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넘은 삼계탕집 ‘고려삼계탕’, 80년 넘은 추어탕집 ‘용금옥’, 40년 넘은 설렁탕집 ‘유진식당’ 까지...서울 보양식 원투쓰리!
푹푹 찌는 더위 탓에 출근길부터 셔츠는 땀으로 젖습니다. 입추가 지났는데도 무더위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닙니다. 몸과 마음이 지친 채로 회사에 도착합니다. 이렇듯 무더위는 직장인들에게 ‘멘붕’을 안겨다줍니다.
뜨거운 태양 사진. 고성준 기자
하지만! 뜨거운 여름을 건강히 보낼 수 있는 보양식을 먹으면 좀 낫습니다. 역사와 맛이 숨쉬는 미래유산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옛날 그 시절, 서울 미식가들도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줄 보양식을 즐겨먹었습니다.
말복을 맞아 <일요신문i>는 서울 미식가들의 ‘보양식’을 찾아 나섰습니다. 서울 미식가들은 복날이 돌아올 때마다 어떤 보양식으로 여름을 이겨냈을까요. 어디서 ‘원기회복’을 했을까요. 서울미래유산들 중에선 유서 깊은 보양식 식당들이 수두룩합니다. 자! 출발해 볼까요.
고려삼계탕 전경. 고성준 기자
기자가 처음 들른 곳은 서울시청 인근에 있는 ‘고려삼계탕’입니다. 50년 넘는 역사를 지닌 고려삼계탕은 우리나라 최초의 삼계탕 전문점입니다. 이상립 씨가 1960년 서울 명동 입구에 삼계탕 전문점을 차렸고 아들 이준희 사장이 고려삼계탕을 운영 중입니다.
고려삼계탕으로 들어가는 본지 기자. 이종현 기자
이날 서울 오후 날씨는 33도, 땀방울이 연신 등줄기를 타고 흘렀습니다. 이열치열! 기자는 말복에 앞서 뜨거움으로 ‘열’을 다스리기 위해 고려삼계탕으로 향했습니다. 당장 삼계탕을 주문했습니다.
삼계탕. 이종현 기자
고운 자태를 드러낸 영계가 보이시나요? 영계 위에 살포시 자리 잡은 인삼은 한 폭의 그림을 연출했습니다. 인삼 밑에 살짝 드러난 닭 날개가 손짓을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젓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닭의 가슴살 사이를 벌려 봤습니다.
삼계탕. 이종현 기자
야들야들한 찹쌀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깍두기도 빠질 수 없는 메뉴입니다.
깍두기. 이종현 기자
일단 젓가락으로 닭 날개를 집었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덧 젓가락질을 포기하고 양손으로 뼈를 잡고 우걱우걱 닭 날개를 뜯었습니다. 날개를 먹는 순간 매끈한 속살이 혀를 타고 입으로 들어왔습니다. 달짝지근한 맛이 입안 전체에 퍼지면서 환상적인 맛을 자아냈습니다.
삼계탕을 먹는 본지 기자. 이종현 기자
먹고!
닭날개를 먹는 본지 기자. 이종현 기자
또 먹었습니다. 끈덕끈덕한 닭살 때문인지 턱을 위아래로 움직일 때마다 “딱, 딱”소리가 났습니다. 중간에 아삭아삭 씹히는 파도 일품이었습니다.
삼계탕 안에 있는 찹쌀밥. 이종현 기자
수저에 찹쌀밥을 듬뿍 담아 그 위에 인삼을 올리고! 또 먹었습니다. 고려삼계탕 특유의 별미는 ‘인삼주’입니다. 삼계탕을 먹다 보면 입안에 느끼한 맛이 감돌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중간에 인삼주를 먹으면…
인삼주를 먹는 본지 기자. 이종현 기자
느끼함이 사라집니다! 인삼주의 달콤 쌉싸래한 향이 입안 가득히 퍼지면서 시원한 맛을 느꼈습니다.
삼계탕 뚝배기를 마시는 본지 기자. 이종현 기자
결국 기자는 삼계탕 그릇을 깨끗이 비웠습니다. 동의보감에서는 “닭고기는 성질이 따뜻하고 달아서 오장육부를 안정시키고 몸을 따뜻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고려삼계탕을 나선 순간 아랫배 쪽에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지요!
용금옥 전경. 임준선 기자
서울 종로구 다동 골목, 고개를 꺾어도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 빌딩숲 사이로 추어탕 전문점 ‘용금옥’이 있습니다. 용금옥의 역사는 80년이 넘습니다. 1932년 창업주 고 신석숭 씨가 아내인 홍기녀 할머니와 함께 중구 무교동에서 식당을 개업했고 신동민 3대 사장이 이어받았습니다. 용금옥이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이유입니다.
“통으로 드릴까요, 간 것으로 드릴까요?”
