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 의향이 어떻든 연내 웨딩마치 추진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과 하나은행 본점.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정확히 1년 전인 지난해 7월 3일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이제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통합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금융 환경이 갈수록 악화돼가는 현실에서 저성장·저수익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두 은행의 통합이 절실하다고 진단한 것이다.
김 회장의 ‘7·3 발언’ 이후 하나금융그룹은 통합작업에 속도를 붙였다. 김한조 외환은행장이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직원들에게 통합의 필요성과 절실함을 알리는가 하면, 김종준 당시 하나은행장과 김한조 행장이 함께 ‘하나·외환은행 통합을 위한 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나금융 경영진의 이 같은 움직임은 지난 2012년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할 당시 외환은행의 5년간 독립경영을 약속한다며 당시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 윤용로 외환은행장, 김기철 외환은행 노조위원장 등이 서명한 ‘2·17 합의서’를 어기는 것으로 비춰졌다. 외환은행 노조와 대화하고 합의점을 도출해야 하는 것이 우선 과제임에도 하나금융 경영진은 일방적이다시피 통합을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 외환은행 노조의 반발을 불러일으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때 험악한 분위기까지 치달았던 노사 양측의 목소리가 잠잠해진 것은 하나금융이 금융위에 합병 예비인가 신청서를 제출한 것에 대해 외환은행 노조가 올 초 법원에 ‘금지 가처분신청’을 냈고 지난 2월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다. 법원 결정에 따라 하나금융이 추진했던 통합 작업이 ‘올 스톱’된 것. 하나금융은 곧바로 이의신청을 했고 그 결과가 지난 6월 26일 나왔다.
지난 26일 법원은 “가처분 결정 당시에 비해 (금융 환경이) 더 악화됐다고 볼 여지가 있다”며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의 중요한 이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상당한 배려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노사 간 가장 큰 쟁점이 되고 있는 ‘2·17합의서’에 대해 법원은 “5년간 합병을 위한 논의나 준비작업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취지로 보이지 않는다”며 “이미 3년 4개월 이상 경과해 현 시점부터 합병에 대한 논의 및 준비 작업이 진행되더라도 합병 자체가 실질적으로 완성되는 시점은 5년이 모두 지난 후”라고 하나금융의 손을 들어줬다.
하나금융지주가 지난 1월 19일 금융위에 합병 예비인가 신청서를 제출하자 외환은행 노동조합원들이 108배를 하며 강하게 반발하는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법원 결정이 나오자마자 하나금융은 통합 작업을 밀어붙이던 1년 전 그때로 되돌아간 듯 발 빠르게 움직였다. 1년 전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김정태 회장이 통합 작업을 주도하는 모양새를 보이면서 전면에 나섰다는 점이다. 통합 필요성을 강조했을 뿐 통합 작업의 실무를 하나·외환 두 은행장에 맡겼던 1년 전과 비교하면 판이한 모습이다. 자연스레 김정태 회장이 통합 작업과 갈등의 중심인물로 부각됐다.
김 회장은 법원 결정이 발표된 26일 외환은행 노조에 ‘노사 상생을 위한 대화합’을 제의했다. 하나·외환은행의 통합을 다시 추진할 뜻을 밝힌 동시에 외환은행 노조에 협조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외환은행 노조와 협상 시한을 7월 6일로 못 박기까지 했다.
김 회장은 또 몇몇 경로를 통해 노조 대화와 별개로 지난 2월 법원 결정으로 철회한 두 은행의 합병 예비인가 승인 신청서를 금융위에 다시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와 대화가 별다른 성과 없이 진행된다면 직접 직원들 앞에 나서 통합의 필요성을 설득하겠다는 의사도 내비쳤다. 법원이 지난 2월 결정을 뒤집으며 외환은행 노조가 제기한 가처분신청을 기각하고 두 은행의 통합 작업에 힘을 실어준 만큼 시간을 끌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금융위 역시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하나금융이 제출할 예비인가 승인 신청서를 받아들일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법원과 금융위의 결정으로 탄력을 받은 김 회장이 머뭇거릴 필요가 없다고 여긴 듯하다”며 “그렇지만 ‘노사합의가 먼저’라는 큰 틀이 깨진 것은 아니어서 마냥 몰아붙이기도 힘들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금융권 다른 관계자는 “또 한 번 시끄러워질 것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며 통합에 이르기까지 험난한 길을 예고했다.
전임 신제윤 위원장에 이어 임종룡 금융위원장 역시 두 은행의 통합에 대해 “노사 양측 간 합의 과정을 거쳐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사를 밝힌 터다. 금융위가 예비인가 접수 후 본인가 과정까지 어떤 모습을 보일지 주목되고 있다.
