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 속여 선적하고 침몰 후 보험금 수령
지난해 4월 15일 C 사가 세월호에 실은 ‘디스크건조기’. 무게만 70~80톤에 달해 이를 싣지 못하자 무게 15톤짜리 ‘원통형 저장탱크’로 허위 기재해 선적한 의혹을 받고 있다. 작은 사진은 선적을 준비하는 모습.
지난해 4월 15일 저녁, 인천항을 출발할 당시 세월호에는 승용차 124대, 1톤(적재가능 중량 기준) 화물차 22대, 2.5톤 이상 화물차량 34대의 차량 180대와 화물(컨테이너 포함) 1157톤 등 총 3608톤의 화물과 차량이 실려 있었다. 이중 2.5톤 이상 화물차량 34대 중 2.5톤짜리는 1대뿐이고, 4.5톤 이상 중형 화물차량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25톤 규모의 대형 트레일러 3대도 화물을 실은 채 선적됐다. 승객 30톤(457명을 1인당 65㎏으로 가정할 경우)과 화물을 합산한 총무게는 3638톤으로 세월호의 적재한도인 3794톤에는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사실상 당시 과적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선사인 청해진해운 측이 밝힌 화물 적재량은 큰 의미가 없다. 평형수를 선체에서 덜어내고 그만큼 화물을 더 실어 만재홀수선이 잠기도록 만든 뒤 출발한 세월호는 결국 복원력을 잃고 진도 앞바다에 침몰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당시 세월호가 복원력을 잃고 무게중심을 잡지 못하자 트레일러 뒤에 실린 과적 화물이 쓰러지며 배에 구멍을 냈다는 정황을 경찰이 확보하고 내사를 진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제주도의 비료회사 A 사에서 경기도 포천의 B 사에 ‘디스크건조기’라는 대형 유기농 비료 제조 장비를 발주했고, 포천의 B 사는 다시 이를 경기도 안산의 C 사로 재발주했다. 트레일러 뒤에 실린 짐의 무게만 70~80톤에 달해 이를 싣지 못하자 무게 15톤짜리 ‘원통형 저장탱크’로 허위 기재해 선적했다”며 “경찰 자체적으로 내사를 벌였으나 내사 종결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직후 한 매체는 “무게 50톤 이상의 대형 트레일러 3대 뒤에는 무게 20톤가량 되는 대형 철제 탱크가 달려 있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문제의 철제 구조물은 속이 빈 탱크가 아니었던 것이다. ‘디스크건조기’란 전도 가열식 건조 장치로 내부의 회전하는, 가열된 디스크 면에 부착된 이송 블레이드를 이용해 습윤 상태의 피건조물을 점진적으로 이송하고 건조해 최종 건조물로 배출하는 장치다. 하·폐수 슬러지, 음식물 잔반, 유·무기 산업폐기물 슬러지, 비료·사료화 설비로 쓰인다.
지난해 4월 16일 일어난 세월호 침몰 원인 중 하나로 과적이 지적되고 있다. 사진제공=해양경찰청
<일요신문> 취재 결과 당시 세월호에는 70~80톤의 디스크건조기 본체와 함께 20톤의 쿠커(Cooker)라고 불리는 부품 2개(각각 2대의 다른 트레일러에 적재) 총 3개 한 세트의 장비가 실렸다. 25톤 트레일러 자체 무게만 하더라도 10여 톤이 나가는 것을 고려해 볼 때 디스크건조기 장비 한 세트를 싣는 데만 무게가 최소 140톤가량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당시 디스크건조기를 운송했던 한 트레일러 기사는 <일요신문>과 만나 “화물 적재 칸의 높이가 낮아 크레인으로 장비를 내려놓을 수 없어서 화주 쪽에서 운송비를 더 줄 테니 트레일러째로 가자고 해서 트레일러까지 같이 싣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짐의 무게는 70~80톤이 아니라 30~40톤이었다”고 주장했다.
안산의 C 사는 디스크건조기의 중량을 허위 신고해 세월호에 선적하고 배가 침몰하자 자체 가입한 보험을 통해 보험금을 수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디스크건조기 업계 관계자는 “안산의 C 사가 제주도 비료회사인 A 사로부터 디스크건조기 재하청을 받아 물건을 납품했는데 디스크건조기 본체의 무게가 70~80톤이 나가 선적이 어려울 것을 우려해 15톤가량의 ‘원통형 저장 탱크’로 속여 신고했다”며 “지난해 세월호 참사로 해당 장비가 세월호와 함께 바다에 침몰하자 C 사는 자체적으로 든 화물보험을 바탕으로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했고, 제주도의 A 사는 디스크건조기를 세월호 참사가 터지고 한 달 뒤 같은 방식으로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일요신문>은 먼저 C 사와 접촉을 시도했다. 홈페이지나 연락처가 없어 취업포털 사이트에 최근 올라온 C 사의 구인 공고에 나와 있는 주소지 중 한 곳을 찾았다. 그곳은 서울 용산구의 한 허름한 식당 건물이었다. 벽에 난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3층으로 통하는 입구에 목재 문 하나가 가로막혀 있고 문의 전면에 해당 회사 상호가, 프린트된 종이에 붙어 있을 뿐이었다. 문은 굳게 닫혔고 인기척은 없었다.
제주도의 비료회사 A 사에도 사실 확인을 하기 위해 연락을 취하자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C 사로부터 디스크건조기를 주문했고 세월호 참사로 해당 장비가 바다에 빠졌다’는 사실에 대해서만 확인을 했다. 그러나 추가적인 질문을 이어가려 하자 “담당자가 돌아오면 연락을 다시 주겠다”고 했지만 답은 없었다. 세월호 침몰은 불법과 무관심 등 우리 사회의 온갖 부조리가 결합된 총체적인 부실에 의한 사고이지만 과적은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는 만큼 향후 세월호특조위가 본격적인 활동을 통해 진상조사에 나설 경우 구체적으로 확인돼야 할 부분이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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