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급 저택 우거진 숲 뒤로 ‘꼭꼭’
국무총리 공관을 경비 경찰이 지키고 있는 모습. 공관의 건물(작은 사진)은 무성한 수풀에 가려 거의 보이지 않았다.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나라에서 제공하는 공관은 요인들에게만 주어진다. 나라의 중요한 일을 맡은 요인들은 직위를 얻는 순간부터 임기를 마칠 때까지 가족들과 공관에서 생활하게 되는데, 일반 관사처럼 사적인 공간이기도하지만 업무처리와 해외에서 온 손님을 맞이하는 주요 행사 공간의 개념도 포함된다.
대부분 공관의 대지는 3000㎡가 넘기 때문에 숨길 수 없는 곳이면서도 국가 안보 차원에서 지도에 표시되지 않고 넓이, 내부 구조 등도 공개하지 않는 은밀한 곳이다. 주로 서울 한남동 삼청동 등 청와대 인근에 모여 있는 요인들의 공관은 팔 수도 없고 땅값도 책정할 수 없는 특별한 곳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노른자 땅에 주로 위치해있다는 점에서 요인들은 직을 맡는 순간부터 재벌가 부럽지 않은 대저택에서 생활하게 되는 셈이다.
공관은 국가 의전서열이 높은 순으로 배정되고 그 외 몇몇 주요 장관급 인사들에게 주어진다. 국회의장과 대법원장 공관은 한남동에 나란히 붙어있고 삼청동에 있는 국무총리 공관과 헌법재판소장 공관도 인근에 위치해 있다. 또한 감사원장 공관은 평창동에 있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공관이 없다.
국회의장 대법원장 국무총리 등 요인의 공관 내부는 가려져 있고 경비 경찰이 지키고 있긴 하지만 문패가 있지 않아 미리 정보를 찾아보지 않고서는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기도 하다. 지난 11일 취재팀이 찾아간 국회의장 공관은 다른 공관과 달리 지도에 표시돼 있어 찾기 수월했다.
주변에 낮은 빌라들이 있는, 인적 드문 골목 막다른 길에 위치한 국회의장 공관은 건물이 차지하는 범위보다 마당이 차지하는 범위가 더 넓었다. 1~2층으로 구성된 회색의 단독주택으로 이뤄진 국회의장 공관은 건물 주변에 나무를 정리해 확 트인 전경으로 특별히 건물을 가리고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국회의장 공관 바로 옆에는 대법원장 공관이 맞붙어 있다. 대법원장 공관은 국회의장 공관에 비해 경비가 더욱 삼엄했다. 국회의장 공관 왼편 오르막길에 위치해 있는 대법원장 공관은 높은 곳에 건물이 있어 정문에서 보면 건물 위치조차 제대로 보기 힘들었다. 붉은 벽돌로 이뤄진 대법원장 공관은 3~4층 높이의 주택으로 외곽만으로도 국회의장 공관보다 구조가 더 크고 복잡해 보였다.
국회의장 공관
대법원장 공관
대법원 관계자는 “청와대도 내부 구조를 공개하지 않듯이 3부 요인 공관도 넓이와 구조는 원래 공개하지 않는다. 한국은 북한과의 관계도 그렇고 정보 유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공관은 외국 대법원장이 순방을 오거나 초청행사를 할 경우에도 쓰이는데 국회의장의 경우 행사를 많이 하지만 대법원장은 업무 특성상 그런 용도로는 많이 쓰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한남동에는 외교장관 국방장관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 해병대사령관 등의 공관이 모여 있고 이탈리아 스페인 태국 등 주한 외국대사관도 위치해 있어 ‘공관촌’으로 불리기도 한다. 공관들이 한남동에 모여 있는 이유는 청와대에서 멀지 않아 정보 유지와 보안에 유리할 뿐 아니라 기존에 국유지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 최적의 공간이기도 하다.
