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브로커·조폭 등 ‘선수’들 팀 이뤄 접근…네이처리퍼블릭 입점도 이들 작품
신영자 이사장이 7월 1일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는 모습.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신영자 이사장이 지난 7월 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모습을 드러냈다.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서였다. 심사 후 나타난 신 이사장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눈물을 흘린 흔적이었다. 신 이사장은 담당 판사 앞에서 한 시간 가까이 하소연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 이사장 통곡 소리가 법정 밖에까지 들렸다고 한다. 신 이사장은 심사가 끝나고서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고 직원들의 부축을 받은 채 법정을 떠났다.
‘유통업계 대모’로 불리는 신 이사장이 끝내 눈물까지 흘린 데엔 여러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란 관측이다. 특히 자신의 자녀들까지 연루된 부분에서 신 이사장은 감정이 복받쳤다는 후문이다. 신 이사장은 심사 과정에서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아들 이야기가 나오자 “아들에게 미안하다”며 흐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신 이사장은 아들이 대표로 있는 회사의 실소유주라는 혐의를 받고 있다.
신 이사장 주변에선 검찰 수사선상에 오르기까지 벌어진 일련의 상황들에 대해서 신 이사장이 상당히 억울해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신 이사장과 알고 지내는 한 재계 인사는 “신 이사장이 우는 것을 처음 봤다. 자녀들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수사가 시작된 후 본인의 신세에 대해 여러 번 한탄했다. 처신을 잘못했다는 것이었다. 후회하는 모습이었다”라고 귀띔했다.
신 이사장이 이처럼 수렁으로 빠지게 된 계기는 지난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 이사장은 지난 2012년 말 브로커 한 아무개 씨를 통해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를 처음 알았고, 그 이후 친분을 유지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한 씨는 검찰 수사 등에서 자신이 신 이사장의 연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은 2012년 당시의 만남이 재계 5위 롯데를 창사 최대 위기로 내몰았고, 신 이사장 구속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몇몇이 신 이사장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던 정황이 포착됐다. 신 이사장을 사업적으로 활용, 이권을 얻기 위해 소위 ‘작전’을 펼쳤던 것이다. 재계에선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인데, 이번엔 재계 5위 총수 일가가 타깃이 된 셈이다. 여기엔 법조 브로커를 비롯해 인수합병 전문가, 연예기획사 임원, 호남 출신의 조직폭력배 간부 등이 관여하고 있었다. 다양한 분야의 ‘선수’들이 팀을 이뤄 신 이사장을 공략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다음은 이 과정을 소상히 알고 있는 한 사업가의 말이다.
“신 이사장과 친분이 있는 한 금융권 인사가 처음 아이디어를 냈다. 신 이사장과 함께 사업을 해보자는 것이었지만, 말만 그렇지 철저하게 신 이사장을 이용하려는 속셈이었다. 우리는 면세점과 롯데쇼핑에 주목했다. 그래서 이 방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전문가들을 모아 전략을 짰다. (정 대표가) 신 이사장에게 일부러 접근한 것으로 보면 된다. 성격이 호탕했던 신 이사장은 ‘멤버’들을 믿었고, 후원도 많이 해줬다.”
이들은 2012~2014년 사이 주로 청담동과 논현동 일대에서 일주일에 두세 차례 모인 것으로 전해진다. 가끔 신 이사장이 참석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정 대표의 네이처리퍼블릭 입점도 이들 ‘작품’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신 이사장과 이들 사이에 추가로 어떤 ‘딜’이 있었는지는 파악되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조폭도 끼어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현업’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강남 인근에선 제법 이름이 알려져 있는 인물로, 자산가로 소문이 나 있다.
