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헌혈증 도움’ 준 웃대 회원들에게 감사인사 띄운 김민호씨 인터뷰
지난 5일 올라온 김민호 씨의 글
―글에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했는데 무슨 일이 있어서 힘들었나.
“포항에서 어머니, 아버지, 형과 함께 사는 평범한 가정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IMF를 전후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셨다. 당시 아버지는 다리가 불편하셔서 재취업도 안됐다. 유일하게 돈을 버는 사람이었는데 집에 수익이 없으니 막막했다. 그래서 부모님 두 분이 야채가게를 하셨다. 그 때 나와 형은 학생이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게 살다가 형은 군에 입대했고 나도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러다가 일이 터졌다.”
―그 일이란 게 무엇인가.
“형이 휴가를 나왔다. 사실 형이 휴가 나와도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 어머니가 음식을 하는데 굉장히 힘들어하시는 게 보였다. 너무 힘들어하셔서 병원을 가라고 했더니 형이 걱정한다며 형이 복귀하면 그때 가겠다고 했다. 그러고 병원에 가셨는데 어디가 많이 안 좋다고만 말씀하셨다. 그래서 포항에 있는 큰 병원에도 가보고 서울에 있는 병원까지 갔다. 그때까지 나는 무슨 일이 있는지 잘 몰랐다.”
―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어머니가 백혈병에 걸린 것이었다. 그때도 큰 생각이 없었다. 그러고 아버지는 어머니와 병원에 계속 계셨고 나는 집에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버지가 내려와 형한테는 얘기하지 말라며 야채가게를 처분하셨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짐정리를 도와주고 있었는데 같이 도와주던 삼촌이 어머니가 병에 걸렸다는 걸 말해줬다.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아버지는 좋은 의도에서 숨겼겠지만 배신감도 들었다. 나도 힘이 되고 싶은데 왜 나한테 숨겼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나는 이제 어떻게 할까하는 생각도 했다. 어려서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집도 부유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했나.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집을 나왔다. 자퇴생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가 있는데 거기서 알게 된 사람을 찾아 천안으로 갔다. 천안에서는 잘 곳도 없어서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편의점에서 자거나 도서관에 가서 책상에 엎드려 잤다. 그때는 방황도 많이 했다. 어린 나이에 술도 먹고 그랬다. 그런데 술을 먹어도 별 재미는 없었다.”
―집에 돌아온 건 언제인가.
“6개월을 그러고 살았다. 게임을 좋아해서 PC방도 자주 찾았다. 그날도 너무 답답해서 PC방에서 웃긴대학에 글을 올렸다. 내가 지금 이런 상황이고 사실은 어머니를 도와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그 글을 보고 사람들이 격려의 문자도 많이 보내주고 헌혈증도 많이 보내줬다. 사실 굉장히 놀랐다. 도움을 받으려고 올린 글이 아니라 내가 마음 편해지고 싶어서 글을 썼던 건데. 나야 잃을 게 없어서 집주소와 휴대전화번호도 올렸더니 손 편지도 오고 직접 찾아오신 분도 있었다. 그분들에게 받은 헌혈증이 1000개 정도 된다. 어쨌든 그래서 포항으로 다시 내려갔다. 편지를 확인해야 하니까.”
김민호 씨 어머니가 보내준 헌혈증 사진. 김 씨는 7년간 헌혈증을 사용하고 같은 병실에 있던 사람들에게 나눠줬는데도 아직 이만큼의 헌혈증이 남았다고 전했다.
―웃긴대학이란 사이트는 어떻게 알았나?
“어렸을 때 아는 형이 소개시켜줬다. 처음에는 몇 번 접속만 하는 정도였는데 계속 들어가다 보니 재미도 있어서 지금까지 하고 있다.”
―집을 나왔는데 가족들에게는 연락이 없었나.
