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청구액 지급해도 회사 경영 문제없어…원세훈 구속 등 법원이 변했다?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 달라며 기아차 노조가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는 원고(노조)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기아차 본사 전경. 사진=일요신문DB
노조 측 요청액의 절반가량을 인정한 셈인데, 어제(30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유죄 판결과 기아차 통상임금 측 원고 승소 판결까지, 법원이 문재인 정부에서 달라진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통상임금은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정기, 고정적으로 지급하는 임금으로, 연장, 야간, 휴일근무 수당 산출의 기준이 된다. 연장, 야간 근무가 많은 생산직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실질 소득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임금 가이드라인 중 하나인데, 노사협상 때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주요 쟁점 중 하나다.
이번 재판에서 기아차 근로자들이 법원에 청구한 금액은 각종 수당과 퇴직금 명목의 1조926억 원. 노조 측은 “2011년 연 700%에 이르는 정기상여금을 비롯한 각종 수당을 통상임금에 포함해서 수당, 퇴직금 등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13명의 기아차 근로자는 통상임금 대표 소송을 내면서, 재판 결과는 다른 근로자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됐다. 대표 소송은 소송을 내지 않은 근로자에게도 효력을 발휘한다. 때문에 만일 기아차 노조 측의 주장을 법원이 고스란히 인정했을 경우 기아차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3조 1000억 원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왔다.
결국 이번 판결의 쟁점은 ‘기아차의 실적’이었다는 게 법조계의 평가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인천 시영운수 운전기사들의 통상임금 소송에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면서도 ‘통상임금을 인정했을 때 기업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게 된다는 사정이 인정될 때에만 신의칙에 따라 추가 임금을 청구할 수 없다’고 전제했다. 결국 회사가 운영되는 게 우선이고, 그 다음이 상여금에 대한 통상임금 인정이라는 판단이었던 것.
때문에 기아차 노조 역시 재판 과정에서 “청구액을 지급해도 회사 경영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법원 역시 “기아차의 실적이 나쁘지 않다”며 원고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자연스레 통상임금을 둘러싼 유사 소송이 줄줄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통상임금 관련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신의칙을 어기지 않았는지, 회사의 실적이 통상임금 인정 반영분을 지급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나왔는지 정도”라며 “기아차의 경우 언론에 나온 실적을 봤을 때 나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됐던 결과”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어제 나온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실형(징역 4년) 선고부터, 노조 측의 손을 들어준 기아차 통상임금 선고까지, 법원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달라진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원래 법원이 검찰보다 더 치밀하게 정치적인 조직”이라며 “개별 재판부의 독립성이 존중되고 있는 것은 알지만, 각 재판부가 정권에서 선호할 만한 결과를 이렇게 잇따라 내놓는 것을 보면 법원의 판단을 더 믿을 수 없게 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최민준 저널리스트
내우외환 현대차그룹 통상임금 ‘쓰나미’…정몽구 회장의 돌파구는? 통상임금 지급 판결, 중국 공장 중단 등 연속 악재…정 회장의 위기 돌파 묘수 주목 [일요신문] 현대·기아자동차가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안에서는 비용 상승이 문제다. 법원이 기아자동차의 통상임금 판결에서 노동조합의 손을 들어줘서다. 당장 4223억 원, 중장기적으로는 3조 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할 전망이다. 밖에서는 글로벌 시장점유율이 쪼그라들고 있다. 중국에서는 공장 중단 사태까지 발생했다. 악재의 연속이다. 현대·기아자동차가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이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지 주목된다. 지난해 12월 6일 국회에서 열린 청문회에 출석한 정몽구 회장.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일단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통상임금 판결이다. 기아차의 올해 분기별 영업이익은 3000억~4000억 원. 이번 판결로 올해 실적의 4분의 1을 오롯이 인건비로 추가 지출하게 됐다. 게다가 협력업체 상여급도 모두 보전해 줘야 해 기아차의 인건비 부담은 대폭 불어나게 됐다. 법원이 통상임금의 범위를 넓게 적용하면서 야근, 주말근무 등 초과근무 수당이 늘어나게 됐다. 2017~2018년의 명운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현대·기아차는 어려운 경영환경에 놓여있다. 글로벌 자동차산업의 침체 때문이다.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이 인수·합병(M&A)과 신기술 경쟁을 괜히 벌이는 게 아니다. 당장 재정 부담이 커진 기아차로서는 ‘스토닉’ 글로벌 출시와 신형 ‘K9’ 발매일을 늦출 가능성도 높다. 앞으로 2년간 인도에 총 2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차질이 우려된다. 현대차의 중국 현지 공장 네 곳이 가동을 중단했던 점도 충격이다. 글로벌 7대 완성차 업체 중 하나인 현대차가 중국 내 판매 부진과 부품대금 지급 지연으로 공장 가동이 중단된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노동 비용 증가가 기업의 경영 상태는 물론 수출 부진과 경제성장률 정체를 초래할 수도 있는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어떻게 이 위기를 돌파할까. 1990년대 후반 현대차는 글로벌 완성차 시장의 경쟁 심화와 마진율 하락, 현대가 ‘왕자의 난’까지 겹쳐 창사 이래 최악의 경영난을 맞았지만 극복해 냈다. 2000년 전 세계 40여 자동차업체들은 당시 실제 판매량보다 30%나 많은 약 2000만 대를 생산했다. 현대차도 기아차를 사들이면서 해외 시장과 저가 시장을 파고들었다. 자동차 회사들의 고급화 경쟁이 치열해져 개발비가 치솟고 자동차 가격이 급등하던 시절, 현대·기아차는 동일한 플랫폼을 공유하는 모델을 다양하게 내놓는 한편 미국·유럽 차보다 가격을 낮춰 시장을 넓혔다. 특히 당시 경기가 부진했던 미국 시장에서 주효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 현대차가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솟구친 것도 미국 시장의 영향이 컸다. 질 나쁘고 싼 차라는 이미지가 합리적인 가격에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로 바뀌었다. 애프터서비스 전략도 잘 통했다. 현대·기아차의 2000년 세계시장 점유율은 10위 안팎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6~7위권을 지키고 있다. 전직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당시 현장 경영을 중시하는 정몽구 회장과 임직원들이 함께 미주와 유럽 등을 순회하며 해외 판매를 늘리는 데 열을 올렸다”며 “현재 전기차 등 자동차 산업이 큰 틀에서 바뀌고 있는데 대해 기술 공유와 중국 업체들과의 협력 등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서광 저널리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