이들은 평소 정치권 유력자들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신 이사장에게는 박 대통령과 가까운 한 핵심 친박 인사 이름을 거론했다고 한다. 앞서의 신 이사장 측 재계 인사는 “솔직히 신 이사장이 뭐가 아쉬워서 그들과 어울렸겠느냐. 신 이사장은 그들이 가깝다고 주장한 친박 인사를 보고 그랬을 것이다. 그 친박 인사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하다. 2012년 당시 박 대통령이 유력 후보였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신 이사장 태도가 이해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물론 이들이 친박 인사 이름을 일방적으로 팔고 다녔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그러나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복수의 관계자들은 “실제로 그 친박 인사와 알고 지냈던 이들이 있었다”라고 입을 모았다. 신 이사장 재판에 시선이 쏠리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재판 과정에서 친박 핵심부로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얘기다. 사정당국 고위 인사는 “신 이사장 주변에서 그 친박 인사 이름이 자주 들리고 있어 조심스럽게 살펴보고 있다”면서 “정운호 도박 사건이 ‘나비효과’처럼 롯데그룹 수사로까지 번진 것처럼 신 이사장 수사와 재판 역시 현 정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전적으로 총수 일가의 잘못” 롯데 현직 임원 심경 토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롯데그룹 내부는 초긴장상태다. 신영자 이사장 구속을 신호탄으로 총수 일가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들 역시 “신동빈 회장이 수사의 종착지”라는 말을 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요신문>은 지난 7월 3일 롯데 한 고위 임원과의 만남을 통해 회사 내부 분위기를 엿볼 수 있었다. 롯데그룹 수사 이후 여러 차례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던 그는 지난해부터 시작된 형제의 난 및 최근의 검찰 수사 등과 관련해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신영자 이사장이 구속됐다. 이제 다음 차례는 신동빈 회장이라는 얘기가 많다. “참담하다. 회사 내에서는 (검찰 수사에 대해) 쉬쉬하며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고 있다. 솔직히 내용을 잘 모른다. 뉴스를 보고 아는 것이지. 그러나 회식 자리 등에선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인지 조심스럽게 서로 얘기한다. 이러다 대우처럼 그룹이 해체되는 것은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신 이사장과 정운호 대표 간 관계는 그룹 내에서도 소문이 났었다는데. “맞다. 네이처리퍼블릭이 입점할 때 신 이사장이 뒤를 봐줬다는 말이 돌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특정 업체가 백화점이나 면세점에 들어올 때 그런 풍문은 돌기 마련이다. 실제로 (특혜가) 있다 하더라도 공공연히 이뤄지는 것 아니냐. 그 정도 수준으로 받아들였지 검찰 수사로 이어질지는 정말 예측하지 못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는지. “MB 정권 때 잘나갔던 우리 회사가 ‘괘씸죄’ 때문에 당하고 있다는 얘기가 많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전적으로 내부의 잘못, 특히 총수 일가의 부적절한 판단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나뿐 아니라 상당수 직원들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기회에 잘못을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무슨 뜻인지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비리가 속속 드러나고 있지 않느냐. 그동안 대기업으로서 도덕적·법적 책임감에 너무 둔감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형제가 대놓고 싸운다거나(신동빈-신동주), 특정업체로부터 돈을 받고 입점을 하게 해줄 수 있겠느냐(신영자). 대부분 국민들이 롯데를 욕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결국 신격호 총괄회장에서 비롯된 것 아니겠느냐. “그렇다. 신 총괄회장이 확실하게 지분이나 경영권을 정리했어야 했다. (신 총괄회장이) 버티고 있으니 제대로 된 의사결정이 되질 않는다. 오래전부터 신 총괄회장이 빨리 물러나고 2세 경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말이 많았다. 회장에서 물러난 뒤 총괄회장이라는 직함을 새로 만들어 회사를 좌지우지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자식들이 참 힘들겠다’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형제의 난이 벌어졌을 때 직원들은 누구 편이었나. “당연히 신동빈 회장이다. 우리는 신 회장이 한국롯데를 맡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신동주 측에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그런데 신동주가 신 총괄회장 아들이라는 것 이외에 한국 롯데에 기여한 게 뭐가 있느냐. 그래도 신 회장은 그룹 내에서 차근차근 경영수업을 밟았다. 신동주의 욕심에서 벌어진 일이다.” ―어찌됐건 롯데를 향한 국민들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한 직원이 하소연을 하더라. 자식이 학교를 갔는데 ‘너희 아버지 일본 사람이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롯데가 일본 기업이라는 이미지 때문이었다. 총수 일가가 일본 말을 사용하고, 또 지분 구조가 일본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더라도 직원들은 한국인이다. 신 총괄회장 등이 그런 직원들의 자긍심을 무너트린 것이다.” [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