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돼지처럼 축사·정화조 갖추고 주민 동의 얻어야…“비현실적 허가 기준”
“이러다 다 죽게 생겼어요.”
한 브리더의 말이다. 브리더는 소규모로 개를 기르며 혈통 유지를 위해 견종표준에 맞게 번식하는 직업을 뜻한다. 브리더가 기른 강아지는 대개 도그쇼 출전을 목표로 하며 분양가도 상대적으로 고가다. 최근 브리더 사이에서 곡소리가 나는 배경에는 곧 시행될 반려동물 법이 있다. 법안 이름에 ‘육성’이란 단어가 들어가지만 대부분의 브리더 사이에선 ‘폐업’이란 단어로 읽히고 있다.
소규모로 기르는 브리더에게 축사를 지으라는 규정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단디 프렌치’
반려동물 법은 지난해 <TV동물농장>에서 방송돼 경악을 줬던 ‘강아지 공장’을 막고 반려동물 학대 방지를 위해 만들어졌다. 지난 3월 이 법은 국회를 통과했고 내년 3월 21일 법률이 공포된다.
이 법으로 인한 가장 큰 변화는 열악한 사육환경 개선을 위해 동물생산업이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전환된다는 점이다. 생산업자가 불법 영업 시 벌금 수준도 100만 원 이하에서 500만 원 이하로 크게 상향한다. 동물생산업 허가가 취소된 경우에는 1년이 경과하거나, 벌금형 이상의 형을 선고받았다면 형이 확정된 날부터 3년이 경과해야 재허가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규정도 신설했다.
이외에도 동물 학대행위와 금지행위를 추가하고 동물을 유기한 사람이 받는 과태료도 늘렸다. 생산업과 마찬가지로 동물소유자의 준수사항 위반도 더 엄격하게 다룬다. 반려동물 관련 영업도 4개 업종이 추가돼 등록제로 운영된다.
반려동물이 ‘소유 물건’에서 ‘보호해야 할 생명체’로 전환되는 시점에서 개선된 법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사각지대는 있다. ‘강아지 공장’은 없어질 수 있지만 오히려 건강하게 개를 키워 분양하는 ‘브리더’들까지 탈법의 기로에 놓인 것.
사육업자들 사이에서 가장 큰 논란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지자체 허가제다. 반려동물 생산업은 가축법에 포함되면서 소나 돼지 등 가축 사육업자와 반려견, 반려묘 사육업자를 하나의 규제로 묶어놓았다.
소나 돼지를 키울 때 필요한 규제로 묶다보니 허가에 필요한 시설은 거대해진다. 지자체마다 다르지만 무조건 축사를 지어야 한다거나 정화조 시설을 요구하는 등 개나 고양이 사육에는 불필요한 시설 기준이 많다. 반려동물 생산업자 사이에서는 신고제인 지금도 신고가 불가능한데 더욱 까다로워지는 허가제로 바뀌면 누가 생산을 할 수 있겠냐는 호소가 나오고 있다.
브리더들은 1.5km 이내 모든 주민에게 동의를 구해야하는 규제를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꼽았다. 사진=‘단디 프렌치’ 제공
한 반려동물 협회 관계자는 “작은 개 100마리가 소 한두 마리만큼의 분뇨도 나오지 않는데 시설은 소, 돼지 기준으로 맞춰야 한다. 더군다나 개는 소, 돼지에는 없는 100마리 이하로 길러야 하는 규제도 있다. 현실적으로 허가 기준을 맞출 수가 없다”고 호소했다.
허가기준이 소, 돼지에 맞추다보니 많은 지자체가 사육장 인근 1.5km 이내 주거민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거리 기준은 지자체 조례로 각각 상이하며 주민 전원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소규모로 키우는 브리더는 경기도 인근에서 풀어놓고 개를 키우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답변에 앞서의 관계자는 “업체가 허가를 받기 위해 경기도 인근에 위치했을 때 1.5km면 수천 명에 해당할 수 있다. 이들 모두에게 동의를 받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식용가축과 반려동물을 기르는 기준을 별도로 만들어 달라”고 말했다.
만약 현재 도심에서 사육하고 있어 동의가 불가능에 가까울 때는 이주 외에는 방도가 없다. 하지만 이사도 만만치 않다. 사육장이 대부분 영세해 이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직 브리더 A 씨는 “강아지 공장이 아니라 좋은 사료 먹이고, 좋은 환경에서 키우는 소규모 브리더는 돈도 별로 안 된다. 이 상황에서 이주는 사실상 사업을 그만두라는 말과 같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대부분의 업체가 신고도 돼있지 않은 탓에 이들에게 유예기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이 법은 공포에서 시행까지 1년 유예기간을 거쳐 2018년 3월 시행하며 기존 업체에 대해 2년 유예기간이 적용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앞서 지적한 규정처럼 지자체 허가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업체는 유예기간에 적용받지 못한다.
반려동물 업계에서는 총 사육업자 중 허가받은 업체가 30%도 채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이들 30%도 터무니없는 규제를 인정하고 정무적인 판단을 내려 신고를 받아준 단체로 전해진다.
또 다른 브리더 B 씨는 “강아지 공장은 문제다. 하지만 반려견 분양을 받고 싶은 사람들의 수요는 분명 크다. 곧 적용될 법은 건강하게 개를 키우는 사육자들도 동시에 매장할 수 있다. 생산업자들의 실태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 만들어진 이 법이 시장을 무법천지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법 때문에 사육업자가 나앉을 경우 기르던 개나 고양이마저 유기동물로 전락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반려동물 유통업계에서는 이 법이 국내 반려동물 생산을 막아 반려동물 수입 증가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반려동물 유통 관계자는 “수요는 지금과 같은데 생산이 안되면 중국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다. 중국 수입 유통 경로를 알아보고 있다”고 귀띔했다.
앞서의 반려동물 협회 관계자는 “위생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 다만 일단 유예기간을 적용받기 위해 소, 돼지와 다른 현실적인 허가 가이드라인을 제공해 달라”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