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지방재판소 “목소리도 개인의 인격 상징”…국내서도 AI 커버곡·성우 음성합성 두고 권리 논쟁
이런 상황에서 일본 법원이 최근 '목소리' 자체도 퍼블리시티권의 보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첫 사법적 판단을 내놔 화제가 되고 있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성우와 배우들의 목소리 무단 복제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일본은 물론, 국내 성우계에서도 주목도가 높은 판결이다.

이번 소송은 2024년 7월부터 2025년 9월까지 틱톡에 올라온 영상 188개에서 시작됐다. 도시전설과 심령현상, 잡학 등을 소개하는 이 영상 콘텐츠에는 츠다와 매우 유사한 음색의 내레이션이 사용됐다. 해당 계정은 약 21만 명의 팔로어를 보유했고 댓글에도 "츠다 켄지로의 목소리와 닮았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츠다 측은 이 음성이 생성형 AI를 이용해 자신의 목소리를 의도적으로 모방한 것이며 자신이 직접 내레이션한 것처럼 받아들이게 해 시청자를 끌어모았다고 주장했다. 게시자가 영상 조회 수를 통해 수익을 얻고 있는 만큼 '츠다 켄지로'라는 유명 성우의 목소리가 가진 고객 흡인력을 무단으로 이용해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에 츠다는 틱톡 운영사를 상대로 퍼블리시티권 침해와 부정경쟁행위 등에 따라 해당 영상의 삭제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문제의 계정과 영상 데이터가 모두 삭제되면서 재판부는 더 이상 삭제를 명할 대상이 없다고 보고 츠다 측의 청구를 기각했다. 다만 재판부는 목소리 역시 얼굴이나 초상처럼 특정 개인을 드러내는 인격적 표지로 볼 수 있다는 판단을 동시에 내놨다. 실연자의 목소리가 상품이나 서비스의 판매를 촉진하는 고객 흡인력을 갖고 있고 그 경제적 가치를 이용할 목적으로 무단 사용됐다면 퍼블리시티권 침해가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츠다 켄지로의 소송이 국내서도 주목받은 것은 한국도 이미 비슷한 논란을 겪은 바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의 짱구 엄마 봉미선 역으로 사랑받은 고(故) 강희선 성우의 지하철 안내방송을 둘러싼 AI 활용 논란이 대표적이다. 강 성우는 1996년부터 29년간 서울지하철 안내방송을 맡아왔는데 건강 문제로 녹음이 어려워진 뒤 서울교통공사가 지하철 안내방송에 AI 음성합성(TTS)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성우 단체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그러나 이런 법적 판단과 별개로 대중 인식에서는 얼굴과 목소리 사이 온도 차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정 인물의 얼굴이나 사진을 AI로 무단 활용하는 문제에 비해 목소리를 흉내 내거나 합성하는 행위는 상대적으로 가볍게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아이유가 부르는 밤양갱' 등의 AI 커버곡 콘텐츠가 권리 침해 가능성에 대한 논란 속에서도 대중에게는 재미있는 패러디 콘텐츠로 널리 소비된 바 있다.
익명을 원한 한 엔터테인먼트계 관계자는 "연예인의 얼굴 또는 사진을 AI에 학습시키거나 이를 활용한 콘텐츠가 확인될 경우 소속사가 즉각 대응하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이들의 목소리를 따온 AI 커버곡이나 내레이션은 큰 제재 없이 SNS나 영상 플랫폼에서 상대적으로 손쉽게 소비돼 왔다"며 "초상권과 곧바로 인식이 연결되는 얼굴과 달리 목소리는 오랫동안 성대모사 개그처럼 '비슷하게 흉내 내는 것'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여져 왔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이런 상황 속 올해 7월 시행된 인공지능 기본법은 AI 음성 콘텐츠의 또 다른 문제인 '진짜와의 혼동'을 줄이는 장치가 될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현행법은 생성형 AI를 이용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공지능사업자에게 결과물이 AI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표시하도록 하고, 실제와 구분하기 어려운 음향·이미지·영상에는 이용자가 이를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고지·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표시 방식도 반드시 제작자가 콘텐츠에 직접 'AI 생성'이라는 문구를 써넣는 방식에 한정되지 않는다. 시행령은 사람이 알아볼 수 있는 표시뿐 아니라 기계가 판독할 수 있는 방식도 허용한다. 실제로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은 AI 생성 여부를 나타내는 업계 표준 신호가 감지된 콘텐츠에 자동으로 'AI 정보' 라벨을 붙이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김태원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