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시행 앞두고 재계 “일단 방어막”
사실 이들 법안들이 국회에서 논의될 때 법안심사는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했지만, 실제 막후 싸움을 벌여온 주체는 공정위와 경제단체들이다. 지난 6월 25일 현오석 경제부총리 등 경제사정기관장들과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5단체장이 회동했을 때 가장 극적인 모습이 연출됐다.
지난달 25일 현오석 경제부총리 등 경제사정기관장들과 전경련 등 경제5단체장의 회동 모습. 노대래 공정위장이 “재계가 너무 설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며칠 뒤 전해진 뒷얘기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당시 회동에서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은 정색하고 허창수 전경련 회장, 이희범 경총 회장에게 경제민주화 입법과 관련해 “내가 모든 것을 조율해 기업들 입장에서 적절히 하고 있는데 경제계가 너무 설쳐서 문제”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자리에서 경제단체 회장들은 더 이상 응대하지 않고, 정부 측에 요구하는 이야기만 하고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경제단체 간부들은 부글부글 끓었다. 한 경제단체의 임원은 “국회에 출석하거나, 발언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경영활동을 위축시킨다는 기업들 논리가 잘못됐다’고 번번이 기업들을 죽이려 나댔던 사람이 도대체 누구냐”고 흥분했다. 또 다른 임원은 “전경련 등이 기자설명회를 열어 노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반박한 게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라며 “칼자루를 쥔 양반이 이중플레이나 하고…”라며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렸다.
한 4대그룹 관계자는 “기업들은 정부가 ‘기업들을 잡으려는 게 아니다’고 하는 말을 믿지 않고, 정부는 기업들이 ‘투자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을 믿지 않는 상황”이라며 “거기에는 기업 때려잡는 ‘경제검찰’ 공정거래위가 한몫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업들이 가장 경계하고 있는 ‘칼자루’는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규제다. 기존 공정거래법은 부당내부거래를 제재하는 기준이 ‘불공정성’이었고, 그 입증책임도 공정위에 있었다. 공정위는 일감몰아주기를 적발해 과징금을 물렸는데도, 해당 기업들이 불복해 제기한 소송에서 3분의 1 정도는 패했다. 이 불만을 쌓아온 공정위가 ‘총수일가 사익편취 및 편법승계’ 금지를 내걸고 추진한 게 이번 공정거래법 개정이다. 일단 ‘경쟁제한성’에 대한 입증 없이 ‘특수관계인에게 이득을 몰아준 행위’만 입증해도 제재가 가능해졌다. 경쟁사에 영향이 없더라도 처벌할 수 있게 해서 공정위의 족쇄를 풀어준 것이다.
현재 상호출자제한(자산 5조 원 이상)을 받는 62개 대기업집단의 전체 계열사 1782곳 가운데 총수일가가 지분을 소유한 곳은 417곳(23.6%)이다. 이 중 총수일가 지분율이 높고 내부거래 비중이 많아 개정법의 주된 타깃이 될 분야는 광고, 시스템통합(SI), 물류, 건설 등이다. 광고의 경우 제일기획(삼성), 이노션월드와이드(현대차), HS애드(LG), 대홍기획(롯데), SK플래닛(SK) 등 ‘인하우스 에이전시’들이 가장 긴장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개정법이 시행되면 경영의 효율성을 따지기보다 기업 이미지 등을 고려해 일단 규제대상에서 벗어나려 일감 개방에 나서야 할 판”이라며 “이게 바로 정상적인 거래까지 규제해 기업 경영활동을 위축시키는 사례”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기업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자구책을 내놓고 있다. 명분은 그럴싸하게 ‘동반성장’을 위한 ‘일감나누기’다. 법이 통과한 다음날 롯데그룹은 4개 부문에서 총 3500억 원 규모의 일감을 나누겠다고 발표했다. 이미 현대차그룹은 지난 4월 올해 국내 광고 발주 예상금액의 65%인 1200억 원과 물류 발주 예상액의 45%인 4800억 원 규모의 물량을 외부에 개방했다. 삼성의 금융계열사들도 지난 6월 광고 제작 경쟁 프레젠테이션에 외부 기업을 참여시키는 방안을 내놨다.
SK이노베이션도 최근 계열사인 SK플래닛 대신 외부 광고회사에 광고 제작을 맡겼고, LG그룹도 광고물량 1000억 원 가운데 일부 제품 광고를 경쟁 입찰에 부치기로 했다.
더욱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현대차 정몽구재단’에 이노션 지분 전량인 36만 주를 출연했다. 이노션 지분은 비상장 주식이어서 정확한 평가는 어렵지만 최소 2000억 원에 달한다는 게 증권가의 평가다. 현대차 관계자는 “선순환적 복지에 힘을 더하기 위해 사재 출연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또 다른 사정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공정위는 제일기획, HS애드, 대홍기획 등에 이어 최근 부당 하도급 현장 조사를 이노션으로 확대했다. 경제민주화와 관련한 현장조사가 끊임없이 이뤄지자 정 회장이 사재출연이라는 카드로 맞대응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앞으로 공정위와 재계 사이에 더욱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벌어질 것임을 예상케 하는 대목이다.
박웅채 언론인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촉각
봐주기 되레 사라질 것…“어쩌나”
기업들은 최근 국회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함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에 부여됐던 전속 고발권이 33년 만에 폐지되는 데 따른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개정법은 내년 1월부터 감사원장, 조달청장, 중소기업청장이 기업의 불공정행위를 적발할 경우 공정위에 검찰 고발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공정위는 이들 기관장이 요청할 경우 의무적으로 검찰에 고발해야 한다. 전속고발권은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위가 쥐고 있던 특권이지만, 그걸 잃게 됨에 따라 공정위의 위세가 약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기업들의 반응은 정반대다. 오히려 지금까지 기업들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는 ‘정책적 판단에 따른 봐주기’가 사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공정위가 최근 4년간 내린 시정조치는 2640건에 달하지만 검찰 고발로 이어진 것은 그 가운데 37건(1.4%)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는 공정위가 타 기관의 고발요청을 의식해 선제적으로 고발에 나설 것이란 예상이 적지 않다.
박웅채 언론인
봐주기 되레 사라질 것…“어쩌나”
개정법은 내년 1월부터 감사원장, 조달청장, 중소기업청장이 기업의 불공정행위를 적발할 경우 공정위에 검찰 고발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공정위는 이들 기관장이 요청할 경우 의무적으로 검찰에 고발해야 한다. 전속고발권은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위가 쥐고 있던 특권이지만, 그걸 잃게 됨에 따라 공정위의 위세가 약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기업들의 반응은 정반대다. 오히려 지금까지 기업들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는 ‘정책적 판단에 따른 봐주기’가 사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공정위가 최근 4년간 내린 시정조치는 2640건에 달하지만 검찰 고발로 이어진 것은 그 가운데 37건(1.4%)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는 공정위가 타 기관의 고발요청을 의식해 선제적으로 고발에 나설 것이란 예상이 적지 않다.
박웅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