국유지 근처의 땅들은 이미 ‘노른자위 땅’으로 개발된 지역으로 재벌가들이 사는 동네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공관 근처 시세는 3.3㎡(약 1평)당 2000만 원을 훌쩍 넘어설 정도로 값비싸다. 한남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국회의장 대법원장 공관 등은 지도상 표시되지도 않고 임야지역으로 돼 있어 실제 넓이를 알기 어렵다”면서도 “공관이 위치한 근처 대지 시세는 3.3㎡당 호가가 2500만 원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가 있는 삼청동에도 주요 공관이 모여 있다. 헌법재판소장 공관은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이는 공관이기 때문이라기보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로 사용하는 삼청동 안가와 바로 인접해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장 공관으로 가는 초입에 있는 경비 경찰은 기자가 “헌법재판소장 공관을 찾고 있다”고 말하자 “이 안쪽에는 군사시설일 뿐이다. 나도 내부에는 들어가지 않아 정확히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라며 출입을 허가하지 않았다. <일요신문> 제1083호 ‘궁정동에서 삼청동까지…역대 정권 안가정치 비스토리’제하의 보도에 따르면 그 길 안쪽에는 삼청동 안가와 비서실장 공관 헌법재판소장 공관이 위치해 있다.
인근 지역에서 살펴본 헌법재판소장 건물은 2층 정도로 보이는 단독주택이었다. 헌법재판소장 공관은 다른 집들보다 가장 높은 산 중턱에 있어 좋은 전망을 지니고 있었고 마당은 시멘트 길로 된 확 트인 저택이었다. 이와 확연한 차이를 보였던 것은 대통령 안가였다. 반대편 산등성이에 위치한 안가는 헌법재판소장 공관과는 달리 창문의 위치만 겨우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나무에 가려져 있었다. <일요신문>에서 지난해 2월 겨울 포착한 대통령 안가는 나무에 잎사귀가 없어 저택의 모습이 드러났지만 여름에는 무성한 나뭇잎들이 안가를 보이지 않게 가리고 있었다.
보안에 있어서 나무의 도움을 톡톡히 얻고 있는 곳은 국무총리 공관도 마찬가지다. 국무총리 공관은 최근 정부부처가 이전한 세종시에도 세워져 2개의 공관을 지니게 됐다. 지난해에는 정홍원 전 총리가 세종시 공관에 입주 후에도 대부분의 일정을 서울 공관에서 진행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청와대 바로 앞에 위치한 국무총리 공관은 삼청동 길가 한복판을 다 차지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넓어 쉽게 노출돼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업무를 수행하는 자리인 만큼 내부 건물은 나무에 가려져 있는 등 철저히 보안을 유지하고 있었다. 국무총리 공관은 여타 공관보다 훨씬 더 경비가 삼엄했다.
국무총리 공관 입구에서부터는 청와대 경비도 시작된다. 시민들은 경비 경찰을 지나 청와대 길까지 산책으로 올라갈 수는 있다. 그러나 취재팀이 다가가자 경비 담당자는 “(청와대에) 보고해야 한다”며 부산을 떨었다. 결국 공관 외곽을 살펴보는 내내 담당자가 동행했다. 국무총리 공관 뒤편으로는 작은 골목에 일반 주택들이 있었지만 경비 담당자는 “뒤쪽으로는 청와대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자세히 볼 수 없다”며 출입을 제한하기도 했다.
카페 거리로 유명한 삼청동 길의 시세는 어떨까. 인근 부동산중개업자는 “이곳은 상권에 따라 가지각색이라 물어보면 답하기가 어렵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상가 거리는 3.3㎡당 8000만 원 선이고 뒷길은 모두 주택인데 3.3㎡당 2000만 원 정도 한다”면서 “국무총리 공관 자리는 임야 지역이고 이 동네 자체가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만약 개발을 못한다면 그것보다 조금 낮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평창동 감사원장 공관은 주변 주택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주택단지 안에서도 높은 곳에 위치해 좋은 경관을 지닌 감사원장 공관은 국회봉 하나를 세워둔 것을 제외하면 국가시설이라는 것을 눈치재치 못할 만큼 평범했다. 건물이나 넓이도 주변 주택들에 비해 크거나 화려하지 않았다.
