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 “자살” 조부 “자살 아냐” 죽어도 죽지 않는 ‘음모론’
영화 <표백제에 담긴>(위)에서 코베인의 죽음을 재연했다. 다큐멘터리 <커트 & 코트니> 에 등장한 코베인이 생전 모습.
그러면서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코베인은 아내 코트니 러브 몰래 유언장을 작성하려 했고, 그 내용엔 러브에 대한 부분은 제외되어 있었다. 코베인은 러브와 이혼할 생각이었는데, 나중에 러브도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캐롤의 증언이었다. 이에 그랜트는, 코트니 러브가 코베인이 죽은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위자료를 받을 것인지, 막대한 유산을 챙길 것인지, 그 갈림길에서 러브가 후자를 선택했다고 본 것이다. 그랜트에 의하면 코트니 러브는 살인 교사를 한 셈인데, 문제는 살인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것. 쉽지 않은 부분이었다. 한편 로즈마리 캐롤의 남편인 골드버그는 코베인의 타살설은 인터넷 루머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랜트 못지않게 사건을 물고 늘어진 사람이 있다면 영국의 다큐멘터리 감독 닉 브룸필드였다. 그는 코트니 러브의 아버지, 커트 코베인의 숙모, 코베인과 러브의 집에서 일했던 유모 등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 중엔 엘 두체가 있었다. 밴드 ‘더 멘토스’의 드러머이자 리더이며 괴짜 뮤지션인었던 엘 두체는 믿을 수 없는 증언을 한다. 코트니 러브가 자신에게 5만 달러를 주면서 커트 코베인을 죽여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물론 자신은 범행을 저지르진 않았지만, 코베인은 살해당한 것이 맞으며 자신은 범인이 누구인지 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범인의 이름을 말하거나, 누군지 짐작할 만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대신 농담처럼, FBI가 범인을 잡도록 협조하겠다고 했다. 아이러니컬한 건 엘 두체의 운명. 그는 브룸필드와 이 인터뷰를 한 후 얼마 있지 않아 기차에 치여 세상을 떠났다. 39세의 젊은 나이였다.
다큐멘터리는 1998년에 완성되었다. 제목은 <커트 & 코트니>였다. 하지만 작품을 완성한 브룸필드는, 음모론을 제기하기엔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 결국 그는 다소 모호하게 작품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나는 그가 자살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그를 죽였다는 명백한 증거는 없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수많은 일들을 설명할 수 있는 건 자살밖엔 없었다. 그는 살해당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당시 코베인에게 주변의 보살핌이 결핍되었던 건 사실이다. 코트니는 계속 전진하려 했고, 코베인은 소모되고 있었다.”
저널리스트인 이안 핼퍼린과 맥스 월러스도 브룸필드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었다. 그들은 1999년에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라는 책을 냈지만, 결론은 브룸필드의 다큐멘터리와 흡사했다. 코베인이 살해당했다는 음모론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 사건이 재수사되어야 할 이유들은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이후 핼퍼린과 월러스는, 톰 그랜트와 함께 이 사건에 대한 대담을 진행했고 그것은 2004년 <러브 앤 데쓰: 커트 코베인 살인>이라는 책으로 나왔다.
닉 브룸필드(왼쪽)도 코베인 타살설의 확실한 증거를 찾진 못했다. 코베인의 절친인 딜런 칼슨은 음모론을 일축했다.
한편 톰 그랜트에 대한 대중들의 비난도 있었다. 그랜트는 자신의 웹사이트에서 사건에 관련된 사례집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코베인의 죽음을 통해 돈을 벌고 있다는 비난이었다. 이에 그랜트는 수사 비용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내가 파산한다면 난 수사를 멈출 수밖에 없고, 그러면 코트니는 승리할 것”이라고 맞섰다.
반면 코베인의 오랜 친구인 마크 레인건은 <롤링스톤스>와의 인터뷰에서 “난 그가 절대 자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그는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었을 뿐”이라고 했다. 너바나와 함께 시애틀을 대표하는 록 그룹이며, 코베인이 존경했던 ‘소닉 유스’의 킴 고든은 2004년 인터뷰에서 “난 그가 자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지인들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든의 남편이자 그룹 동료인 더스턴 무어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매우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죽었다. 마약 과용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매우 폭력적인 방식으로 죽였다. 하지만 그는 결코 그런 성향의 인간이 아니다. 그는 똑똑했고 매우 지적이었다.” 코베인의 할아버지인 르랜드도 자살설에 반대했다.
죽은 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죽음에 대해선 여전히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올해 나온 재연 다큐멘터리 <표백제에 담긴(Soaked in Bleach)>도 이렇다 할 사실을 전하지 못한다. 어쩌면 우린, 영원히 그 진실을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