쉽지 않을 것이라는 금융권 관계자들의 전망은 벌써 현실화하고 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은 법원 결정이 내려진 지난 26일 성명서를 통해 법원 결정에 “중대한 오류가 있는 만큼 강력한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금융노조는 법원의 ‘2·17합의서’에 대한 해석과 ‘경제 상황 악화에 대한 견해’에 오류가 있음을 지적하며 이번 판결로 하나금융이 “또 다시 일방적인 조기 통합을 추진한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총력 대응할 것임을 분명히 경고한다”고 강조했다.
통합 논의를 진행해야 할 당사자인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노조 역시 여전히 삐걱거리고 있다. 양쪽 모두 서로 상대 주장을 규탄하고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쁘다.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노조는 대화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나 그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김정태 회장은 외환은행 노조에 본인을 포함해 김병호 하나은행장, 김한조 외환은행장, 김창근 하나은행 노조위원장, 김근용 외환은행 노조위원장이 함께 하는 ‘5자 회담’을 제안했다. 그러나 외환은행 노조는 ‘2·17합의서를 기반으로 해야 하는 것이니만큼 당사자인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노조가 만나야 한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외환은행장, 하나은행장, 하나은행 노조는 대화에 참여할 까닭이 없다는 얘기다. 특히 노조 측은 “김근용 외환은행 노조위원장을 제외하고 나머지 4명은 모두 하나외환은행 통합에 찬성하는 상황에서 김 위원장 혼자 나서봐야 압박만 받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신 외환은행 노조가 제시한 방식은 ‘5 대 5’ 대화다. 현재 노사 각각 4명씩 참여하고 있는 대화단에 김정태 회장과 김근용 위원장까지 참여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하나금융이 “노조와 대화에 지주 회장이 일일이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거부했다. 하나금융은 “이미 김한조 외환은행장에게 (노사 대화에 대한) 전권을 위임한 터여서 김 행장과 이야기하는 것이 옳다”며 “은행 통합 관련 대화는 외환은행 노사 간에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선을 그었다.
하나금융의 이 같은 주장은 일부에서 비난을 사고 있다. 김 회장이 직접 김근용 노조위원장이 포함된 5자 회담은 제안했으면서도 외환은행 노조가 제안한 대화에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거부하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 게다가 하나금융 스스로 김한조 행장에게 전권을 위임했다고 밝혔음에도 김 회장이 대화를 제의하고 이를 주도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이상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이러한 시각을 의식해서인지 하나금융은 ‘5자 회담’에 대해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모든 사안을 논의하자는 자리”라며 은행 통합을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상황에서 하나금융이 협상 시한으로 못 박은 7월 6일까지 노사 간 합의가 이뤄질지 의문이다. 지난 3월 연임에 성공한 김정태 회장이 직접 나선 만큼 하나금융 측은 그 어느 때보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통합에 기대를 걸고 있는 분위기다. 하나금융은 올해 안에 통합 작업을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노조 관계는 시간이 갈수록 틀어지기만 하고 있다. 지난 2일 외환은행 노조는 법원의 가처분 취소 결정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에 즉시항고를 제기했다. 또 서울중앙지방법원에는 2·17합의서 위반행위 금지 청구 본안소송을 제기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통합 갈등 근본 쟁점 2·17 합의서 살펴보니…“통합 논의는 2017년부터” 하나·외환은행 통합 문제가 노사 간 격렬한 대결을 야기한 데는 이른바 ‘2·17합의서’에 있다. 그러나 외환은행 노조 반발 등 금융위의 최종 인수 승인까지는 험난한 과정을 거쳤다. 해를 넘겨 2012년 2월 17일, 김석동 당시 금융위원장 입회 하에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 윤용로 외환은행장, 김기철 외환은행 노조위원장 등은 외환은행의 법인 및 명칭 유지와 합병 여부는 ‘5년 경과 후 상호 합의를 통해 협의할 수 있다’는 것에 서명했다. 이것이 ‘2·17합의서’다. 외환은행 노조에 따르면 이는 하나금융과 금융위가 외환은행의 5년간 독립경영을 약속한 것이며 두 은행의 통합 논의는 2017년에나 가능할 뿐 아니라 무조건 통합이 아닌 상호 합의를 통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금융에 따르면 금융 환경이 악화돼가고 있는 데다 외환은행이 계속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으므로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두 은행의 통합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통합 법인의 실적 개선도 조기 통합 논의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3월 인도네시아의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통합법인 출범 후 실적이 개선된 것도 하나금융 주장에 힘을 보탠다. 지난 2월에는 중국 현지에서도 하나은행 통합법인이 출범했다. [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