감사원장 공관
감사원장 공관은 들어설 때부터 공관의 역할에 대해서 일부 지적이 나온 곳이기도 하다. 지난 1985년 육군참모총장이던 황영시 씨가 제11대 감사원장에 취임한 후 지은 감사원장 공관은 외국 손님을 접견할 일도 많지 않아 ‘굳이 공관을 만들어 세금 낭비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감사원장 공관 인근의 부동산중개업자는 “이 지역 주택은 경관에 따라 3.3㎡당 1500만~1700만 원 차이가 난다. 감사원장 공관이 있는 쪽은 반대편으로 보면 경관이 확 트여 있어서 비싼 편”이라며 “하지만 인근 주민들은 감사원장 공관이라는 것도 잘 모를 뿐더러 관심도 없고 알아보기도 힘들다”고 설명했다.
요직들의 공관은 주로 청와대 인근에 몰려있기 때문에 실제 출근하는 곳과도 거리가 있었다. 평균적으로 요인들이 출근하기 위해서는 차로 20여 분을 가야 업무공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국회의장 공관은 국회로부터 약 15㎞ 떨어져 있었고 차로 20분 정도, 대법원장 공관은 대법원으로부터 8㎞ 떨어져 있었지만 차로 20여 분 소요됐다. 국무총리 공관은 바로 청와대 근처에 있어 가장 가까웠고 헌법재판소장 공관도 헌법재판소로부터 1.3㎞ 정도 떨어져 있어 차로 8분 정도면 갈 수 있었다.
헌법재판소장 공관의 경우 감사원이 더 가깝게 있어 눈길을 끌었다. 감사원과 헌법재판소장 공관은 500m 거리에 있으며 걸어서 약 8분, 차로는 5분도 안 걸려 도착할 수 있었다. 반면 감사원장 공관은 감사원에서 6㎞ 떨어져 있었으며 차로 22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됐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
공관 예산 논란 유지비 ‘억’ 소리 나네 대지 3000㎡가 넘는 정부 요인들의 공관에 대한 예산 논란은 그동안 끊이지 않아 왔다. 매년 드는 유지비도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1960~1980년대 지어진 공관의 수리·보수비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장 공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에 따르면 지난 2009년 국무총리 공관 수리비용으로 배정된 예산은 총 5억 원이었다. 공관 본관 건물 1000만 원에 ‘삼청당’이라는 시설의 단청도색, 천장 및 처짐 수리 등으로 2억 8500만 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또한 세종시에 총리 공관이 새로 지어지면서 국무총리는 유일하게 2개의 공관을 지닌 요인이 됐다. 특히 세종시 공관은 2만㎡(약 6060평)에 총 316억 원을 들여 건립됐고 삼청동보다 규모가 큰 데다 연회장 등 각종 부대시설이 갖춰져 있어 그동안 총리 공관이 세종시로 일원화 돼야 한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총 1만 5014㎡에 이르는 삼청동 공관은 시가 568억 5100만 원(2011년도 국유재산 가격평가 실시 결과 기준)에 이르고 연간 유지비가 1억 원에 달한다. 이외에 다른 요인의 공관들도 예산 논란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2013년도 헌법재판소장 공관 리모델링 공사 관련 예산안에는 총 3억 8000만여 원이 책정됐다. 그동안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소장이 바뀌는 6년마다 새로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해 왔다. 2000년도에는 4억여 원, 2006년에는 3억 7000만여 원이 공사비로 사용됐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낡은 대저택을 유지하는데 비용이 드는 공관을 굳이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정치 관계자는 “국무총리나 국회의장 같은 경우는 외부 인사를 초청하는 일이 많아 공관이 필요하겠지만 나머지는 크게 그럴 만한 일이 없다”며 “다들 서울에 집이 있는데 굳이 넓은 공관에 들어와 살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요즘에는 지자치단체장들도 모두 공관을 시민들에게 내놓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