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계’ 쳐내기 묵혀둔 파일 열었나
부산지역 중견기업 동일고무벨트가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동일고무벨트의 모회사 DRB동일의 최대주주가 김세연 의원(사진)이라는 점을 들어 ‘유승민계를 겨냥한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김 의원의 부친은 5선을 지낸 고 김진재 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이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는 막역한 사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실장은 지난 2012년 10월 동일고무벨트 상근감사에 선임됐다가 이듬해 비서실장에 내정되면서 퇴임했다. 동일고무벨트는 당시 증권가에서 ‘김기춘 테마주’로도 불렸다.
‘정치권 거물’들과 직·간접적인 인연을 맺어온 동일고무벨트는 산업용 고무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다. 동일고무벨트의 시가총액은 지난 19일 종가 기준 1201억 원, DRB동일은 2125억 원으로 나타났다. 매출 구성은 전동·고무벨트 부문 비중이 60%가 넘는다.
동일고무벨트가 철도 궤도(레일) 시공 납품 업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동일고무벨트는 전라선 BTL(민자) 사업을 비롯해 경전선 함안~진주(BTL) 궤도공사, 호남고속철도 익산~광주 송정 간 궤도공사에 캠플레이트(완충재), 탄성분리재, 바라스트매트 등을 납품했다. ‘업력’으로 따지면 ‘퍼스트 무버’는 아니다. 철도업계 관계자는 “동일고무벨트가 후발주자임에도 영업력이 상당해 여러 곳에서 입찰을 따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건이 불거진 건 지난해 6월. 동일고무벨트의 협력사인 R 사 임원 김 아무개 씨가 ‘납품 압력’을 증언하면서다. R 사는 동일고무벨트를 비롯한 철도 부품 제조업체로부터 캠플레이트 등을 공급받아 이를 다시 시공사에 납품해왔다. 당시 김 씨는 2011년 6월께 동일고무벨트의 외압을 받고 동일고무벨트 제품을 독일산(C 사)인 것처럼 꾸며 전라선 BTL 사업에 납품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임내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국민의당) 의원실이 한국철도시설공단(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두 건의 보고서(2015년 6월 16일자 콘크리트궤도 자재 관련 민원 검토보고 등)를 보면 ‘납품 비리’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보고서에서 공단은 “전라선 BTL 사업에 납품된 캠플레이트 총 9만 8040개 중 4만 9020개는 승인된 공급원(일종의 품질계약서)과 다르게 동일고무벨트 제품이 납품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김 씨와 동일고무벨트의 입장은 이 지점에서 엇갈린다. 김 씨는 “압력을 받았다”고 주장한 반면 동일고무벨트는 “김 씨 혼자 저지른 범죄”라고 반박했다. 동일고무벨트 측은 지난해 11월 김 씨를 회유해 ‘납품 압력’ 증언을 번복하도록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동일고무벨트 측은 김 씨와의 통화 내용을 녹음했다.
양측의 주장이 엇갈린 가운데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대전지검 특수부는 관련 납품 비리(시험성적서 위변조 등)뿐 아니라 전라선 BTL 사업 전반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지검 고위 관계자는 지난 19일 “수사가 되고 있는 건 맞다”며 “구체적인 진행 사항은 아직 보고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시공 업체인 궤도공영, 남광토건 소속 관계자들 역시 각각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검찰은 특정 회사 제품을 납품하는 과정에서 실무자 간 금품이 오간 사실이 있는지, 또 수백억 원대 정부 보조금을 빼돌린 사실이 있는지 등을 조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철도업계 관계자는 “지난 철피아 수사 때만큼 수사 강도가 높다”고 말했다.
전라선 BTL 사업자인 전라선철도㈜ 측은 <일요신문>의 문의에 답변을 주지 않았다. 동일고무벨트 측은 지난 19일 통화에서 “수사 상황은 연락받은 바 없고, 우리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다”며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공단 측은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검찰의 이번 수사는 다소 늦은 감이 있다. 검찰은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철도업계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작업에 착수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R 사가 연루된 납품 비리 의혹을 인지하고 자료까지 확보했다. 그러나 수사하지 않았다. 관련 첩보는 대검찰청 쪽으로도 넘어갔지만 사건이 이첩되지 않았다. 검찰의 다른 관계자는 “사안이 가진 정치적 맥락 때문에 위에서 누른 것”이라고 말했다.
유승민 의원
새누리당 내에서도 유 의원을 겨냥한 ‘사정’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 목소리가 나온다. 권력기관을 필두로 전방위적인 ‘유승민 찍어내기’가 있었다는 전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당직자는 “BH(청와대)가 유(승민)를 싫어해 유와 친한 현역 의원들에게도 ‘작업’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유 의원 측은 “(수사 내용을) 모르고 있었다”며 “드릴 말씀이 없다”고 전했다. <일요신문>은 김 의원의 입장을 듣고자 수차례 전화를 걸고 문자를 남겼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