가게 안으로 들어선 순간, 신동민 사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통’으로 고르면 서울식, 간 것은 남도식 추어탕이 나옵니다. 지금껏 남도식 추어탕만 먹었던 터라 과감하게 ‘통’으로 주문했습니다.
용금옥 추어탕 한상차림. 임준선 기자
부글부글 끓는 추어탕과 탱탱한 면발이 보이시나요? 추어탕 한상차림입니다. 미꾸라지는 옛날부터 여름철 무더위와 농사일에 지친 농부들에게 동물성 단백질을 제공해왔습니다. 추어탕은 그야말로 말복더위에 ‘안성맞춤’인 까닭입니다.
초피가루는 미꾸라지의 비린 맛을 잡아줍니다. 먼저 초피가루를 뿌리고!
추어탕에 초피가루를 넣는 본지 기자. 임준선 기자
송송 썰린 파들을 넣고!
추어탕에 파를 넣는 본지 기자. 임준선 기자
면을 국물에 푹 담가서!
추어탕에 면발을 푸는 본지 기자. 임준선 기자
호로록! 먹었습니다. 부드러운 면발이 얼큰한 국물과 어울리면서 맛이 끝내줬습니다. 용금옥 추어탕엔 숨은 일인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추어탕. 임준선 기자
유부입니다. 유부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음식으로 그만큼 역사가 오래됐다는 증거입니다. 애처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미꾸라지가 보이시나요?
추어탕에 밥을 말아먹는 본지 기자. 임준선 기자
꼬들꼬들한 고봉밥을 추어탕에 말아 한 숟가락을 떠먹었습니다. 진한 고기 육수 맛과 미꾸라지의 담백한 맛이 동시에 느껴졌습니다. 이제 마지막 보양식 탐방을 떠나야지요!
유진식당 전경. 고성준 기자.
유진식당입니다. ‘설렁탕’은 여름철 대표 보양식입니다. 유진식당은 1968년 창업주 문용춘 씨가 종로구 낙원상가 골목에서 북한식 순대와 국밥을 팔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메뉴가 다양화됐고 점차 설렁탕과 수육 그리고 평양냉면은 유진식당의 대표상품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유진식당도 서울시 미래유산입니다.
유진식당 평양냉면(위), 돼지 수육(아래), 설렁탕. 고성준 기자
기자는 설렁탕, 수육, 평양냉면을 주문했습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습니다. 먼저 설렁탕을 먹는 순간 부드러운 돼지고기가 혀를 감쌌습니다. 중간 중간에 씹히는 비개의 식감이 말랑말랑했고 국물도 시원했습니다. 설렁탕은 단 돈 4000원. ‘고기 슬라이스’가 입안을 가득 메웠습니다. 다음은 수육입니다!
수육. 고성준 기자
돼지 수육을 새우젓에 찍어 입 안으로 가져갔습니다. 고기에선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아 신기했습니다. 수육을 먹으면 먹을수록 배 안에서 고깃덩이들이 놀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몇 번 씹지도 않았는데 고기가 “훌러덩” 목 뒤로 넘어갔습니다. 그만큼 부드러웠습니다. 짭조름한 새우젓은 고기의 느끼한 맛을 잡아줬습니다.
평양냉면. 고성준 기자
평양냉면입니다. 따뜻한 보양식에 지쳤으니 이제 냉면으로 마무리를 해야지요! 면발위에 올려진 고기와 계란이 조화를 이루면서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은 ‘냉면’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평양냉면. 고성준 기자
일단 가위로 냉면을 한 번 자르고!
평양냉면. 고성준 기자.
젓가락에 면을 돌돌 말아서!
냉면을 먹는 본지 기자. 고성준 기자.
먹었습니다. 메밀로 만든 면발은 씹을 때마다 뚝뚝 끊어졌습니다. 그만큼 질기지 않아 식감이 부드러웠습니다. 냉면 국물은 뒷맛이 깔끔해 자극적이지 않았습니다.
면발을 육수에 담그는 모습(위)과 돼지고기를 냉면에 올리는 모습. 고성준 기자
새벽부터 오랫동안 깊이 우려낸 육수 때문일까요?
음식을 먹는 본지 기자. 고성준 기자
기자는 유진식당에서 밥을 설렁탕에 말아 먹었습니다. 느끼한 맛이 감돌 때마다 냉면 국물을 들이켰습니다. 냉면을 먹고 뱃속이 허한 느낌이 들면 새우젓에 수육을 찍어 먹었습니다. 수육을 먹으면 젓가락은 깍두기를 향했습니다. 기자는 이렇게 설렁탕, 수육, 냉면을 번걸아가면서 ‘무한 반복’ 했습니다.
말복이 코앞입니다. 서울미식가들의 ‘맛집’에서 원기회복에 도전하는 것은 어떨까요?
최선재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