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임’ 두 달만에 입은 ‘관복’이… 축배일까 독배일까
▲ 청와대 2기 비서진에 입성한 박병원 신임 청와대 경제수석. | ||
박병원 신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과 친분이 깊은 사람들이 그를 두고 하는 표현이다. 박 수석은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경제기획원-재경부 경제정책국장-재경부 1차관’이라는 ‘엘리트 경제관료’의 모범답안과 같은 공직자의 길을 걸어왔다. 실제로 재경부 시절 경제정책 예산분야 요직을 두루 거친 정통 관료로, 경제정책에 대한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기획력과 업무 추진력 및 조정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더불어 두뇌회전이 빨라 어떤 사안이든지 핵심을 파악해 간단명료하게 정리하는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는 게 주위의 평. 이 때문인지 TV 토론 프로그램에도 단골로 등장했다. 특히 어학실력이 뛰어나 영어를 비롯해 중국어 러시아어 독일어 등 5∼6개 언어에 능통할 정도다. ‘MB노믹스’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박병원 신임 경제수석의 뒤안길을 따라가 봤다.
재경부 1차관으로 장관을 바라보던 박 수석은 지난 2007년 2월 사의를 표명한 뒤 같은 해 3월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취임했다.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와서도 승승장구하던 박 수석은 우리금융지주 회장 취임 1년 만인 지난 5월 초 불신임 받아 ‘야인’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불과 한 달 보름 만에 김중수 전 경제수석 후임으로 전격 발탁돼 일부에서는 의아한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금융지주 회장에서 경질될 당시 관료 출신이라는 것이 약점으로 작용하는 듯했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논란에 따른 ‘촛불민심’에 이명박 정부가 ‘개혁에서 안정으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오히려 관료 출신이 장점으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불과 두 달 만에 우리금융지주 회장 불신임이라는 ‘지옥’과 경제수석 발탁이라는 ‘천당’을 오간 박 수석. 그는 참여정부 시절 친구 덕을 보지 못한 관료 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 상사로 모시던 권오규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은 경기고 동기동창. 고등학교 동창이 부총리를 하고 있으니 힘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많았다. 그러나 자주 건설교통부와 산업자원부 장관으로 거론된 박 수석은 결국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것으로 끝났다. 박 수석과 가족들이 강력히 원했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대표부 대사 자리도 그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지난 2006년에는 증권선물거래소 감사 선임을 둘러싼 낙하산 논란에서 친구 사이인 경희대 K 교수로 인해 낭패를 당하기도 했다. 당시 후보추천위원장이던 K 교수가 “청와대 압력을 받았다. 재경부 고위 인사가 청와대 의사를 전달했다”고 폭로했는데 문제의 재경부 고위 인사가 바로 박 수석이었다. 박 수석은 “K 교수와 수시로 만나는 친구 사이다. 차관으로서, 친구로서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해명했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강직한 그의 이미지가 실추됐다.
더불어 박 수석은 참여정부 시절 바른말, 즉 소신 때문에 굴곡도 많았다. 지난 2006년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맥주 세율을 낮추면서 위스키와 소주 등 고도주 세율을 못 올리면 재원 확보에 막대한 차질이 생긴다”며 세수 확보를 위해 소주 세율 인상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가 청와대로부터 “신중치 못한 발언”이라며 공개 경고를 받기도 했다. 특히 참여정부의 대표적 정책 실패로 꼽히는 부동산 문제에 있어서 박 수석은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고 공급확대를 통해 시장에 맡겨야 한다”며 세제 강화를 골자로 한 부동산 대책 마련에 줄기차게 반대했다.
때문에 참여정부가 2005년 다주택 보유자의 양도소득세 강화와 고가 부동산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강화를 골자로 한 ‘8·31 부동산대책’을 마련할 당시 정책 수립 라인에서 배제되는 아픔을 겪었다.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거듭된 부동산 정책 실패로 박 수석은 지난 2006년 11월 급조된 ‘부동산관계부처 특별대책반’의 반장을 맡아 구원투수로 재등장했다.
박 수석은 자신의 소신인 주택 공급 확대를 핵심으로 분양가 인하, 주택담보대출 축소를 골자로 한 ‘11·15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당시 ‘분양원가를 공개하고 분양가 상한제를 실시하라’는 들끓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공급을 위축시킨다”며 끝까지 반대하는 뚝심도 보였다. 비록 주택 공급 확대가 단시간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집값을 잡는 데는 한계가 있었지만 ‘주택담보대출 축소’는 은행 돈을 대거 빌려 주택을 구입하는 관행에 제동을 걸어 집값 안정에 단초를 제공했다.
박 수석의 위치가 위치인 만큼, 특별대책반 반장 당시 박 수석의 발언을 다시 살펴보면 향후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 수립 방향을 미뤄 짐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박 수석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중산층은 녹지율은 높고 용적률은 낮은 아주 쾌적한 집보다 주거 환경이나 여건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분양가가 낮은 집을 원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는데 향후 주택 공급에 있어 ‘질’보다 ‘양’에, ‘쾌적한 환경’보다는 ‘낮은 분양가’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강남 집값 상승에 대해서도 “강남 지역을 비롯한 이른바 ‘버블 세븐’이 다른 지역 집값을 견인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투기꾼들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돌리고 있는 것으로, 폭탄이 터지면 그 피해는 투기꾼들이 감수해야 한다”고 밝혀 강남 집값 수준이 비이성적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인위적으로 강남 집값 잡기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 수석은 지난 2007년 재경부 1차관에서 물러나면서 ‘공성신퇴’(攻城身退)를 퇴임의 변으로 내놨다. 즉 하고자 하는 일을 이뤘으면 그 자체가 보람인 만큼 물러서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수석이라는 자리가 뒤늦게 찾아온 박 수석에게 하고자 하는 일을 다 하고 수석 자리에서 물러나는 마지막 행운이 따라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전용기 파이낸셜뉴스 기자 courage@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