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의료제도 바로세우기 전국의사궐기대회’에 참가한 의사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오는 3월 3일 대대적 파업도 예고했다. 연합뉴스
활성화 대책이 발표되자 의료계는 폭풍전야에 휩싸였다. 급기야 이틀이 지난 12월 15일. 서울 여의도 공원에서는 전국 2만여 명의 의사들이 ‘의료제도 바로세우기 전국의사궐기대회’에 참여했다. 집회를 주도한 대한의사협회 노환규 회장은 “지금 정부는 의료를 살리겠다고 하면서 오히려 의료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다. 지금은 의료혁명이 필요한 때”라고 발언하며 목에 칼을 들이대는 자해 소동을 벌여 충격을 줬다.
그렇다면 의료계가 이렇게 들고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정부안과 의료계의 입장이 가장 충돌하는 부분은 ▲영리 자법인 설립 허용 ▲원격의료 허용 ▲법인약국 허용 ▲의료기관 인수합병 허용 등 4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이 4가지 조항에 대한 반발은 시민사회단체와 야당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다. 의료계와 시민사회단체, 야당은 이 4가지가 허용될 시 경제 논리로 의료를 좌지우지 하는, 즉 ‘의료 민영화’가 급속도로 진행될 것이라고 염려하고 있다.
우선 영리 자법인 설립 허용은 의료법인이 영리를 추구할 수 있는 자법인을 설립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즉 병원이 자법인을 통해 부대사업을 하고 영리를 취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셈. 이제까지 병원 부대사업은 장례식장, 주차장, 구내식당 등 8개로 철저히 제한되어 왔다. 하지만 자법인이 설립되면 숙박업, 외국인환자유치업, 의약품 개발, 화장품, 온천, 체육 시설 등 다양한 부대사업이 가능할 전망이다.
의료계와 시민사회는 이러한 정부의 방안이 “영리병원으로 가는 길”이라며 한 목소리로 반대 목소리를 내지만 세부 입장은 약간씩 다르다. 의료계는 자법인 설립이 ‘박근혜 정부의 꼼수’라는 인식이 밑바닥에 깔려 있는 모습이다. 즉 그동안 의료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의료 수가 인상’(건강보험공단과 환자가 의사나 약사 등의 의료서비스 제공자에게 제공하는 진료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심의해 결정)이 아닌 ‘부대사업’을 통해 병원의 부족한 수익을 대신하라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의료계는 진료 원가의 ‘75%’ 정도밖에 지원 을 해주지 않는 정부의 의료 수가 정책에 상당한 불만을 갖고 그동안 수가 인상을 끊임없이 정부에 요구해 왔다.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장은 “의사를 학교 선생님으로 비유해서 설명을 하면 선생님께서 학생을 가르치고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데 학생들에게 학습지를 팔고 운동화, 체육복을 팔아라 해서 수익을 더 내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시민사회는 자법인 설립 허용을 두고 ‘투기 자본’이 병원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점에 조금 더 경계를 하는 모습이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소장은 “자법인 대책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 자본이 의료법인 자회사에 빨대를 꽂고, 의료법인 모회사의 수익을 빼돌릴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며 “SOC 민자 사업 브로커들이 애용하는 모형이 바로 정부가 대책 문건에 소개한 모형과 매우 흡사하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병원 의사들이 자법인이 진행하는 여러 사업에 환자들을 상대로 ‘영업’을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내비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이러한 반대진영의 입장에 대해 “병원의 지배구조를 지킬 수 있는 보호 장치를 마련하겠다”며 “영리 자법인 수익 역시 병원 사업에만 쓰도록 할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의사들이 ‘관치의료’라고 적힌 관을 들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단체들은 원격의료를 도입할 경우 이익을 보는 건 사실상 ‘IT 업체’라는 입장을 내비치며 반대를 하고 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SK텔레콤, KT, 삼성전자 등 IT기업들은 대형병원과 손잡고 원격의료의 기반이 되는 유헬스 사업에 수백억, 수천억 원을 투자했고 투자할 예정이다. 재벌들은 이 투자비용보다 더 많은 돈을 고스란히 국민들 주머니에서 빼 갈 것”이라고 반발했다. 결국 원격의료의 가장 큰 배후에는 IT 기업과 재벌들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 일각에서는 의료 서비스를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을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 ‘삼성’이 배후로 지목되기도 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정부에서 추진하는 원격의료는 삼성의 투자계획과 전혀 무관하며 정책 수립과정에서 이를 논의한 적도 없고 고려하지도 않았다”고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법인약국 허용의 경우에는 전국 약사들이 가장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약사계는 법인약국을 ‘SSM’(기업형 슈퍼마켓)으로, 동네 약국을 ‘동네 슈퍼’에 비유한다. 법인약국이 들어서면 동네약국은 죄다 문을 닫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약사계의 반발은 최고치에 이르러 지난 14일 민주당 의원들이 주최한 ‘의료영리화 토론장’에서 조찬휘 약사회장이 보건복지부 이창준 과장의 멱살을 잡으며 욕설을 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약사계와 사전 협의를 했다”는 이창준 과장의 주장에 “정부와 사전 협의 한 적이 없다”고 조찬휘 회장이 발끈한 것이다. 이러한 약사계의 강력한 반발에도 정부는 법인약국을 그대로 강행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논란은 식지 않은 모습이다.
이렇듯 정부가 법인약국을 내세우는 대표적인 근거는 2002년 헌법재판소에서 내려진 헌법 불합치 판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약사들만으로 구성된 법인에게도 약국개설을 금지하는 것은 직업선택의 자유,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이창준 과장은 “법인약국 헌법 불합치 사항을 계속 방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약계 의견을 수렴해서 법인약국 형태의 방향성을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헌법 불합치 판결이 내려졌어도 약사들의 의견 수렴 절차가 좀 더 필요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의료기관 인수합병 허용’ 역시 SSM과 동네 슈퍼와 비교하는 시각이 팽배하다. 병원이 인수합병이 될수록 영리를 추구하는 ‘계열 영리병원’이나 ‘네트워크 영리병원’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는 것. 대한의사협회 노환규 회장은 “의료법인 인수합병으로 향후 재벌 자본이 영입되는 통로가 마련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병원 간 인수합병은 직접적인 민영화는 아니지만 향후 민영화로 가는 ‘발판’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대다수인 것이다.
한편 정치권에서도 의료민영화 쟁점은 식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의료영리화 저지 특위’를 구성해 의료계와 시민사회에 발 맞춰 철도 민영화에 이어 대정부투쟁 열기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의료영리화 저지 특위 위원장을 맡은 민주당 김용익 의원 측 관계자는 “일단은 특위 위원들 선임은 마쳤고 아직까지 1차 미팅 정도 들어간 상태”라며 “최근 실시했던 박근혜 정부 의료영리화 정책진단 토론회와 비슷하게 향후 계획과 일정을 조율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에 새누리당은 당내 ‘국민건강특위’(가칭)을 설치해 민주당에 맞불을 놓을 계획이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원내 대책회의에서 “병원 자회사 설립과 원격진료는 환자를 위한 것이다. 이는 세계적 추세고 시장의 흐름”이라며 정부의 안을 적극 찬성해 향후 치열한 공방을 예고하고 있다. 결국 정부와 정치권, 의료계, 시민사회가 얽히고설킨 이번 의료 민영화 논란은 당분간 아비규환식 논쟁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돼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