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숨은 내가 지킨다’ 총 포기 못해
미국에서는 총기 규제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뜨겁다. 사진은 미국 애틀랜타의 한 총기상점에서 점원이 콜트 AR-15 소총 사용법을 고객에게 설명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현재 미국에서 총기를 소지하고 있는 일반인은 1억 명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수치는 지난해 12월 발생한 샌디 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이후 더욱 늘어난 결과다. 6~7세 초등학생 어린이 스무 명을 비롯해 교직원 여섯 명이 사망한 이 사건은 온 미국에 충격과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샌디 훅 참사 1주년을 맞아 미국의 총기 규제를 둘러싼 찬반 논쟁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나는 사실 총이 싫다. 만일 모든 사람들이 총을 포기한다면 나 역시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내가 첫 번째가 되고 싶진 않다.”
버지니아주에 거주하는 간호사인 킴 하이셀은 집안의 금고 속에 권총을 숨겨두고 있다. 그녀에게 권총이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작은 기회’를 의미한다. 그녀가 권총을 처음 지니기 시작한 것은 20년 전 아버지로부터 크리스마스 선물로 권총 한 자루를 선물 받았을 때부터였다. 집안에 침입한 괴한에 의해 어머니가 살해당한 후, 아버지가 특별히 마련해준 선물이었다.
텍사스주의 앤 아센바우어의 침대 옆 협탁 서랍에는 늘 권총 한 자루가 들어 있다. 언제라도 손에 닿을 수 있는 위치이기에 매일 밤 그녀는 안심하고 잠이 들 수 있다. 사실 그녀가 처음부터 이렇게 권총을 소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누구보다도 총기 소지를 반대했었던 그녀는 14세 아들에게도 어릴 적부터 장난감 총조차 사준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은 집안에 강도가 들 뻔했던 위험천만한 순간을 직접 겪으면서부터였다. 당시 집안에 설치되어 있던 경보장치도, 동네 주민도, 심지어 경찰조차도 그녀의 가족을 도와주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경찰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시간이 없다”는 말뿐이었다. 전화기에 대고 애원하고 간청했지만 경찰은 출동하지 않았다. 개인 경비업체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괴한은 현관문을 여는 것을 포기하고 돌아갔지만 그녀의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그날 밤 그녀가 깨달았던 것은 단 하나였다.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녀는 바로 총기상으로 달려가 권총 한 자루를 구입했다.
현재 총기를 소지하고 있는 대다수 미국인들의 경우가 바로 이렇다고 독일 시사주간 <슈테른>은 꼬집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공격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총기를 구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지난해 12월 코네티컷주 뉴타운에서 발생했던 샌디 훅 초등학교 참사 사건 이후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 끔찍한 사건 이후 가장 눈에 띄게 나타난 미국인들의 의식 변화는 ‘악당들은 총을 소지하고 있는데, 왜 선량한 시민들은 총을 포기해야 하는가?’이다.
이런 불안감을 반영하듯 샌디 훅 참사 이후 미 전역에서의 총기 판매량은 급증했다. 범인이 사용했던 총기 제조사인 ‘레밍턴아웃도어 컴퍼니’의 수익은 전년 대비 52%가량 증가했으며, 미국인들이 가장 애용하는 총기 가운데 하나인 AR-15의 중고 가격이 새 제품보다 높게 판매되는 기현상도 벌어졌다.
현재 미국에서 유통되고 있는 총기류는 약 3억 2000만 개며, 총기를 소지하고 있는 미국인들 수는 1억 명에 달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어이없는 총기 사건도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샌디 훅 참사 이후 미국에서는 매일 84명이 총기 사고로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령 미시간주에서는 네 살배기 아기가 아빠의 권총을 가지고 놀다가 오발탄에 맞아 사망했는가 하면, 시카고의 한 공원에서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한 여학생이 총에 맞아 허무하게 목숨을 잃은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러니 미국인들 사이에서 끊이지 않는 논쟁이 하나 있으니, 바로 ‘총기 규제 강화 법안’에 대한 찬반 논쟁이 그것이다. 지난 4월 상원에서 부결된 이후 12월 현재까지 전혀 논의되지 못하고 있는 이 법안은 샌디 훅 참사 이후 1년이 지나도록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총기 규제 강화 법안의 핵심 내용은 ‘모든 총기 거래자에 대한 신원 및 전과 조회 강화’와 ‘반자동 소총을 비롯한 공격용 무기류 및 10발 이상 대용량 탄창 판매 제한’이다. 이를테면 전과자들이나 정신이상자들의 총기류 구매와 살상용 무기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부터 나서서 총기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관련 법안은 여야를 막론한 대다수 의원들의 반대에 부딪쳐 쉽사리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일반 미국 시민들의 의식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 여러 여론 조사에서도 많은 미국인들이 총기 규제에 소극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인들은 계속 반복되는 끔찍한 총기 사건에도 불구하고 왜 총기 규제에 반대하는 걸까.
총기 규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한다. 첫째, 총기 규제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 침해라는 인식이다. 미국의 수정헌법 제2조에 따라 모든 미국인들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무기를 휴대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 있으며, 따라서 총기 소지는 엄연히 기본권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둘째, 아무리 총기 구매를 제한한다고 하더라도 범죄자들은 마음만 먹으면 암시장에서 얼마든지 총기를 구입할 수 있지만 일반 시민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결국 선량한 시민들만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 많은 사람들이 총기 등록을 하지 않은 채 불법으로 총기를 소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기도 하다.
셋째,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니 스스로 지키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국가를 못 믿겠다는 것이다. 국가는 대외적으로는 점점 강력해지고 있지만 정작 자국민들은 보호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총기 규제 논쟁이 불거질 때마다 늘 터지는 질문들 역시 ‘국가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나?’ 등인 것이다.
총기 규제를 반대하는 대표적 로비단체인 미총기협회(NRA) 역시 이런 맥락에서 정부의 책임을 묻고 있다. 총기 규제법이 불공평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시민들의 총기 소지를 제한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책임을 지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령 각 학교마다 무장 경찰을 배치하든가, ‘국립학교 보호 프로그램’을 위한 기금을 조성하든가 하는 제안들이 그것이다.
이밖에도 넷째, 규제를 하기엔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총기를 소유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다섯째, 어릴 적부터 총기 소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까닭에 총기 소유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는 점 역시 총기 규제가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찬반 논쟁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총기 사건으로 희생당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12월 13일 콜로라도주 덴버의 한 고등학교에서 남학생 한 명이 다른 학생 두 명에게 총을 쏜 뒤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는가 하면, 지난 9월에는 워싱턴 DC 해군복합단지 내 사령부 건물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최소 열세 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러니 “미국에서 가장 놀라운 뉴스는 ‘오늘 하루 총에 맞아 사망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라는 것이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닌 셈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