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범’을 ‘소방수’로 내세운다고?
원유철 새누리당 대표.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당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원유철 원내대표를 바라보는 당내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비박계의 한 중진 의원은 “새누리당이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이다. 원유철 원내대표가 누군가. 총선 기간 내내 친박계 선봉장으로서 비박계와의 전쟁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패배의 최대 요인인 계파 갈등의 당사자 중 한 명이라는 얘기다. 가장 책임이 큰 사람을 당의 얼굴로 내세우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 원내대표는 친박 진영에서 ‘신박’으로 꼽힌다. 비교적 뒤늦게 친박으로 합류했다. 지난해 유승민 의원 하차 이후 원내대표 자리를 맡으며 핵심 친박으로 급부상했다. 특히 비박과의 총선 전쟁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활약(?)으로 박 대통령 신뢰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 일각에선 친박이 7월 전당대회에서 원 원내대표를 당 대표로 밀 것이란 관측까지 나온다. 그만큼 친박 내에서 원 원내대표의 입지가 높아졌다는 것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비박계는 원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게 된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친박계에서조차 ‘무리수’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한때 ‘친박’이었던 이혜훈 당선자는 “공천 파동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 비대위원장을 맡는 건 부적절한 면이 크다”면서 비대위를 새로 꾸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원 원내대표는 비대위원장직 권유를 고사했다. 그러나 다른 대안이 없고 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법도 있기 때문에 원내대표와 비대위원장을 함께 맡는 게 좋겠다는 얘기가 있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원유철 비대위’와 관련해 친박 핵심부 기류가 반영됐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총선에서 패배하긴 했지만 박 대통령의 남은 임기를 감안해 국정 주도권을 놓을 수 없다는 얘기다. 한 친박 의원은 “친박 내에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박 대통령이 추진 중인 개혁을 완성하기 위해선 당이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7월 전당대회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원 원내대표 등을 중심으로 친박이 똘똘 뭉쳐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권 관계자들 중에선 우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박 대통령과 친박 핵심부가 ‘마이 웨이’를 고집할 경우 민심은 더욱 멀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이번 총선 패배는 친박계가 공천 과정 등에서 국민을 도외시하고 오직 박 대통령만 바라보다 생긴 결과다. 야당과 머리를 맞대고 국정을 풀어 나가라는 게 민심으로 나타났다. 개혁에 매몰돼 지금처럼 일방독주식의 국정 운영을 펼칠 경우 내년 대선은 더욱 힘들 것”이라고 꼬집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