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투자 대안 기대 속 중복상장 막히자 꺼낸 카드 시선도…LS그룹 “중복상장과 무관한 계열사가 진행”

이는 STO가 이재명 정부의 주요 공약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지난 1월 STO 제도화를 위한 자본시장법 및 전자증권법 개정안이 국회 통과됐고, 1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내년 시행될 예정이다. 현재는 시행령 개정, 장외 거래 플랫폼 인가, 발행인 계좌 관리 기관 시스템 구축 등 세부적인 인프라 마련 단계에 있다. 최근 대기업 상장사들은 중복상장은 물론 유상증자조차 지탄을 받으면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라, LS의 행보를 관심 갖고 지켜보는 분위기다.
#STO 사업 진출로 수천억 원 조달 가능 전망
LS그룹 계열사인 LS전선과 가온전선은 이번 정기 주주총회에서 ‘토큰 발행 및 토큰증권 관련 사업’을 특별결의를 통해 사업 목적에 추가했다. 업계에서는 LS전선 등 계열사들이 구리와 희토류 등 재고자산을 유동화하는 구조의 STO 사업을 추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만 LS전선은 STO 사업 진출에 대해 자금 조달이 목적이 아니라, 전선회사에서 ‘원자재 금융 플랫폼’으로 사업 다각화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STO 관련 사업 목적을 정관에 추가한 것은 LS그룹 계열사들 외에도 여러 곳이 있지만, LS그룹이 유독 주목받는 것은 최근까지 증손자회사 상장을 추진하는 등 자금 조달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STO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리는 새로운 사업 기회이니만큼 사업 목적 추가는 혹시 모를 신사업을 검토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LS그룹이 선제적으로 나섰다는 점에서 “새로운 자금 조달 루트를 개척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는 것이다. 실제 LS그룹 내에는 STO 전담 부서도 만들어진 상황으로 알려졌다. 계열사 LS증권 또한 STO 사업에 적극적이다.
LS그룹은 자금 조달이 시급한 상황이기도 하다. 중복상장 불허 방침이 공식화되기 이전, LS그룹은 “전력 슈퍼 사이클이 오고 있어 투자 타이밍이 임박했는데 차입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 지금이 투자의 골든타임이다. 5000억 원 규모의 설비 투자 자금 확보가 필요하다”는 등의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투자자들 반응은 호의적이다. LS그룹이 주식 가치 희석이 뒤따르는 유상증자나 중복상장을 하지 않고 STO 사업을 추진한다는 점만으로도 증권가에서는 호재라고 평가하고 있다. 박건영 KB증권 연구원은 “LS는 중복상장 불확실성 해소와 함께, 국내에서 구리와 희토류를 담는 가장 효율적인 투자 대안으로 재평가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LS전선은 구리 원재료와 반제품, 완제품을 합쳐 전체 재고가 2025년 말 기준으로 1조 4500억 원에 이른다. 2023년 1조 2000억 원에서 매해 늘고 있다. 이 가운데 순수 원재료 재고는 2184억 원 규모인데, STO 사업이니만큼 구조를 잘 설계하면 수천억 원 단위로 조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시장의 평가다. LS그룹은 구리 등 원자재 매입 규모가 연간 약 4조 원으로 알려졌다. 희토류 매입 규모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사실 금융시장이 고도화된 지금은 구리를 비롯한 자산을 담보로 하는 대출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런던금속거래소(LME)로부터 창고보관증서(Warehouse receipt)와 관련한 인증을 받고, 금융기관에서 보유하고 있는 구리의 60~70%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STO 형태로 하면 더 많은 자금을 저리로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들은 예상하고 있다.
더 큰 장점은 STO가 신규 금융 기법이라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분류될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해외에서도 지분형 STO를 통해 자산 유동화를 해도 부채로 잡히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 중인 기업이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부채 성격 자본 분류 여지 등 금융당국 개입 가능성
금융당국이 LS그룹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소문이 도는 것도 이 지점이다. 금융당국은 LS그룹 STO 사업에 대해 공식적으로 의견을 표명한 바는 없는데, STO 발행에 착수하면 그 과정에서는 개입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금융당국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STO 발행을 통해 사실상의 부채를 자본으로 분류할 여지가 있다는 점, 상품 가격의 변동성 리스크를 기업이 투자자들에게 전가할 가능성을 금융당국이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STO는 시대적 흐름이고 현 정부의 주요 공약이었던 만큼 아예 막기는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해외에서도 적지 않은 금융사, 핀테크 기업이 금과 다이아몬드 등을 기반으로 한 STO 사업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LS전선이 앞서 준비했던 유사 상품이 막판에 막혔던 만큼, 이번에는 금감원을 설득하기 위한 논리도 잘 준비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시선도 있다.
LS그룹이 첫 문턱을 넘는다면, STO는 단숨에 재계에서 가장 선호하는 자금 조달 루트로 급부상할 수 있을 전망이다. 최근 재계는 중복상장에 이어 유상증자마저 주주 이익에 반하는 악행이라는 프레임이 생겼다며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특히 한화그룹은 지난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이어 한화솔루션도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하면서 타깃이 됐다. 금감원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이어 한화솔루션 유상증자도 중점 심사 중이며, 지주회사 한화가 유상증자 과정에서 초과 청약하겠다고 밝혔음에도 유증 성사 여부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한화솔루션은 증권신고서를 수정 작성 중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최근 자금 조달에 부정적인 기류가 확산하면서 상당수 기업이 영구채와 유사한 형태의 회사채 발행에만 함몰되고 있다”면서 “영구채든 아니든 회사채는 부채라 기업의 재무제표에 상당한 악영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며, 이로 인한 부작용도 언젠가는 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특히 2차전지 기업들이 과도한 규모의 회사채를 찍어내고 있다며 우려하는 분위기다.
LS그룹 관계자는 “STO 관련 사업은 중복상장과는 무관한 계열사인 LS전선과 가온전선에서 진행한다”면서 “STO 사업은 LS전선과 가온전선의 재고 자산의 효율적인 활용을 위한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민영훈 언론인 journalist@ilyo.co.kr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