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매물 출회는 제한적일 전망…외곽 취약 물건·임대차시장 부담 우려

정부가 지난 4월 1일 발표한 ‘2026년도 가계부채 관리방안’의 핵심은 수도권·규제지역 아파트를 보유한 다주택자와 임대사업자의 주택담보대출 만기연장을 원칙적으로 막는 데에 있다. 다만 임차인이 있는 경우에는 4월 1일 기준 유효하게 체결된 임대차계약 종료일까지 만기연장을 허용한다. 제도는 4월 17일부터 시행되며 정부는 이를 통해 가계부채를 낮추는 동시에 기존 다주택자의 매물 출회를 유도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론상으로는 대출 만기 때 연장이나 대환으로 다주택 보유를 이어가던 차주들이 현금 상환이나 매각 부담을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 전세를 끼고 여러 채를 보유한 레버리지 투자자나 만기 일시상환 비중이 높은 차주, 금리·보유세·공실 부담이 누적된 비핵심지 다주택 보유자에게는 매도 압박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이번 조치가 곧바로 규모 있는 매물 출회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개인 주담대 상당수가 이미 20년~30년 장기 상품이기 때문이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다주택자가 보유한 만기 일시상환 주담대는 약 1만 7000건, 4조 1000억 원 규모이며 이 가운데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물량은 최대 1만 2000건, 2조 7000억 원 수준이다. 설령 이 물량이 상당 부분 시장에 나온다 해도 수요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강남이나 한강벨트의 고가 주택 보유자는 애초 대출 비중이 높지 않은 경우가 많아 이번 규제의 직접적인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개인들은 대부분 장기 만기대출을 받았기 때문에 연장 제한의 직접 영향이 크지 않을 수 있다”며 “강남이나 한강벨트는 전세금 인상 등으로 버틸 가능성이 더 높아 서울 집값 안정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권대중 한성대 일반대학원 경제·부동산학과 석좌교수도 “단기대출을 받은 집주인이라도 상환이 어려우면 월세를 전세로 돌린 후 보증금을 받아내서 버티려고 할 가능성이 더 높다”며 “이미 어지간한 급매는 시장에 다 나왔다. 매물이 일부 나올 수는 있어도 미미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에 사업자 대출과 온라인투자연계금융(P2P)에 대한 심사 강화, 취급 사례 전수 검증이 도입된 점은 강남권 상급지 시장에 변수로 작용할 여지도 있다는 지적이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은 “그동안 사업자 대출과 P2P는 DSR 규제를 우회하는 자금조달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이번 조치는 강남권 상급지 위주의 매수 자금줄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며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초고가 시장과 서울 강남 3구를 중심으로 당분간 가격 조정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전세 축소·월세화 우려 커져
이번 대책이 매매시장보다 임대차시장에 더 직접적인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곽지역 소형 아파트와 오피스텔처럼 후순위 대출 비중이 높은 물건부터 영향을 받으면서 세입자 주거 안정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김인만 소장은 “외곽지역 소형 아파트 가운데 집주인이 단기 후순위 대출을 끼고 여러 채를 보유한 경우는 영향받을 수 있다. 집을 팔아서 상환하면 다행이나 그러지 못하고 파산하면 주택이 경매로 넘어가 세입자들이 보증금 피해를 볼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전세시장 불안 가능성도 거론된다. 권대중 교수는 “신축 아파트 입주 때 집단대출을 안고 낮은 가격에 전세를 놓았던 주택의 경우 상환 압박이 커지면 전세금을 올릴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일부 집주인이 보증금 조정으로 대출 상환에 대응하면서 임차인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매수자 입장에서도 사정은 간단하지 않다. 정부는 무주택자가 해당 주택을 올해 12월 31일까지 토지거래허가 신청하고 허가일로부터 4개월 안에 취득하면 임대차 종료일까지 실거주 의무를 유예하기로 했다. 하지만 실제 입주 단계에서는 세입자 퇴거 이후 전세금을 반환해야 하는 부담이 남는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다주택자 매물이 시장에 나오더라도 급매 성격의 주택은 결국 현금부자들이 저렴하게 사들이는 구조가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며 “세입자는 주택시장에서 늘 직간접적으로 부담을 떠안는 위치에 있는 만큼 정책도 이런 점을 세심하게 고려해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하위권 거래량 늘어나고 강남권은 숨 고르기
서울 부동산시장은 강남3구와 용산 등 상급지의 숨 고르기 흐름과 중하위권 지역의 거래 강세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2월 1일부터 4월 3일까지 집계된 서울 25개 자치구별 누적 거래량에 따르면 노원구가 1340건으로 가장 많았고 성북구 633건, 강서구 606건, 구로구 594건, 은평구 534건, 영등포구 486건 순으로 외곽과 중하위권 지역 거래가 두드러졌다. 반면 강남구는 228건으로 17위, 서초구는 206건으로 19위, 용산구는 112건으로 23위에 그쳤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은 “과거 10억 원 안팎이던 서울 아파트들이 최근 실거래가와 호가 상승을 거쳐 15억 원 이하 구간에 포진하면서 이 가격대가 실수요의 주 무대로 재편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출 규제 강화로 초고가 주택 접근성은 낮아진 반면, 15억 원 이하 주택에는 주택담보대출이 최대 6억 원까지 가능한 만큼 수요자들이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덜하고 입지 경쟁력도 갖춘 아파트로 수요가 이동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한강권과 강남권을 제외하면 지난해 집값 상승률이 1%에도 못 미쳤는데, 강도 높은 대출 규제가 이어지면서 최근에는 노원·도봉·강북구, 금천·관악·구로구, 강서구, 용인 수지 등으로 수요가 이동해 가격이 오르고 있다”며 “전세 매물이 부족한 데다 전세가격까지 오르자 임대차 만기가 돌아온 세입자들이 기존 전세보증금에 주택담보대출을 더해 매수에 나서고 있다. 서울 쪽은 2~3%, 용인 수지 등은 7% 안팎 상승한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반면 강남3구와 용산 등 상급지는 단기 급등 뒤 관망세가 짙어지는 분위기다. 최근 송파구에서 시작된 급매물 소진이 강남구와 강동구, 하남 등 인접 지역으로 이어지고 있으나 중동 정세 불안과 양도세 중과 유예 적용 기준 변경 등으로 추가 급매물 출회 가능성이 남아 있어 매수자와 매도자 간 눈치보기가 계속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당분간은 박스권 안에서 지지부진한 흐름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