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이 꺼지면 ‘성상납’ 파티로…” 전직단원 폭로
볼쇼이 발레단의 예술 감독인 세르게이 필린에게 황산 테러를 사주한 파벨 드미트리첸코(왼쪽). 그가 지난해 ‘이반 뇌제’에서 주연을 맡아 열연하는 모습. ITAR-TASS/연합
100루블 지폐에도 나와 있을 만큼 러시아를 상징한다고 해도 무방한 볼쇼이 발레단 소속의 발레리나들이라면 아마 자존심과 자부심이 하늘을 찌를 것이다.
아나스타시야 볼로치코바
이런 주장을 한 사람은 한때 볼쇼이 발레단의 프리마 발레리나였던 아나스타시야 볼로치코바(37)다. 지난 2003년 ‘너무 살이 쪄서 남자 무용수들이 들어올리기가 힘들다’는 이유로 발레단에서 방출된 그녀는 현재 배우 겸 모델로 활동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하이어비즈니스스쿨에서 MBA 과정을 수료하기도 했다.
최근 러시아 방송 NTV의 토크쇼인 <젤레즈니예 레디>에 출연해서 발레단의 성상납에 대해 폭로한 그녀는 “발레리나들이 돈 많은 후원자들이나 부자들의 파티에 강제 동원되고, 심지어 성상납까지 강요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미 예전부터 비슷한 주장을 해왔던 볼로치코바는 “10년 전에 극단에 몸담고 있을 때 나 역시 끊임없이 부자들에게서 그런 제안을 받았었다”면서 “볼쇼이 발레단이 돈 많은 후원자들을 위한 대규모 사창가처럼 변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또한 “극장의 행정 담당자들이 ‘리스트’를 보고 발레리나를 뽑아 특정 파티에 데리고 다닌다”면서 “이 발레리나들은 개인적으로 ‘초대’를 받는 게 아니라 ‘동원’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문제는 거절할 경우 당하게 되는 불이익이다. 이에 대해 그녀는 “발레리나들은 ‘만약 파티에 가면 미래가 보장될 것이다. 하지만 거절하면 다음 공연에서 제외될 것이다’라는 말을 듣는다.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발레단이 협박을 일삼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녀는 “이런 장면들은 과거 내 눈으로도 직접 확인했다. 이런 제안은 공개적으로 이뤄졌고, 비밀도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발레리나들이 어떤 사람들을 상대하느냐는 질문에는 “일부 부자들이며, 어떤 경우에는 발레단 후원회의 이사들도 있다. 또는 파티를 주관한 인물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대해 발레단 측은 극구 부인하고 있는 상태. 카테리나 노비코바 대변인은 “볼쇼이 극단에는 이사들이 수없이 많다. 우리가 해외 공연을 할 때면 이사회 회원들이 파티를 열어주곤 한다”고 인정하면서도 “무용수들이나 일반 남성들과 여성들, 가수들이 초대되는 파티가 열리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머지는 완전히 거짓말이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아나톨리 익사노프 총감독 역시 “볼로치코바의 주장은 말도 안 된다. 더러운 거짓말이다”라고 비난했다.
안젤리나 보론초바
무대 위로 죽은 고양이를 던지거나, 라이벌의 발레 슈즈에 유리 조각을 넣는 것은 그나마 애교(?)에 속한다. 최근에는 앙심을 품고 상대에게 황산 테러를 저지른 끔찍한 사건까지 벌어져 러시아 전역이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사건은 지난 1월 17일 벌어졌다. 볼쇼이 발레단 예술 감독인 세르게이 필린(42)이 모스크바 자택 근처에서 복면을 쓴 한 사내에게 황산 테러를 당한 것이다.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고 치료를 받은 그는 현재 다행히 시력은 잃지 않은 채 회복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에 대해 발레단 측은 “극장 감독 자리는 예전부터 질투와 경쟁이 치열한 자리였다”면서 “필린에게 앙심을 품은 자의 소행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를 증명하듯 필린은 사건 발생 몇 주 전부터 전화를 걸고 말을 하지 않는 전화가 여러 통 걸려왔다고 말했으며, 페이스북 계정이 해킹당하거나 자동차 타이어에 구멍이 나 있는 등 수상한 일이 종종 벌어졌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조직폭력배의 행태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한동안 감독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수석 무용수인 니콜라이 치스카리츠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치스카리츠는 지난 2011년 3월, 필린이 최종적으로 예술감독으로 선정될 때까지 경쟁을 벌이는 한편, 안젤리나 보론초바라는 발레리나를 두고 필린과 신경전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필린의 제자였던 보론초바는 현재 치스카리츠의 제자다. 이에 필린은 몰래 “치스카리츠의 수업을 중단하면 백조의 호수에서 배역을 주겠다”고 제안했으며, 보론초바는 만일 제안을 거절할 경우 불이익을 당할까 망설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치스카리츠가 결국 보복을 하기 위해 일을 꾸몄다는 것이다.
하지만 치스카리츠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으며, 이런 그의 주장은 결국 다른 용의자가 자백을 하면서 받아들여졌다. 지난 3월 초 경찰에 의해 체포된 용의자는 주연급 무용수인 파벨 드미트리첸코와 그가 고용한 두 명의 공범자였다. 보론초바와 연인 사이인 드미트리첸코는 현재 경찰에 모든 범행을 자백한 상태. 하지만 그는 “내가 범행 계획을 세웠다. 그렇지만 그 정도로 부상을 입힐 생각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 1000파운드(약 170만 원)를 주고 “그냥 몇 대 때려만 달라”고 사주했을 뿐 처음부터 황산을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는 것이다.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필린 감독이 보론초바에게 백조의 호수에서 주연급 배역을 주지 않자 이에 대한 보복심에 일을 저지른 것 아닌가 추측되고 있다.
왼쪽부터 세르게이 필린, 파벨 드미트리첸코, 니콜라이 치스카리츠
다른 한편으로는 치스카리츠와 드미트리첸코 모두 필린 감독이 차등 지급하는 단원들의 보수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발레 전문지인 <발레>의 발레리아 우랄스카야 에디터는 “돈이 예술과 결부되면 갈등이 더 자주 발생한다”고 말하는 한편, “20년 전만 해도 발레단에는 돈이 거의 돌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외국인 관광객이 적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고 덧붙였다. 실제 볼쇼이 발레단의 한해 예산은 현재 10년 전보다 무려 1200만 달러(약 138억 원)가 증가한 1억 2000만 달러(약 1338억 원)다.
해외 공연에 어떤 무용수들을 데리고 갈 것인가 하는 문제 역시 단원들 간에 가장 큰 갈등을 야기하는 문제다. 안나 고르데예바 발레 비평가는 “이 문제를 둘러싸고 수많은 원한 관계가 발생한다. 많은 무용수들이 나에게 와서 대체 누구는 투어에 뽑히고 또 누구는 안 뽑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투덜대곤 한다”고 말했다.
특히 주연 배우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갈등은 더욱 심하다. 이와 관련, 고드데예바는 “필린이 배역을 어떻게 선정하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만큼 어떤 불공평한 기준이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이런저런 스캔들로 명성에 흠이 간 발레단의 명성이 어떻게 회복될지, 그리고 이런 파문에도 불구하고 과연 앞으로 세계 최고라는 타이틀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