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선수가 성공한 프런트로…
SK 프런트가 선수들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오른쪽은 두산의 칸두와 김태룡 단장이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
한국 프로야구에서 단장은 주로 비야구인 출신들이 맡아왔다. 프로야구단이 모기업의 지원 속에 ‘홍보’ 임무를 맡는 특성 때문이다. 당연히 그룹의 낙하산 인사가 관례처럼 내려오는 자리였다. 운동선수 출신은 업무 능력이 뛰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도 작용했다. 실제로 야구선수 출신들이 프런트로 변신한 뒤 가장 힘들어하는 일이 문서 작업이다. 어릴 때부터 야구만 해왔으니, 처음엔 문서 한 장 작성하는 데에만 하루가 걸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 정도는 숙달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다. 오히려 최근에는 전문성을 갖춘 선수 출신 단장들이 각광받고 있다. SK 민경삼 단장과 두산 김태룡 단장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프런트 밑바닥부터 시작해 ‘프런트의 꽃’이라 불리는 단장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들이다. 야구선수가 프런트로 성공할 수 있다는 새 방향도 제시했다.
1986년 MBC 청룡에 입단한 민 단장은 7년간의 짧은 선수 생활을 마친 뒤 1992년 LG에서 유니폼을 벗었다. 프런트 업무는 구단 매니저로 시작했다. 그러다 2000년 창단한 SK에서 운영팀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능력을 발휘했고, 운영본부장이던 2007년과 2008년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뒷받침하면서 2009년 12월 단장으로 임명됐다. SK는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사상 최초로 6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김태룡 두산 단장도 부산고와 동아대 시절 야구선수로 뛰었다. 부상으로 인해 프로 선수는 되지 못했지만,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롯데 프런트로 입사해 8년간 기록원으로 일하며 경험을 쌓았다. 1991년 OB(두산)로 이적한 뒤 주무(매니저)부터 시작해 운영홍보팀장을 역임했고, 2009년 이사를 거쳐 2011년 8월 단장으로 취임했다. 두산의 ‘화수분 야구’를 정착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사실 프런트는 방대한 조직이다. 야구선수 출신들이 할 일이 많다. 운영팀 산하인 스카우트와 전력분석은 오히려 야구를 해보지 않은 비전문가들에게 맡기기 어려운 분야다. 선수단의 뒤치다꺼리를 도맡는 매니저도 야구선수 출신들이 종종 맡는 임무다. 특히 프로야구 선수 출신인 삼성 김정수 매니저는 2000년부터 올해까지 15년째 같은 일을 하고 있다. 류중일 감독이 막내급 코치일 때부터 동고동락했다.
선수 출신들 운영팀장들도 많아졌다. SK 진상봉, LG 송구홍 운영팀장이 프로야구 선수 출신이다. 지난해에는 한화 김종수, 롯데 이문한, 삼성 이성근 팀장까지 5개 팀 운영팀장이 모두 프로 선수 출신이었다. 넥센 염경엽 감독은 2008년부터 3년간 LG 운영팀장을 역임하다 현장을 복귀해 감독 자리까지 오르는 사례를 남기기도 했다.
배영은 스포츠동아 기자 ye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