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P-1’ ‘식욕억제제’ 표현으로 의약품 혼동 유발…소비자원 “다이어트 인정 원료 없음” 판정에도 기승

현재 해외에서는 경구용 비만 치료제가 시장에 출시돼 처방이 이뤄진 사례가 있지만 국내에서 비만 치료 목적 경구용 제품이 판매 허가를 받거나 출시된 바 없다. 그럼에도 온라인에서는 관련 의약품과 유사한 효과를 내세운 제품들이 판매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한국소비자원이 최근 시중에서 유통 중인 다이어트(체중 감소) 표방 식품(경구용) 16개 제품의 안전성과 표시·광고 실태를 조사한 결과 ‘체지방 감소’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인정되는 원료가 16개 전 제품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포만감 지속’ 효과가 표기된 4개 제품의 경우 식이섬유가 일부 함유돼 있었지만 포만감을 유발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에는 미치지 않는 함량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제품은 온라인 플랫폼에서 ‘GLP-1’ ‘먹는 위고비’ ‘식욕억제제’ 등 표현을 사용하며 소비자가 의약품으로 오인할 수 있는 광고를 하는 등 부당 광고를 게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일명 ‘나비약’으로 불리는 식욕억제제 전문의약품 ‘디에타민’을 연상시키는 이름을 사용한 사례(나비정)도 있었다. GLP-1으로 오인할 수 있는 명칭을 사용한 제품(GLO-P1)도 있었는데 이들 모두 식욕 조절 성분을 함유하고 있지 않아 다이어트 효능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 대상 16개 제품의 31%(5개)는 AI를 활용해 생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미지를 광고에 활용했다. 광고에 등장한 인물이나 장소, 내용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한국소비자원 조사 결과 드러났다.
현재 미국에서는 세마글루타이드(위고비의 주성분인 GLP-1 수용체 작용제) 성분의 경구용 비만 치료제가 승인돼 판매되고 있지만 국내에선 아직 허가·출시된 제품이 없다. 그럼에도 일부 일반 식품이 이를 연상시키는 명칭과 표현을 사용해 소비자의 혼란을 키우고 있어 전문가들의 우려가 제기된다. 한 제품은 ‘드디어 국내 출시’라는 표현을 광고 문구에 넣어 마치 해외 정식 의약품이 국내 판매를 시작한 것처럼 소비자들의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40대 여성 A 씨는 “지난해 여름 다이어트 결심을 하고 온라인 검색을 하던 중 ‘먹는 위고비’ 광고를 접하게 됐다. 관련 후기도 엄청 많고 전부 효과를 봤다는 얘기들뿐이어서 솔깃했는데 당시 해외에서 아직 (먹는 위고비는) 임상이 진행 중이란 걸 기사를 봤다”며 “하마터면 속을 뻔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소비자의 오인을 유도하는 제품들에 대해 당국이 단속을 벌인 사례가 있지만 여전히 부당 광고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8월 일반식품을 ‘먹는 위고비’ ‘식욕억제제’ 등으로 광고한 업체 5곳을 적발해 검찰에 송치했다. 이들 업체는 인플루언서를 동원해 ‘위고비와 같은 원리’ ‘한 달에 7kg 감량’ 등 표현을 사용하며 제품을 판매했고, 2024년 1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총 324억 원 상당을 판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제품들은 전문의약품이나 건강기능식품이 아닌 △과·채가공품 △고형차 △음료베이스 △당류가공품 등 일반식품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소비자원이 이들 제품의 표시·광고 위반 사례를 적발하더라도 시정 권고에 그칠 뿐 처벌로 이어지게 할 권한이 없어 단속 효과의 한계도 지적된다. 현재로서는 소비자 개인 차원의 주의를 당부하는 수준이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체중 감소용 식품을 구입할 때는 제품에 표시된 원료명과 건강기능식품 인증마크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반 식품에 대해 표시 규정 강화 조치도 요구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일반식품이 의약품이나 건강기능식품으로 혼동되지 않도록 온라인 판매 페이지와 제품 겉포장에 ‘의약품 아님’ ‘건강기능식품 아님’이라는 문구를 명확히 표시하도록 해야 한다”며 “제품 표시사항 관련법을 개정해 소비자 오인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