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는 대외활동 주목…정부 인재풀 부족해 연임 또는 자리 이동 관측
이런 분위기에서 황영기 금융투자협회(금투협) 회장의 행보는 단연 주목받는다. 내년 2월까지 임기인 황 회장 역시 교체 대상으로 거론됐지만, 최근 움직임만 보면 정부의 다른 금융기관으로 자리를 옮기거나 적어도 금투협 회장을 연임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만큼 황 회장이 보이는 자신감은 다른 금융기관 수장들과 대비된다.
지난 7월 10일 황영기 금투협 회장은 여의도 인근 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매년 이맘때 기자들과 증권업계 현안을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기에 특별할 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날 황 회장은 “대체로 진보정권이 보수정권보다 주가 성적이 좋았다”고 말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최근 임기 만료를 앞둔 금융 공공기관장이나 금융협회 수장들은 정부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고 있지만 황 회장은 그렇지 않았다.
황 회장은 또 기자간담회에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위원장은 내가 알기로 자본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대단히 높고 실전도 잘 알고 있는 분들”이라고 말할 만큼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반면 오는 11월까지 임기인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은 최근 외부 일정을 이유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과 교섭에 세 차례나 불참하고 다음 일정조차 잡지 않았다.
전직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황 회장은 성과를 중시하고 대외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하는 스타일이라 정부에서도 눈에 띄는 인사이며 본인도 욕심이 있어 좋은 제의가 들어온다면 거절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너무 성과 위주의 경영을 하는 경향이 있어 금융 소비자를 생각한다면 썩 좋은 인사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 회장. 연합뉴스
황 회장의 이 같은 거침없는 발언은 현 정권의 금융권 인재풀이 부족하다는 평가와도 무관치 않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실제로 황 회장은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내정되기 전, 차기 금융위원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KB금융지주 회장을 거친 황 회장은 금융권 경력이 화려할 뿐 아니라 회원사들의 투표로 금투협 회장에 선출된 만큼 전 정권의 낙하산 논란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
문제는 그의 과거다. 황 회장은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대선 후보 캠프의 경제살리기특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2008년 7월 KB금융지주 회장으로 선임될 때도 이명박 정부의 낙하산이라는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그러나 약 1년 후인 2009년 9월 황 회장은 KB금융 회장직에서 사퇴했다. 황 회장이 2004~2007년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재직할 때 리스크 관리 및 내부통제를 게을리 했다는 이유로 금감원이 직무정지 3개월의 징계를 내렸기 때문이다. 이후 황 회장은 징계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승소해 명예를 회복했다.
황 회장은 KB금융 회장에서 물러난 후 이명박 정부와 거리를 뒀지만 여전히 보수 정권과 관련 있는 인사라는 이미지가 남아 있다. 앞의 금융권 관계자는 “황 회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우리금융 회장을 맡은 만큼 정치적인 이해보다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라며 “좋게 말하면 사람들과 두루두루 친한 것이지만 자칫 기회주의자로 비칠 수 있다”고 전했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금융투자협회. 연합뉴스
금융권에서는 황 회장이 주요 금융기관장 자리로 옮기는 것은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금투협 회장을 연임할 가능성은 높게 본다. 황 회장은 회원사들과 스킨십에 적극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일례로 그는 올해 초부터 각 증권사 수장들과 모여 ‘증권사 균형발전 100대 과제’를 논의 중이다. 금투협은 이르면 9월 말 해당 내용을 정부에 건의안으로 제출한다.
증권가에서 황 회장의 평가는 긍정적인 편이다. 특히 증권업계의 이익을 위해 은행연합회와 날선 공방까지 벌였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능력을 떠나 이렇게까지 직접 발로 뛰면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며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초대형투자은행(IB), 비과세해외주식형펀드 등을 도입하는 등 성과도 적지 않다”고 호평했다.
금투협은 이르면 오는 12월부터 차기 회장 선임 절차에 들어간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도 차기 금투협 회장 후보로 거론되지만 정작 본인은 금투협 회장 자리에 욕심이 없다고 전해진다. 금투협 관계자는 “아직까지 황 회장이 연임에 대한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며 말을 아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독으로 돌아온 삼성맨 이력…‘장충기 문자메시지’가 평판에 오점 황영기 금융투자협회(금투협) 회장은 1975년 삼성물산에 입사해 삼성전자, 삼성생명을 거쳐 2001년 삼성증권 사장까지 오른 ‘삼성맨’ 출신이다. 최근 그의 이력이 조명받는 이유는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때문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특검)에 따르면 황 회장은 장 전 차장에게 문자메시지를 통해 “주진형 한화투자증권 사장과 통화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반대할 필요 있냐고 했다”며 “큰 도움이 안 돼 미안하다”고 전했다. 황 회장이 삼성물산 합병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건 아니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라는 초유의 사건에 관여한 것만으로도 그의 평가에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그가 증권사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장 전 차장과의 관계가 금투협 회장 연임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문자메시지가 공개된 시점은 지난 4월이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황 회장과 금투협은 문자메시지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지 않아 당분간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관계자는 “차기 금투협 회장에는 이렇다 할 경쟁자가 없어 황 회장이 의지만 있다면 연임이 유력해 보인다”며 “그러나 당분간 삼성 이슈는 계속될 것으로 보여 문재인 정부가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려면 시민단체의 반발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