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바지사장’ 앞세워 로펌 직접 설립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전경. 법조계 ‘큰손’ 브로커의 경우 한번 움직일 때마다 수십억 원의 커미션이 오가는 일은 예사라고 한다. 최준필 기자
그야말로 ‘법조 브로커’의 시대다. 유명 정치인의 가족, 경찰 간부 출신 등이 법조 브로커로 활동하다 덜미를 잡히는 일이 빈번하더니 최근엔 거물급 조직폭력배들까지 브로커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만큼 돈이 되기 때문이다. 브로커는 변호사 수임료의 30%에서 많게는 70%까지 가져가는 게 업계의 ‘공식’으로 알려진다. 일명 ‘꼬찌’로 불리는 커미션이 그것이다. 2~3년 전부터는 이들 브로커가 굵직한 초대형 사건에도 깊숙이 개입하면서 ‘꼬찌’의 판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지난해 정재계를 뒤흔들었던 한 비자금 사건의 경우 브로커 A 씨가 20억 원대의 ‘꼬찌’를 챙겨 서초동 바닥이 뒤집어졌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A 씨의 경우 법조 브로커 세계에서도 가장 선망되는 ‘큰손’ 브로커로 분류된다. A 씨는 ‘바지사장’ 격으로 한 중견 변호사를 내세워 로펌을 설립한 후 정재계 메가톤급 사건만을 주로 수임해왔다.
A 씨의 사건 수임 노하우는 역시 ‘인맥’에 있었다. 명문대 학부 출신인 A 씨는 동문들을 상대로 전 방위적인 로비를 성공시켜 법조타운 서초동을 호령하는 밤의 대통령으로 단숨에 등극했다.
A 씨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나 같은 ‘큰손’ 브로커들은 이 바닥에서 ‘사무장’이 아니라 ‘회장님’이라 불린다. 경찰, 판사들과 친분도 없으면서 마치 대단한 법조계 인맥이 있는 것처럼 변호사로부터 수천만 원의 수임료만 빼앗아가는 양아치 브로커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힘주어 말했다. 최근 재계의 한 관계자와 접촉했다는 브로커 A 씨는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분의 가족이 최근 검찰 내사 건으로 궁지에 몰렸다며 사건 수임을 부탁해왔다. 사람을 시켜 담당 부장 검사, 차장 검사의 인맥 조사를 해봤더니 둘 다 B 고검장과 인연이 깊더라. B 고검장을 통해서 조만간 술자리를 가질 예정이다”라며 “이 자리에 은밀히 C 기업 법무팀도 불러 동석하려고 한다. C 기업은 한때 내 고객이었다. 검사를 잘 구워삶아서 험한 꼴은 피하게 도와줬다”고 말했다.
기자는 정확히 일주일 후 마련된 브로커와 법조인들의 ‘은밀한’ 동석 모임에 직접 참여해 그들만의 술자리를 지켜볼 수 있었다. 그 자리에는 실제로 서울중앙지검 K 검사를 비롯해 C 기업과 D 기업 법무팀 관계자들 다수가 모여 술잔을 기울이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게다가 K 검사는 당시 언론 ‘톱’을 장식하고 있던 한 비자금 사건을 담당하고 있던 차였다. 이날 브로커 A 씨는 기자에게 “내 의뢰인도 따지고 보면 안 된 사람이다. 그냥 아는 검사 통해서 좀 도와주려고 하는 거지, 법을 어긴다든지 사기를 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여기에 약간의 성의 표시(돈)가 추가될 뿐”이라면서 “검사들이 한 달에 얼마 버는 줄 아는가. 나중에 고검장, 지검장 될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검사도 월급쟁이 직원이다. 10억~20억 원 정도면 마음이 흔들리게 되어있다. ‘복권 당첨됐다고 생각하고 불쌍한 사람 좀 살려주시라’라고 말하면 내 경험상 검사 열 명 중에 서너 명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담당 검사의 법조계 선배를 통해 접근해 정겨운 술자리를 만든 후 그런 식으로 ‘작업’에 들어가면 된다”고 말했다. A 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사회전반을 뒤흔들었던 정재계 사건의 결말이 브로커들의 입김에 좌지우지될 수도 있었다는 말이 된다.
A 씨처럼 실질적인 로펌 대표 격인 ‘큰손’ 브로커의 경우 사건 성공 시 수임료 및 성공보수의 80%를 가져간다고 한다. 브로커 A 씨가 지난 사건을 통해 거머쥔 수임료의 액수는 약 28억 원. A 씨는 “1급 개인변호사가 이른바 ‘회장님’들 변호할 때 보통 40억 원을 가져간다. 대형 로펌은 얼마를 받는 줄 아는가? 100억이다. 100억”이라면서 자신은 그에 비해 최소한의 성의만 받는 수준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브로커 A 씨는 “어떻게 보면 적은 돈 받고 사람 하나 살려준 셈이다. 사건 끝나면 의뢰인을 통해 재계의 고위급 인맥이 생겨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나름의 자부심을 느끼는 모습이었다.
A 씨와 같은 ‘큰손’ 브로커들이 가장 선망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애초부터 ‘로열패밀리’ 태생의 ‘고문형’ 브로커들이다. A 씨는 “대형 로펌들의 소속 고문으로 등재돼 있는 고위공직자 출신들이 가장 선망되는 브로커들 아니겠느냐”고 반문하며 “그들은 존재감만으로도 돈과 사건을 불러 모은다”며 부러워했다. A 씨를 비롯해 기자가 만나본 ‘큰손’ 브로커 다수는 돈도 중요하지만 대형 사건을 통해서 정재계 거물들을 상대할 수 있다는 ‘명예’와 ‘간판’을 더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