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석 깔아 놓고 먼산 구경했네
▲ 이동관 대변인과 김은혜 부대변인 등이 녹색성장 실천 일환으로 비치된 녹색자전거를 시승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청와대 직원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 자전거 관련주는 대표적으로 삼천리자전거와 참좋은레져가 꼽힌다. 이들 두 종목은 연초보다 몇 배 급등했다. 특히 삼천리자전거는 지난해 말 6190원 하던 것이 최고 3만 7400원까지 올랐다. 이후 조정을 받아 2만 원대 초반을 유지하고 있다. 참좋은레져 역시 지난해 말 3420원 하던 것이 최고 2만 1150원까지 급등했으며 현재 1만 원대 초반을 오르내리고 있다.
이 두 종목의 주가가 가장 많이 올랐을 때는 지난 4월 말께. 이명박 대통령은 4월 20일 연례 라디오 연설에서 “녹색성장의 동반자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자전거를 주요한 교통수단으로 복원시키는 일은 우리가 가야만 하는 길”이라며 “4대강 살리기 사업이 마무리되는 2012년이면 한강·금강·영산강·낙동강 물줄기를 따라서 약 2000㎞에 이르는 자전거길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에 발 맞춰 자전거 산업 육성을 위해 이번에 100억 원을 추가경정예산에 편성하고 이르면 내년에 국산 하이브리드 자전거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후 자전거 관련주는 폭등하기 시작했다. 삼천리자전거의 경우 당일 주가가 상한가를 친 것은 물론 5월 중반까지 폭등세가 이어졌다. 전형적인 정책 수혜주의 모습이었던 셈이다. 사실 삼천리자전거의 주가는 지난해부터 들썩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8월 15일 경축사를 통해 이 대통령이 새로운 국가 발전의 비전으로 ‘저탄소 녹색성장’을 제시했기 때문. 온실 가스와 환경오염을 줄이고 녹색기술과 청정에너지로 신 성장 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신 국가 발전전략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녹색성장이 새로운 국가 발전전략으로 제시되면서 자연스럽게 ‘자전거 타기’ 활성화가 나오기 시작했다. 때마침 대운하를 포기하고 4대강 살리기가 본격 시작되면서 자전거 관련주가 출렁였다. 이때부터 ‘대운하주 내려 자전거주 타자’라는 말들이 나왔다.
이런 주가의 움직임을 청와대 직원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해야만 했다. 청와대 직원들이 주식 거래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식 하는 직원을 찾기는 힘들다. 청와대의 한 직원은 “청와대에서 주식은 골프와 같다”면서 “골프를 치지 말라고 명시적으로 지시한 사람은 없지만 알아서 안 치는 것처럼 주식 역시 하지 말라는 규정은 없지만 주식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또한 주식 거래를 할 환경도 안 된다. 해킹 방지를 위해 청와대 업무용 컴퓨터는 인터넷이 되지 않는다. 업무용 컴퓨터는 순수하게 문서작업만 하고 인터넷 검색이나 부처 간 문서교환 등은 노트북 컴퓨터를 이용하게 된다. 노트북 컴퓨터 역시 보안성이 높은 공공용 행정전산망을 거치도록 하는 등 이중삼중의 보안체계를 구축, 흔히 말하는 주식 매매 프로그램을 깔 수도 없는 실정이다. 증권사에 전화를 걸어 주문을 할 수도 있지만 ‘지켜보는 눈이 많은’ 청와대인 만큼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할 수 없다.
게다가 매년 1급 이상 고위 공무원들은 재산을 공개해야 한다. 청와대 직책상으로 보면 비서관급 이상이 그 대상이다. 누가 어떤 아파트를 샀는지, 어떤 주식을 사고 있는지, 예금이 얼마인지 속속들이 알려진다. 때문에 고급 정보를 접하는 고위 공무원일수록 주식 투자는 더욱 어렵다. 일반 행정관들 역시 공개되지는 않지만 매년 청와대에 신고해야 한다. 정책 수혜주는 새롭게 만들어 내지만 정작 자신들은 그 수혜를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부동산 재테크도 마찬가지다. 청와대 근무는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말이 있다. 이명박 정권 출범 초기 ‘얼리버드’(Early Bird)를 외치며 시작된 살인적인 근무 여건이 거의 개선되지 않고 있다. 평일은 새벽같이 나와 밤늦게 집으로 들어간다.
예를 들면 이렇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 수석비서관 회의, 비상경제대책회의, 확대비서관회의가 돌아가며 오전 7시 30분에서 8시 사이에 열린다. 그 회의에 참석하기 전에 각 수석실 비서관들은 수석비서관에게 회의 관련 보고 자료를 회의 시작 30분 전까지는 올려야 한다. 그 전에 비서관들 역시 선임행정관을 중심으로 만든 자료를 받아 보고 수정하는 작업을 거친다. 때문에 행정관들은 적어도 회의 2시간 전에는 나와야 그날 보고 자료를 만들 수 있는 셈이다.
토요일 역시 오전에 잠깐 휴식을 취하다 오후에 ‘꾸역꾸역’ 사무실에 나오며, 일요일은 통상 10시쯤이면 사무실이 꽉 찬다. 물론 당번제로 휴일을 챙긴다고 하지만 제대로 챙기는 직원은 거의 없다. 이처럼 가족들과 얘기할 시간도 없으니 ‘부동산 투자는 사치’라는 말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실제 이와 관련된 일화가 청와대 행정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경제수석실 산하 한 행정관은 봄 이사철을 맞아 1억 원 넘는 돈을 융통해야 했다. 아내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팔아 다른 아파트로 이사하기로 결정한 것. 이에 적금도 깨고, 보험 약관 대출도 받고, 신용 대출도 받아 돈을 마련해 건넸다.
드디어 이삿날. 새벽같이 출근하는 그에게 아내는 퇴근할 때 ‘○○○아파트 ○동○호로 오라’고 주소를 적어줬다. 이사한 곳이 예전에 살던 집 근처라 찾기가 어렵지 않았다. 집에 들어갔더니 이삿짐 정리가 한창이었는데 생각보다 집이 넓지 않았다. 이에 이 행정관은 “저번 집보다 별로 안 넓어 보이는데 왜 1억 원씩이나 더 비싸냐”라고 아내에게 따졌다. 사실 ‘안 넓어 보이는 게’ 아니라 같은 넓이였다. 즉 예전의 ‘나 홀로 아파트’를 팔고 자녀의 학교와 가까운 대단지 아파트로 가면서 같은 넓이지만 1억 원이나 더 준 것이다. 그는 이런 사실도 모르고 좀 더 넓은 아파트로 갈 것이라고 기대했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고 한다.
그나마 재테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월급이다. 국회의원 보좌관을 하다가 청와대로 온 한 4급 행정관은 월급은 줄었지만 오히려 통장에 돈이 더 쌓인다고 한다. 국회의원 보좌관은 같은 4급이라도 호봉이 높기 때문에 경력을 감안하는 청와대 행정관보다 월급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개인 시간이 거의 없고 청와대에 근무한다는 핑계로 각종 모임에 나가지 않아도 되니 지출이 확 줄어들었다고 한다. 즉, 돈을 더 벌기보다는 돈을 덜 쓰면서 재테크를 하는 게 청와대 직원들 사이에 통용되는 웃지 못할 재테크 방법인 셈이다.
전용기 파이낸셜뉴스 기자 courage@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