“사실 가출 중에 집에 갔던 적이 있다. 그런데 가도 아무도 없었다. 형은 군대에 있으니 연락이 안 되고 어머니도 연락할 상황이 아니었다. 내 집이 내 집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천안으로 갔다. 아버지는 가끔 전화하셨는데 고지식한 면이 있으셔서 ‘밥 먹었나’, ‘어머니께 연락 좀 해라’라는 말만 들을 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슬픈 일이지만 그때는 너무 화가 났다. 그래서 병원에도 찾아가지 않았다.“
―포항에 내려가서 어떻게 했나.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사실 어렸을 때는 나름 공부를 잘했다. 그래서 다시 공부를 시작해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낮에는 공부를 했다. 지금 하라고 하면 못하겠지만 그때는 내가 할 게 있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다. 검정고시에 붙고 부모님께도 잘 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연락도 자주했다.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아버지를 생각하며 힘을 냈다. 아버지는 서울에 갈 곳이 없어서 병원 휴게실에서 주무셨다. 어머니는 무균실에 따로 계셔서 병실에서 같이 주무실 수도 없었다. 그런 생활을 3년간 하셨다.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아버지를 보니 난 힘든 것도 아니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았다. 그러고 수능을 보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다.”
―서울에서는 어떻게 생활했나.
“여전히 돈이 문제였다. 고시원에 살면서 아르바이트를 계속했다. 다행히 장학금을 계속 받아 학비 부담은 별로 없었다. 어머니도 그때부터 몸이 괜찮아지셔서 입원이 아닌 통원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어머니가 포항에서 왔다 갔다 하기는 너무 멀어 서울에 사는 외삼촌댁에서 살았다. 그렇게 살다가 올해 2월에 학교를 졸업하고 3월에는 사회복지공무원 시험을 봤다. 가채점을 해봤는데 필기는 무난하게 합격할 것 같다.”
김민호 씨는 올해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해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얻었다.
“주변 사람을 계속 도우면서 살고 싶다. 사실 과거에 힘든 사람을 위한 단체를 만들려고 여성가족부를 찾아갔었다. 인터넷 보고 서류를 대강이나마 만들었고 주변사람 추천서까지 가져갔다. 그런데 담당자 불러준다더니 담당자는 오지도 않고 다른 사람이 와서 안 된다고만 말했다. 대상이 뚜렷하지도 않고 장난하냐는 식의 답변만 돌아왔다. 정작 내 서류는 제대로 읽지도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 뭐라고 반박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 공무원시험까지 합격하면 어디 가서도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봉사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어떤 봉사를 할 것인가.
“사회복지도 분야가 다양하다. 장애인, 노인, 청소년 등 도와줄 대상이 많다. 그러나 그런 일은 사회복지사가 하는 일이고 나는 다른 봉사를 하고 싶다. 나는 힘든 사람을 도와주는 것보다 세상에 고마운 사람이 많다는 걸 알리고 싶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 홍대 앞에 쓰레기 줍는 사람 동영상이 웃긴대학에 올라왔다. 그분들에게 따뜻한 차와 주먹밥을 건네주는 훈훈한 영상이었다. 나도 이런 영상을 찍어 세상에 알리고 싶다. 돈은 전혀 받지 않을 생각이다. 사리사욕을 채우는 게 목표가 아니고 스스로도 돈이 걸리면 욕심이 날 것 같아서 아예 돈은 생각도 안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아프리카TV 방송을 통해 중계를 할 예정이다. 이런 사람이 있다고 소개하고 그런 사람들 인터뷰를 실시간으로 찍어서 방송하고 싶다. 나는 봉사활동을 널리 알리고 싶다. 내가 도와줬다는 걸 알리는 게 아니라 같이 봉사활동을 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많으니 우리 모두 좋은 사람이 되자. 뭐 이런 식이다.”
김민호 씨는 앞으로도 계속 주변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웃긴대학에 소개글을 올리고 지원자를 모집했는데 아직 많지는 않다. 사실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서 인원은 좀 많이 뽑을 예정이다. 내가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으니 아는 사회복지사를 통해 봉사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만날 예정이다. 빠르면 이번 주부터 시작할 계획이다. 나중에는 비영리 단체로 성장하고 싶다. 그리고 7년 전에 나에게 도움을 줬던 웃긴대학 사람들은 지금 연락이 안 되는데 꼭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