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모 내연남의 폭행으로 한쪽 눈 실명…“아이 고통 내가 알아 가해자에 법정최고형을”
친모 내연남의 폭행으로 한쪽 눈의 시력을 잃어 의안을 끼고 살아가야 할 다섯 살배기 A 군을 위해 한 변호사가 법정에 섰다. 이 자리에는 A 군을 폭행하고 방조한 피고인들도 나와 있었다. A 군의 국선변호를 맡은 김예원 변호사는 법정에서 안대를 풀고 의안을 내보였다. 김 변호사는 장애인 변호인협회 소속 변호사로, 의료사고를 당해 의안으로 세상을 보는 시각장애인임을 이날 법정에서 밝혔다.
김 변호사는 이어 “어릴 적 의안 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았다. 이 아이가 나와 같은 괴로움으로 유년 시절을 보낼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면서 “또 의안구슬을 바꿔서 넣을 때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른다. 모든 학대범죄는 습관적 방임과 비인격적 대우가 심해져서 결국 치명적인 상황이 초래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 이외에도 8명의 여성 변호사가 무료 변론을 자원해 A 군의 변호인단이 꾸려졌다.
A 군은 친모 최 아무개 씨(34)의 내연남인 이 아무개 씨(27)로부터 지난해 7월부터 10월까지 8회에 걸쳐 두개골 등의 상해를 입었을 뿐만 아니라 한쪽 눈이 실명됐다(일요신문 1308호 보도내용 참고). 또 공소사실에 따르면 이 씨가 A 군의 머리를 주먹으로 집중적으로 때리느라 손에 멍이 들었을 정도로 잔혹한 폭행을 일삼았다.
<일요신문> 보도 이후 타 언론에서도 후속 보도가 이뤄지면서 수사요청을 묵살했던 경찰서에 대한 사실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다만 A 군의 공판기일과 시간, 장소 등이 공개되는가 하면 폭행 내용이 사실과 다르게 보도돼 A 군의 2차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일부 언론에 따르면 A 군은 이 씨에게 폭행을 당하던 도중 한쪽 고환이 손상돼 제거를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이는 공소사실에 전혀 포함되지 않은 부분이다. 다행히 A 군은 아동보호기관의 보호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 씨는 그동안 법정에 피고인으로 출석하며 ‘눈을 한 번 주먹으로 때렸다’는 진술 이외에는 폭행 사실을 부인해 왔다. 이에 재판부에서는 “이 씨가 아동의 눈 폭행만 인정하는 상황에서 살인미수의 가부 결정이 부담되는 부분이 있다”며 “예비적 공소사실에 아동학대 중상해 혐의를 추가하면 법률적 판단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라며 검사 측에 공소장 변경을 권유하기도 했다. 이에 검사 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씨가 A 군을 폭행했다는 정황 증거는 A 군의 주치의였던 한석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교수의 CT자료와 증언뿐이었다. 이 때문에 그동안 공판이 거듭되면서 살인미수 혐의를 입증하기까지 난항이 예상됐다. 그러나 이 씨가 신문 도중 ‘아이의 온몸을 수차례 때린 기억이 있다’고 말하면서 공판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이 씨는 이어 “최 씨가 야간 출근을 하게 돼 지난해 6월부터 피해아동을 돌봤다”며 “순간적으로 화가 날 때 때렸다”고 밝혔다.
검사는 “범행경위와 동기, 공격부위와 반복성, 범행전후의 사정을 종합할 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미수가 인정된다”며 “5세 아동에게 건장한 성인의 주먹은 다른 어떤 흉기보다 폭력적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는 울산계모사건을 수사하고 공판을 진행한 박양호 검사의 논문을 증거로 제출했다. 박 검사는 논문에 ‘성인의 주먹과 발길질은 아동을 죽일 수 있는 흉기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을 게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검사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박 검사는 울산계모사건 공판을 진행하던 당시 피해아동을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계모에게 미필적 고의성이 있다고 주장했고 이는 인정된 바 있다.
또 검사는 “피해자가 오히려 죽지 않은 것이 피고인에게 유리한 양형으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죄질도 불량해 죄에 상응하는 처벌이 필요하다”며 이 씨에게 징역 25년을 구형했다. 또 최 씨에 대해서는 “피고인 이 씨와 결혼하기 위해서 자신의 아이가 지속적인 폭행에 노출되어있음에도 계속 피해아동을 이 씨에게 맡겼다”며 “최 씨가 피해아동의 친모라는 입장에서 이 씨 못지않게 죄질이 불량하다”며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이 씨는 “이 재판을 받고 나면 피해아동이 웃으면서 지낼 수 있게 진심으로 돕고 싶다”고 울면서 말했다. 또 최 씨 역시 “아이와 잘 살아보려고 했는데 사람 하나 잘못 만나서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며 “공포스럽고 힘든 시간을 보낸 아들에게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아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선처를 부탁드린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동안 울음기 없이 법정에 있던 이들의 태도가 180도 바뀌기도 했다. 이례적으로 아동 학대 가해자에 대한 살인미수 혐의가 인정될지 선고 결과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선고공판은 오는 27일에 열린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