격'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단정하고 꼿꼿한 외피를 유지하면서도 상대와의 대화 속에서 미세하게 흔들리는, 자신조차도 잘 알 수 없는 감정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이는 상대 배우이자 주호진의 통역 대상인 글로벌 톱스타 차무희를 연기한 고윤정과의 호흡에서도 그대로 반영됐다. 스스로를 '파워 F'(감정형 성향)라고 강조한 김선호는 반대로 '파워 T'(이성·논리형 성향)인 고윤정과의 성향 차이를 오히려 연기의 자산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성향이 정반대인 남녀가 가랑비에 옷 젖듯 서로에게 스며들어가는 과정을 만들어 내기 위해선, 이 '반대'의 모습이 지나치게 뚜렷하면 안 된다는 것이 또 다른 문제였다. 천천히 상대를 이해하며 변화하는 모습을 시간의 흐름에 맞춰 표현하는 것은 두 배우뿐 아니라 연출을 맡은 유영은 감독 역시 깊이 고민한 지점이었다고 했다.
"유영은 감독님과 가장 많이 이야기를 나눴던 게 호진의 감정 변화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한 거였어요. 수많은 논의 끝에 결과적으로 마냥 단단하기만 한 게 아니라 초반부터 약간의 유연함을 보여주기로 했죠. 캐나다에서 아침에 시장을 가는 장면 등은 너무 T적으로만 보이지 않도록 의도해서 집어넣은 부분이에요. 하지만 그런 모습이 또 너무 많이 눈에 띄면 우리 작품 주제를 벗어날 위험이 있거든요. 제가 중심을 단단히 잡지 않으면 캐릭터들 간 소통이라든지, 각자의 언어를 알아가는 신의 중심축들도 흔들리니까요. 그런 지점들을 많이 고민하면서 균형을 찾아갔던 것 같아요."
주호진이 차무희에게 마음을 여는 과정은 극적인 사건이나 선언적인 고백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기에 가능한 사소한 선택과 태도의 변화들이 쌓이며 인물의 감정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김선호는 이 지점을 '사랑을 자각한 이후의 행동'으로 해석했다. 감정이 먼저 열렸기 때문에 말과 행동이 뒤따를 수 있었고 그 변화가 캐릭터를 설명하는 가장 정직한 방식으로 본 것이다.

이런 접근은 결과적으로 김선호의 현재 위치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만든다. '이 사랑 통역되나요?'는 자극적인 설정이나 과장된 감정 대신 인물의 내면을 따라가는 로맨스를 전면에 내세웠고, 김선호는 그 중심에서 감정을 밀어붙이기보다 눌러 담는 연기를 선택했다. 사생활 이슈 이후 조심스러운 행보를 이어온 그에게 이번 작품은 다시금 '어떤 배우로 남고 싶은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된 만큼, 연기를 통해 쌓아 올린 신뢰는 자연스럽게 김선호의 다음 선택을 향한 궁금함으로 이어진다.
"직접적으로 누가 저한테 '너는 이런 매력이 있어'라는 말씀을 안 해주시는데(웃음), 그런 말을 들으면 아마 서로 민망할 거예요. 저도 들을 자세가 된 사람은 아니거든요. 사실 제가 작품을 꼭 로맨스이기 때문에 선택하진 않아요. 어떤 역할이 좋고, 이런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거기에 집중하는 식이죠. 앞으로도 계속 선택하는 작품들에 로맨스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제 욕심은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것뿐이에요. 사람들이 제 연기를 보고 '어딘가에 있을 법하다'라고 느껴주신다면, 그 정도만 돼도 배우로서 참 뿌듯할 것 같아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